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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러플 Dec 17. 2023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한국사를 전면 개편해야만 국사의 앞뒤 맥락이 이어지고 이해 가능할 텐데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유추,

이것은 상식이고 진실 찾기가 가능하다.

누구나 올바로 판단하면 정답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국사를 싫어하는 까닭이다. 너무나 황당하니까.


거란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했다는데, 당나라가 10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했다는데ㅡ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요? 초등학생도 이해하기 어렵잖아요. 일단, 좁은 땅덩어리에 그 많은 군인이 어떻게 들어와 싸운단 말이냐고요? 무슨 출근길 지하철도 아니고 말이에요. 옛날에는 도로도 좁았을 텐데ㅡ (실제 그 많은 군인들이 좁은 한반도에 침입했다면 지들끼리 밀리고 밀려서 지들끼리 압사해서 다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에요.) 북쪽 특정 지역에서만 그 많은 군인이 몰려서 전투할 공간이 어디 어디 있을까요? 분산해서 이동하고 분산해서 싸운다고 해도 좁은 강과 산골짜기가 많은 산악지형이라서 이동이나 숙식이나 그 많은 병력이 머물 공간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아, 좁은 땅덩어리에서 백만 대군이 사십만 대군이 쳐들어와서 전투했다는 게 좀체 이해할 수 없다고요.


한반도에는 이 많은 군인이 들어와서 전쟁할 넓은 성도 넓은 터도 없지 않나요?


한반도 현 남한 인구가 오천만이고 가동 가능한 군인수는 17% 정도라고 하자. 이것은 실제보다 더 많은 수일 게다. 인구 넘쳐나는 현시점에서 여자와 아이와 어린이와 노인을 제외하고 청년과 중년과 장년까지 최대 800만이 가능한 수준이다. 오천만 기준에서 동원 가능한 수치다.


현재 기준 현역 군인수는 훨씬 적다. 동원 가능한 군인수의 십 분의 일 정도라면 최대일 것이다. 아마도 현재 시점에서 현역 군인은 최대 80만 명이면 최대치일 것이다.


자, 고구려와 고려시대 인구수를 살피고 따져보자.


인구에 대한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의 요약이다.

인구는 인간 집단의 계수(計數)로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으로 구획된 일정한 지역 내에 거주하는 주민이다. 그 지역에 사는 외국인이나 이민족도 포함된다. 인구총수 추이만 보면 삼한시대 482만 명, 통일신라시대 675만 명, 고려 초기 780만 명, 조선 초기 991만 명, 일제강점기 초기 1,293만 명을 거쳐, 현재는 남한만 5천만 명이 넘는다.


위 통계를 신뢰할 순 없지만.

기록에 따라서 산정하면 당시 고구려 총인구수는 대략 120만 정도란다. 여기서 17%가 동원 가능한 군인수라 하자. 21만 정도가 가능하다.


당나라는 100만의 군인이 고구려를 침공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를 경계할 군인이 더 남아있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더 많은 군인이 동원 가능했을 게다. 최소 당나라 인구는 그 당시 1천만이 넘었다는 이야기다. 당나라 인구수는 대략 고구려의 최소 10배 이상이었다는 결론이 난다. 맞나? 8세기 기준 5천만 명이란다.


2023년 현재 남한의 군인수는 대략 50만 명 수준이고 예비군은 300만 명 수준이다. 인구가 넘쳐나는 현시점에서 전쟁 시 참여 가능한 한반도의 남한 인구수가 이 정도인데ㅡ 옛날에는 어땠을까? 아, 너무나 뻔하고 누구나 충분히 유추가 가능해진다. 잘해야 십 분의 일이고 남녀 비율로만 남자 이분의 일과 여기에 전쟁 참여가 가능한 인원은 어린이와 노인을 제외하면 절반에서 다시 삼분의 일인 게다. 누구라도 이러한 근거를 유추할 수 있고 위의 수치를 최대치로 계산해서 분석이 가능해진다.


무엇보다 좁은 땅에서 백만 대군과 전투가 가능한 곳이 어디 있겠는가? 다 같이 한 곳에 밀집해서 몰살당하거나 압사당하자는 꼴 아닌가?! 이건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다. 1평당 1인이 전투 가능한 최대 밀집 상태를 감안한다면 백만 명이 전투를 하려면 백만 평의 최소 100배인 억만 평의 평지와 낮은 언덕들이 곳곳에 두루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 당시 그만한 군인이 머물 수 있는 마을이나 성이 한반도에 있었겠는가? 십만 명도 머물 성이나 마을이 전무했을 것이다. 한반도 총면적이 7백억 평이라고 치면 북한이 최대 4백억 평이라고 치고 생각해 보자. 현재 기준 70%가 좁고 가파른 산악이니까 강을 포함해서 평지 가능한 30%는 백이십억 평이다. 이렇게 따지면 북한만 120곳이나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긴 하는데ㅡ 실제는 산과 강과 평지가 혼재되어 있고 들쑥달쑥한 산악지형 특성상 당시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재도 북한 전 지역이 아닌 특정지역에서만은 거의 불가능할 듯ㅡ


백만 대군이 주둔하면서 전쟁이 가능한 곳이라면 강과 작은 언덕을 포함한 1억 평의 땅들이 흔해야 가능한 일이다. 서울 면적이 2억 평 가까이 될 것이다. 대전이 1억 7천 평일 것이다. 이런 너른 평원은 북한에는 신의주나 평양이나 개성뿐일 것이다. 압록강 이남 북쪽지형에는 전혀 없고 오히려 좁고 험준한 산악이다. 남한보다 북한이 험준한 산악이 훨씬 많다.


