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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러플 Oct 09. 2018

시를 읽는 법

하루한편의 쉬운 시쓰기 #131


  시를 읽는 법
  황현민





  아주 오래된 숲길을 걸었다 저 길 끝에는 폭포가 있고 폭포 아래 명상센터가 있었는데... 그 기억을 따라 숲길을 걸었다 어느덧 폭포 아래에 이르렀을 때 풍경은 옛날과 사뭇 달랐다 제가 잘못 온 건가요? 기억이 머물던 그 자리가 아니었다 꿈에서 꿈속을 헤매듯 풍경들이 혼란스럽다 
  얼굴 없는 푸른빛이 나타나 나를 이끌었다  


  컨테이너 박스가 차곡차곡 쌓여진 숲에 도착했다 저 많은 컨테이너들은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 아니 어떻게 가져온 것일까? 박스마다 방이 두 개로 나누어져 박스마다 한 사람씩 머물 수 있다고 한다 박스마다 사람들이 들어앉아서 명상 중이었다 나는 푸른 존재가 이끄는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는 왜 여기로 들어왔을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방 한 군데는 원이 그려져 있고 구석마다 향초가 켜져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동그라미 안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어둠과 적막 속에서 푸른 불빛들이 혼란스러웠다 반딧불 같은 푸른 것들이 사라질 때까지 호흡을 멈췄다가 천천히 내쉬었다 똑같은 이 방들이 좌우로 위아래로 앞뒤로 이 숲을 채우고 있다 아니 이 지구를 아니 저 우주를 채우고 있다 방마다 모르는 타인들이 앉아서 명상을 한다 아니 둥근 원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하는 사람도 있다 밥을 먹는 사람 음악을 듣는 사람 요가를 하는 사람 잠을 자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편지를 쓰는 사람... 나처럼 시를 짓는 사람 나는 그들을 생각하다가 불현듯 그들을 잊고자 지그시 눈을 감았다


  수많은 방속에 내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닮았다 모든 방들을 내 속에서 버린 순간부터 수많은 방 속에 내가 들어앉았다 나는 여기 동그라미에 앉아 명상을 하고 있는데 다른 방마다 다른 내가 있다 다른 나들이 여러 가지 다른 행동을 한다 나는 다른 행동을 하는 나를 잊기로 하고 호흡에 집중한다 그 순간 모든 방 속에 있는 나들이 동그라미 속으로 들어앉아서 나와 같은 자세로 눈을 감았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컨테이너 박스 속의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각각의 방속에 있던 내가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옆 박스의 내가 옆 박스의 나로 머지 되었다 점점 사람들은 줄어들고 방들은 텅텅 비기 시작했다 저 많은 사람들 중 나는 누구일까? 저는 지금 어느 방에 있는 걸까요? 박스 넘버와 방 번호는 끝이 없다 나는 나의 방 번호를 까먹은 지 오래다 끝없는 호실 중에 저는 지금 몇 호실에서 눈을 감고 있는 걸까요? 갑자기 나의 존재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많은 나들 중에서 내가 누군인지 찾아야 한다 결국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


  어느덧 무진장 방은 모두 비었다 빈 박스들은 모두 사라지고 단 하나의 컨테이너만 남았다 저 두 사람 중에 저는 누구일까요? 저 두 개의 방 속에는 똑같은 내가 있는데 저 둘 중에 누가 나일까? 오래된 숲은 나로 점점 시작해서 나로 다시 돌아오는 중이다 긴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긴 시간이 흘렀을까요? 나는 살아있는 걸까 죽어있는 걸까? 아니면 다른 방 속에서 이미 사라진 나일까? 저 둘 중에 나는 존재하는 걸까?


  마지막 컨테이너가 사라졌다. 건넛방의 내가 건넛방의 나로 머지 되었다 왼쪽과 오른쪽 중 누가 나였을지는 전혀 모른다 모든 방은 사라지고 한 사람만 남았다 이 숲에 오로지 한 사람만 남겨졌다 저 사람이 나였구나, 그런데 나란 느낌은 왜 없을까? 그 순간 그 한 사람마저 사라졌다 나는 이제 없다 아,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저는 누구일까요? 저를 찾아주세요.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자, 눈을 떠보세요


  바로 당신, 지금 이 시를 읽고 있는 당신이 바로 접니다.











  


  한글날을 맞이하여 무언가 해야지, 시 한 편 지어 올린다. 이 시는 좀 더 다듬어서 완성도를 높여야 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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