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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24. 2024

싱가포르 놀이터에서는 나무를 탑니다.

이게 다 공짜라고요?


 오늘은 또 어디를 가볼까?

티옹바루 베이커리에서의 아침, 마리나 베이 샌즈 푸드코트에서의 점심,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칠드런스 가든 -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럽다. 분 단위로 계획을 짠다는 J들이 보면 뒷목을 잡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P들에게 이 정도의 계획은 너무 빡빡한 거 아닌가 하는 수준이다. 바쁜 거 하나 없이 천천히 일어나 눈곱을 떼고 선글라스를 꼈다. 세수 안 한 얼굴을 적당히 가려주고 약간의 멋까지 얹어주는 선글라스야, 정말 고마워. 선크림을 왜 열심히 바르지 않았는지, 세수는 안 해도 선크림은 발랐어야지 하는 충고들을 그때의 나는 듣지 못했고 그 결과 기미와 잡티를 종합 선물 세트로 받았다. 카페에 가니 역시나 선글라스 차림의 외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오늘의 패션은 성공이었지만 실내 자리에서도 선글라스는 벗을 수 없지. 세수 안 한 나의 얼굴은 지켜야 하니까. 아니, 그들의 눈은 지켜줘야 하니까.      


 집으로 돌아와 단장을 하고 수건, 갈아입을 옷들을 챙겨 MRT를 탔다. 여섯 살 이든이는 신이 났다.





“엄마, 우리 오늘 물 나오는 놀이터 가는 거 맞지?”

“응, 마리나 베이 샌즈 가서 점심 먹고 놀이터 갈 거야. 그런데 밥 많이 안 먹으면 놀이터 못 갈 수도 있어. 알겠지?”

“응! 엄마, 나 밥 진짜 진짜 많이 먹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 오늘 놀이터에서 문 닫을 때까지 놀고 오자! 엄마가 거기 정말 좋다고 했잖아. 나 너무 기대돼”


 한껏 들뜬 아이의 얼굴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냥 놀이터에서 재미있게 놀고 오자고 하면 될 것을 엄마라는 사람은 그 얼굴을 보고도 기어이 조건을 달았다.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잘 먹지 않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었으면 하는 마음을 놀이터에 기댔다. 엄마들에게는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 놓고서 정작 내가 그러고 있었다. 항상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깨닫는다.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이다.


 점심을 먹고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도착했고 아들은 좋아하는 지도부터 챙겼다. 엄마는 길치인데 어디를 가나 지도부터 챙기는 아들이 기특하다. 엄마 닮으면 안 돼. 제발. 슈퍼 트리 쇼를 보러 온 적이 있었고 블로그에서 가는 길도 공부했다. 할 수 있다! 지도와 친절한 표지판들을 살펴 가며 아들과 함께 길을 찾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엄마, 나 놀이터 어딘지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웃음소리 따라가면 돼! 엄마는 나 따라서 와!”

이든이는 잔뜩 신이 나서 달려갔고 나 역시 그 뒤를 따라 뛰었다. 아이의 뒷모습에서 설렘이 가득 넘쳐흘렀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물소리가 가득한 그곳에는 여름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거대한 조명을 비추듯이 밝게 빛났다. 바닥에 있는 수많은 구멍에서 물이 솟구쳐 올랐고 위, 옆, 할 것 없이 사방팔방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뒤편으로는 마리나 베이 샌즈가 거대한 배처럼 버티고 있었고 디즈니의 음악이 가득 차게 흘러나왔다. 잠시 멍하게 보고 있던 이든이는 신발을 벗고 그림 같은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눈부신 햇살 때문인지 디즈니의 음악 때문인지 무엇이 이유였는지는 지금까지도 모르겠지만 그 장면이 꿈같았다. 글자 그대로 정말 꿈속인 것처럼 현실감이 떨어졌다. 아이는 이보다 즐거울 수 없을 것 같은 표정으로 물을 맞으며 뛰어다녔고 바닥에 누웠다가 나오는 물을 손으로 막았다가 처음 만난 친구와 물장난을 치고 잡기 놀이를 했다. 모든 아이들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때 누가 내 머리를 탁! 하고 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마음껏 아이를 풀어준 적이 얼마 만인가. 아빠 없이 엄마랑 둘이 그것도 외국에서 다니다 보니 더 조심시키고 더 옆에 잡아두었다. 어딜 가든 손을 놓지 않았고 손을 놓으면 다시 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 친구와 밀린 이야기들을 할 때 아이는 기다려 주었다. 다리가 아파도 엄마가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하면 몇 걸음이라도 더 걸었고 입에 맞지 않는 음식도 먹어보려 노력했다. 물론 피곤해하면 업어주고 달랬으며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가끔은 엄마가 가고 싶은 곳들도 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이해하며 지냈고 어느새 아이는 조금씩 자랐다.





 지인들에게 말도 안 되게 좋은 놀이터가 있다고 소개했다. 싱가포르에 놀러 오면 여기는 꼭 가야 한다고. 놀라지 마세요. 뷰가 마리나 베이 샌즈입니다. 특히 J형 어머님들, 물가 비싼 싱가포르에서 여기저기 계획 잡지 마시고 하루는 그냥 여기에 올인하세요. 다음날 또 가고 싶으실 거예요.


 가장 중요한 것, 제가 공짜라고 얘기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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