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인싸, 나야 나
“우와… ”
크리스마스라도 된 듯 반짝반짝 작은 조명들이 온통 빛을 내뿜고 있었고 레스토랑과 펍들이 중앙에 있는 커다란 잔디를 에워싸고 있었다.
“어때?”
“너무너무 좋아”
K의 물음에 이든이와 나는 앞다투어 대답했다.
"엄마, 나 저기 가서 놀아도 돼?"
"응, 물론이지."
다리에 프로펠러라도 달린 양 이든이는 쌔앵 하고 잔디밭으로 달려갔다. 운 좋게도 차임스의 핫플 “Prive” 의 바깥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뛰어놀 아이를 살피고 유럽 어디쯤에 와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마음껏 느끼며 저녁식사를 하기에 완벽한 자리 선정이다. 이미 잔디밭에는 같은 일행인듯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텀블링을 하기도 하고 잡기놀이도 하며 신이 나 있었다.
이든이는 조금씩 조금씩 그 사이로 들어갔다. 조금 큰 여자아이 하나가 옆으로 텀블링을 하자, 하지도 못하면서 따라 해 본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같이 뛰어다니고 멈추면 또 같이 멈추며 점점 함께 노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 친구들은 모두 같이 온 아이들이라 친한 사이인데 이든이 혼자 말도 통하지 않는 그 사이에서 그러고 있는 게 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그냥 두고 보았다.
"이든이 좀 안쓰러운데?"
"좀 그런가? 괜찮아. 자기가 이겨내야지! 할 수 있을 거야. "
신경 쓰지 않는 듯 아이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티 내지 않았다. 엄마의 마음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아이들이 아닌가. 음식을 먹으며 힐끔힐끔 봤더니 어느새 함께 뛰고 웃으며 같이 놀고 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무슨 놀이를 하는지 손을 올렸다 내리기도 하고 다 같이 저기까지 달려갔다 돌아오기도 하고 도망치고 잡으며 뛰어다녔다.
한국에서 이든이는 놀이터나 밖에서 모르는 친구에게 먼저 막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었다. 친한 친구들과는 누구보다 잘 놀았지만 낯을 좀 가리고 신중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 와서 아이가 달라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먼저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렇게 함께 놀았다. Prive의 잔디밭에서도, 가든스 바이 더 베이의 칠드런스가든에서도, 마리나베이샌즈의 디지털 라이트 캔버스에서도 먼저 다가갔고 함께 놀았다.
아이의 평소 성격상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마음이 생긴 건지, 내면에 있던? 인싸의 자아가 슬금슬금 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고슴도치 엄마는 하나하나가 다 기특하고 감동이었다. 친구나 형제 없이 떠나온 여행이라 아이가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너무 엄마만 찾으면 어떡하나 싶은 걱정들은 모두 기우였다. 아이는 곳곳에서 친구를 사귀었고 함께 놀았고 즐겁고 행복했다. 자기 스스로 미션을 만들고 성공해 낸 듯 뿌듯해 보였다.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데 있어 같은 언어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엄마가 한 거라고는 그냥 가만히 아무 말 없이 기다려준 것뿐이다. 가서 말을 걸어보라고도, 함께 놀라고도 하지 않았다. 아마 이곳에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아이도 같이 느꼈나 보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있다는 건 두려움일 수도 있지만 자유로움일 수도 있다. 한국에서 입지 못하던 과감한 옷을 입어볼 수도 있고, 한국에서라면 절대 배워보지 않았을 수업에 참여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막상 해보면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든이는 어땠을까?
다른 날의 Prive에서도 아이는 밥 먹을 때와 물 마실 때를 제외하고는 엄마를 찾지도 자리에 오지도 않았다. 새로 만난 형과 또 다른 어떤 동생과 신나게 뛰고 놀며 잔디밭을 마음껏 누볐고 엄마들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차임스 - 싱가포르의 중심역이라고 할 수 있는 시티홀 근처의 유럽느낌이 나는 복합 레스토랑 센터이다.
원래 수녀들이 다니던 학교였으나 더 이상 학교는 운영되지 않고 식사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기 아주 좋은 공간이다. 야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고 웨딩홀로 이용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관을 자랑한다. 레스토랑과 펍들이 줄지어 있다. 사진 찍기에도 좋다.
프리베(prive) - 인기 많은 차임스 맛집이다. 저녁 시간대에는 사람들이 많아 줄을 설 수 있으니 미리 예약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낯가리던 아이는 인싸가 되었고 덕분에 엄마는 친구와 입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