백만 대군의 전투가 가능한 지역은 드넓은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대륙에서나 가능한 전투일 게다. 유라시아 대륙에선 시베리아나 몽골과 아라비아나 중국의 일부뿐일 게다.


십만 대군이 일시에 한 곳에서 한반도에서 전쟁하기도 당시로서는 너무나 비좁다. 왜냐면 십만 대군이 그 당시 좁은 길로 이동하려면 너무나도 길고 긴 행렬이기 때문이다. 1인 1평의 길이로 혹은 3인 4인 1평의 길이로 주로 행군했을 것인데 그 길이만 따져도 너무나 길기 때문이다. 십만 대군 기준 3인 4인 대열 기준 10km 긴 줄이 내내 이어져 이동하는 꼴이다. 현재도 행군 시 1인 행렬로 많이 이동해야 한다. 한반도는 산악이 많아 좁은 길이 당시에는 더 많았을 테니까 무엇보다 일렬로 행군해야 안전하고 신속하고 분산되어 적이 출몰해도 응대하기가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십만 대군이 일렬로 이동하는 평균 길이는 대전 중심가에서 청주 중심가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행렬인 꼴이다. 그 당시에는 일렬 행군이 이 정도란 이야기다. 물론 분산해서 이동하여 집결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쉽게 눈에 띄었을 것이란 거다. 십만 명  기준이 이러할진대, 백만 대군이면 어떻겠는가? 분산 이동한다고 해도 곳곳에서 다 보인다는 이야기다. 백만 대군이 일렬로 이동한다면 그 길이는 한반도 전체 가로의 길이에 해당한다.


물론, 지금 시대라면 이 정도 숫자로 중공군 인해전술처럼 밀고 처내려 올 수는 있다. 지금은 도시도 많고 길도 넓고 차량 이동이 가능하고 탱크와 비행기 지원이 가능해서 일렬이 아닌 대열로 이동이 가능하고 도심 곳곳에 식량이 널려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서 현지 조달이 어렵지 않으니까. 하지만 고대시대 그 당시에는 길도 좁고 이동수단은 소수의 말과 마차뿐이고 터도 좁고 인구도 매우 적어서 마을도 작고 식량도 거의 없었다. 일시에 십만 대군이나 백만 대군이 쳐들어올 순 없다.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을 테니까. 그리고 한반도 지형 특성상 투척기 같은 대형 무기를 끌고 다닐 수도 없었을 테니까. 마차도 내내 타고 다닐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 넓은 도로가 어디 있었겠는가? 한반도에는 마을 주변이 아니면 마차가 다닐 너른 길이 당시에는 없었으니까. 중국 사극에는 마차가 곳곳에 등장하지만 한국 사극에는 마차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6.25 전쟁 당시 1억 인구인 중공군의 인해전술도 초기 30만에서 중반 80만 명까지 후반 120만 명까지 지속적으로 전쟁이 종료될 때까지 투입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것은 고구려나 고려의 전투 대치 상태가 아닌 압록강에서 시작해서 한강 이남까지 중공군이 밀고 내려와서 서울을 수복당했을 때의 전체 참전병력의 수치인 게다. 이 기록을 신뢰할 수 없지만, 이렇듯 현대 시대에선 이러한 중공군 전략이 한반도에 가능했을 수는 있다. 앞서 말했듯 도로도 넓고 도시도 많고 차량 이동이 가능하니까. 이 또한 일시에 투입한 것이 아니라 나눠서 투입한 것이다. 한반도 전체를 점령했을 당시의 중공군 수치일 뿐이다. 당시 북한군은 총 참전 군인수가 45만 명, 남한군 총 60만 명 수준이었다고 한다. 미군은 총 20만 명 정도 참전했다고 한다. 좁은 한반도에서 현대 전쟁에서의 병력수도 이 정도일진대ㅡ


한마디로, 고구려나 고려 시대의 한반도 내  북방 지역에서 백만 대군이나 사십만 대군의 전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즉, 바꿔 말하자면 전투지가 반도가 아닌 대륙이었을 것이란 결론이다. (당이나 거란의 왕이나 장수였다면 반드시 수륙 양공전을 펼쳐야 했을 것이다. 물론, 역사상 거란이나 당이 해상으로 침입한 적이 거의 없고 왜 뿐이라는 것도 유추의 핵심이다.)


고구려나 고려의 은 그 당시 현재의 중국 대륙까지 펼쳐져 있었다는 결론이다. 그래야 한국사가 어느 정도 딱딱 들어맞으니까






P.S. 제가 계산한 숫자들이 혹 틀릴 수도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C) 2023.12.17. HWANG HYUN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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