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편의 쉬운 시쓰기 #100
벽을 넘다가
황현민
넘어섬과 넘어짐은 자의냐 타의냐의 차이일까
벽을 넘다가 다 넘었다가 넘어지면 이땐 뭐라 말해야 하나
넘어섰다 넘어지다라고 해야 할까 줄여서 넘어섬짐이라 해야 할까
체조 선수가 뜀틀을 넘어 허공을 돌아 착지 시 불안정하여 점수가 깎일 때처럼
타의는 없고 넘어진 것도 아닐 때는 또 뭐라 말해야 하나
벽을 넘고 넘어서도 그 벽은 끝이 없는데
넘어선 벽과 넘어야 할 벽 사이에서도 아둥바둥 그 여전함은 끝이 없는데
굳이 벽을 넘어서야 할 까닭이 있겠는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수도 없이 넘어지고 수도 없이 일어서면 그만 그만 아니런가
걸음을 시작하는 아가처럼 늘 스스로
건강히 자라나면
모든 벽은 점점 작아져서 저절로 사라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