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고백보다 더 황홀한 슈퍼 트리 쇼
눈물이 났다.
캄캄한 밤하늘 위로 별처럼 반짝이는 불빛들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우와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가만히 누워서 음악에 맞추어 움직이는 불빛들을 보는 건 첫 경험이었고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황홀한 순간이다.
며칠 전부터 K가 말했다. 싱가포르에 놀러 오는 지인들을 데리고 몇 번 가 보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너무 좋다고 하는데 그냥 그렇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사람마다 다른가 보다고.
오전부터 뎀시힐에 식당, 놀이터, 카페, 마리나베이샌즈까지 빡빡한 일정을 보낸 뒤였다.
" 엄마, 나 이제 더 못 걷겠어. 다리가 너무 아파."
그래, 아플 때도 되었지. 엄마도 힘든 일정이었는데 싶어 조금만 더 걸어보자는 말 대신에 이든이를 등에 업었고 친구들은 고맙게도 가방을 들어주었다. 슈퍼 트리 쇼를 하는 장소로 가는 길엔 서서히 해가 내려왔고 덥지 않도록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가든스바이더베이는 낮도 밤도 참 푸르고 아름답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거대하고 멋진 식물원이 있다니 정말 부럽다. 격하게 부럽다. 노란 머리, 갈색머리, 빨간 머리, 까만 머리 각양각색의 머리색과 다양한 피부색의 관광객들이 모인다. 삼삼오오 어디서 보면 좋을지를 의논한다.
후훗, 우리에겐 K가 있다. 아름다운 베테랑 가이드의 뒤를 졸졸 따라 중앙에 있는 커다란 나무 아래 잔디밭으로 갔다.
"여기 누워. "
장군님의 명령을 받들듯 며칠 전 한국에서 날아온 우리의 친구 A, 이든이와 함께 셋은 나란히 누워 자리를 잡았고 이미 충분히 감상하셨다는 싱가포르 장군님은 좀 더 뒤로 가시더니 사진작가로 변신하셨다.
잠시 후 온 불빛이 다 꺼지듯 캄캄해졌고 음악이 시작되었다. 지휘자의 손끝에 맞추어 움직이는 오케스트라처럼 커다란 나무의 불빛들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꺼졌다 켜지고 켜졌다가 다시 꺼졌다.
거대한 반딧불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 같기도, 지구가 아닌 다른 공간에 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잔잔한 바람소리와 풀벌레소리가 음악 사이사이를 돌아다녔고 한여름저녁 불어오는 살랑살랑 바람은 머리카락을 다리를 손등을 옮겨 다니며 간지럽혔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풍경과 공간 속에 빠졌다.
<P형 인간의 싱가포르 체류기>를 연재하며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서 그때의 사진과 글들을 찾아보았다.
이 사진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바로 앞에 앉아 안겨있던 이든이도 나도 둘 다 넋을 잃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다
쇼가 끝나고 나서도 우리는 쉽게 꿈에서 깨지 못했다. 여섯 살의 이든이도 서른여덟 살의 엄마도 생에 가장 아름다웠던 불빛쇼에 좀처럼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참 소중한 시간이었다. 언제 또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름다운 풍경이었고 친구들과 아이가 옆에 있다는 게 행복했다. 반짝이는 불빛처럼 반짝이던 시간들을 함께 나누고 보낸 친구들이었다. 새로운 반짝이는 순간을 알게 해 주고 갖게 해 준 아이였다. 그 사이에서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서 그냥 집에 갈 수는 없었다.
뷰맛집에서 이든이는 딸기바나나셰이크와 케이크를 우리는 칵테일을 한 잔씩 마셨다.
아... 바로 이 맛 아닙니꽈.
흥이 차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