《마지막 출근일》

마지막 출근일, 그날의 세 가지 장면

by hyunju lee


너무도 진한 하루엿다

나는 내가 나를 지킨 방식에 후회가 없이

나답게 떠낫다




1. “나 아픈 거야?”


새로운 회사의 출근을 앞두고 받은 채용 신체검사에서 ‘재검 소견’이 나왔다.

그 순간, 내 모든 전환의 흐름에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새 회사는 탈락인가?

지금 회사는 오늘로 끝인데?

그리고… 나는 아픈 거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암이면 어떡해…”

엄마랑 통화하면서 ,

나는 아침부터 눈물바람으로 출근했다..


마지막 출근일 아침.

나는 폐 CT를 찍고, 긴급 판독을 요청하고,

결과를 기다리며 조용히 회사로 향했다.


아무렇지 않은듯

주변인들과 마지막 퇴사인사를 나누고

컴퓨터 파일들을 지우며 기다렷다.

그리고 두어 시간이 흐른 후,

‘이상 없음’이라는 소견을 들었다.


세상이 다시 맑아졌다.

정말이지, 퇴사보다 더 숨 막힌 아침이었다.




2. 10년의 짐을 정리하며


마지막 날, 정리하지 못한 내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다.

10년 전 사업계획서가 나왔고,

그 안에서 나는 마치 원시시대 이야기를 발견하듯 웃었다.


그중에 오래된 시집 한 권이 있었다.

시인이 되신 은사님이 보내주셨던 책.


사실, 선생님의 연세를 생각하면

가끔은 걱정스럽게 답장을 기다린다.

메시지를 보내놓고,

읽지 않음 상태가 오래되면

그 자체로 마음이 조여온다.


오늘도 그랬다.

오랜만에 시집을 다시 꺼내들고,

“저오늘 퇴사하느라 짐싸는중인데 선생님 시집보고 선생님 생각나서요“

그렇게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시간이 흐른 뒤,

도착한 답장은 또다시 나를 울컥하게 했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워킹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잘 견뎠다. 견디었다.

이제 정리되면 한 줄씩 써 모으면 글이 되고 책이 되고 네 삶의 역사가 될 거다.

조금 쉬고 이제 금융인을 졸업하고 작가로서 활동하기 바란다. 화이팅 .”


선생님은 내가 은퇴한 줄로 아시고 주신 답장이긴 했지만,

마침 내가 요즘 글쓰기에 몰입하고 있는 시점이어서

그 말이 더욱 깊이 와닿았다.


그 안에는 단순한 격려를 넘어,

나를 알아봐주는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었다.


몇마디 더 주고맏는 중에

선생님께서

“녹음을 했더니 오탈자가 너무많다.“

하시는데 나는 말을 잊지 못했다

그저 눈물이 낫다




3. 선물의 결


동료들로부터 받는 이별 선물들.

손편지와 센스 있는 이직 선물들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그런데 그 중엔, 마음이 없는 선물도 있었다.


나를 인간적으로 무시했던 어느 직원.

단체 선물에 의무감으로 부담을했다.


그건 마음이 아니었다.

명단에 올려야 하니 얹은 돈일 뿐이었다.


나는 그 분담금 만큼을 봉투에 넣어, 책상 위에 남기고 나왔다.


그리고 퇴근길.

그 일이 ‘속보’처럼 퍼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굳이 마지막에 저럴 필요 있었을까?”

또 누군가는

“속 시원하다, 오죽하면 그랬겠냐.”


나는 이제 그런 반응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건 나를 위한 ‘단절의 선언’이었고,

내 감정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내가 오늘 유일하게 후회한 건—


결과 나오기 전까지 불안한 마음을 혼자 감당 못 해

엄마에게 말해버린 일.

그 걱정은 혼자 참고 견뎠어야 했는데…

엄마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게 미안했다.




나는 내가 나를 지킨 방식에 후회가 없다.

오늘 비로소 마음이 홀가분하다.


마지막 속보에 대한 남겨진 자들의 반응은

이제 궁금하지도 않다.


나는 뒤에서는 비난하고,

앞에서는 선물로 포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에게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선을 그어왔다.


남의 말 하긴 쉽다.

하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그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게 내가 끝까지 지키고 싶은 태도다.



『나답게 떠나기』는

이직이라는 선택을 둘러싼 모든 감정과 시간을 기록하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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