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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러플 Oct 02. 2018

자아자찬 - 살아남은자의 변명이라고나 할까


그래, 나는 살아 남았었지


이런 날들이 있었다.

하루에도 20명의 친구들을 만났다. 어떤 때는 하루에 백 명의 친구들을 만났다. 이것은 의도한 바가 아닌 자연이었다. 약속도 없이 우리들은 한 곳에 모여들곤 했다.

그렇게 주말이면 그렇게 방학이면 의도한 바 없이 의도한 바를 이뤘다. 그리곤 무리를 지어 주로 골,자로 끝나는 후미진 막걸리집에 들어가서 돈이 있던 없던 아무런 생각없이 막걸리를 시키고 서로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였다. 젓가락(그땐 넘 심했지) 두들기며 대중가요를 부르면서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그저 그 자리가 좋아서 모여들었지 갈 사람들은 가고 남을 사람들은 남아서 돈이 떨어지면 잔디밭으로 자리를 옮겨서 이슬 맞으면서 헤어지기 싫었지 앞으로 볼 날들도 많은데 내일이면 또 볼 텐데...


아, 그래서 그랬던 건가?

나이들면 얼굴도 이름도 다 까먹고 만나기 힘든 게 아니라 만날 수 없으리란 것을 미리 알고서 그렇게 모여들었던 것이었구나 다들 보통 사람들이 아니었구나 약속도 의도한 바도 없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서로 당겨서 서로 만나서 떠들고 술을 마시고 무의미할 수도 있었지만 지나고 나니 유의미가 되어버렸구나 오늘날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사람을 지배하면서 오히려 그때 그 시절이 값어치가 있었다는 것을, 지금 이렇게 궁시렁거리고 있게 될 줄이야


만남이란 것은 요즘 약속이 전제가 되어버렸다. 선약을 하고도 더 센 약속에 밀려서 취소까지 당하는 세상이다. 우연한 만남이 사라진 세상이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만나던 시절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나마 번개라는 것이 있지만 이것은 그때의 것과 너무 다르다. 이 또한 약속이다. 그냥저냥 어떠한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만남이 있어야 그때 그시절의 값어치가 온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좋다. 헛소리를 지껄여도 누구 하나 막지 않는다. 지껄이고 싶으면 다 지껄이고 듣고 싶은 것은 듣고 듣기 싫은 것은 듣지 않는다. 때론 개소리 집어치우라고 화를 내며 멱살을 붙잡기도 한다. 그것 뿐이다. 거기까지다. 그리고 다시 술 잔을 기울이고 다시 노래를 부르고 다시 밤하늘 별을 바라본다. 새벽 공기를 깊게 들이 마신다. 날이 새면 다시 제 갈 길로 돌아간다.


잊혀질 날들이 미리 서러워서 아마도 그때 그 시절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그때 그시절 참으로 인기와 인연이 참 많았드랬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만큼 만남과 파장이 넘쳤던 게다. 만나지 않고서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 아니었던가, 바둑을 두기 위해서도 서로 만나야만 했던 시절 아니었던가 (갑자기 바둑으로 건너 뛰냐? 아, 그러게 그 옛날 자취방에 여럿 모이면 누구는 기타치며 노래 부르고 누구는 바둑을 두고 누구는 자빠져 자고 누구는 궁상을 떨고 누구는 마이마이를 듣고 누구는 밤하늘 별을 쳐다보고 그랬던 것이다. 한자리에서 만나서 각자의 일에 골몰했던 것이다. 만남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일상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것이 지금은 인터넷으로 대체된 듯 싶다. 그러한 것들이 단순한 폰 하나로 대체된 듯 싶다.



사이란

가깝거나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거나 사라지는 것들이야

...

(중략)

사이는 없고

사이는 단지 좋다 뿐이야

- 졸고 「하이패스0.2」



결국, 그랬던 것이다. 그때 그 시절에는 사이란 것이 없었다. 사랑과 우정보다 의리를 떠들었다. 연애와 공부보다 무언가에 대한 넔두리를 외쳤다. 새벽 거리에서 늘 김현식의 넋두리를 불렀드랬다.


지금의 젊은이들도 나름대로 이런 날들을 살아가고 있겠지, 그때 우리와는 다르게 말이야


ㅡ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몰랐던 철부지 시절들이 있었다네, 오늘의 주제에서 벗어났지만,

ㅡ 어른이란 게 또 한 번 너무나 부끄러운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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