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데이트구나
*
저 문밖으로 나가면 드디어 그를 만날 수 있다. 비행기가 지연되면서 도착 예정 시간보다 2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꼬치꼬치 캐묻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에게는 최대한 착한 표정과 부드러운 말투를 동원하여 열 가지가 넘는 질문에 빠르게 답변해 나갔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Welcome to New York!”라는 인사와 함께 드디어 여권에 도장이 찍혔고, 인제야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뉴욕이라는 게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를 만나기 10초 전,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눌렀다. 그와의 첫 번째라면 무엇이든 기록하고 싶었다. 많이 흥분되어 화면이 마구 흔들리지만, 지금도 여전히 빨간 장미꽃을 들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숨도 쉬지 못할 만큼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눈물을 찔끔 흘리는 그를 그저 웃으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첫 통화가 그렇듯 그와 맞잡은 손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배고프지? 가자. 하루도 빠짐없이 듣던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이제는 바로 옆에서 들을 수 있다는 건 기적과 가까웠다. 그동안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인사이자, 그가 정말로 하고 싶었다던 ‘우리 내일 만나!’를 나눈 지 22시간 만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한 긴 여정이었다. 잠을 한숨도 자지 못해 초췌해진 얼굴이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들떠 보이기만 했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고 롱아일랜드 시티로 향했다. 이미 새벽 1시였다. 허드슨강 맞은편으로 맨해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였다. 상하이의 와이탄을 대규모로 확장해 놓은 듯한 야경이었다. 강가의 바람이 차가워 그가 서둘러 차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그곳을 잠시라도 보여주고 싶었던 이유는 한 가지 미신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 여행지에 도착했을 때 가장 유명한 장소를 봐야 먼 훗날 그곳에 정착하게 되었을 때 잘 산다고 말이다.
*
나는 내가 시차 적응을 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어느 땅에 떨어지든 단 하루 만에 적응했기에 꽤 자신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은 탓일까, 아니면 생애 처음으로 서쪽이 아닌 동쪽으로 날아왔기 때문일까. 3일 차가 되던 새벽에도 나는 어김없이 3시에 일어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잘 자고 있는 그에게 “나 잠이 안 와. 나 귀찮아?”해도 영 반응이 없었다. 옆에서 아무리 쫑알쫑알 말을 걸어도 일어나지 않던 그가 갑자기 꿈을 꿨다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꿈이었다고. 다시 잠들 수가 없다는 그에게 나도 그렇다고 말하자, 그럼 일어난 김에 오늘은 워싱턴 D.C.로 가자고 했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오늘의 일정을 정한 뒤 이른 새벽과는 어울리지 않는 텐션으로 옷을 갈아입고 가방에 먹을거리를 채웠다. 소풍을 떠나는 어린이의 마음이었다.
미국 수도인 워싱턴 D.C.는 뉴욕에서 차로 족히 4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오래전 내 이상형 리스트에 ‘운전 잘하는 남자’ 목록이 있었는데, 그는 한 손으로 내 손을 꼭 쥐고서도 아주 능숙하게 운전했다. 나는 속으로 ‘하느님,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세요?’라며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다시 한번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능숙한 운전 솜씨를 뽐내며 일부러 빙 둘러서 뉴저지의 fort lee라는 동네를 보여주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미국의 가장 보편적인 2층 주택이 줄지어 서 있었고, 한국의 작은 섬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온통 한국 간판이었다. 뉴욕의 작은 아파트 렌트비 절반 값으로 이런 큰 집에서 살 수 있다며, 우리가 나중에 결혼한다면 여기서 살고 싶다고 그가 말했다. 도중에 고속도로 휴게소도 들렀는데, 비록 통감자나 소떡소떡 따위는 없었지만 미국 답게 쉑쉑버거가 있었다. 가는 길에 내가 심심하지 않게 뉴욕에서 가장 큰 한국 라디오 방송도 들려주었는데, ‘사과가 일불구구 (1.99$) 배추가 이불구구 (2.99$), 미친 크레이지 세일!!!’이라는 촌스러운 광고도 들을 수 있었다.
미국의 수도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내일이 추수감사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백악관, 워싱턴 기념탑,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국립자연사박물관, 국회의사당, 링컨 기념관까지 하루 종일 돌아다닐 예정이었다. 모든 관광지가 걸어서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기에 그와 손을 잡고 천천히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었다. 한국인이나 중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는 사진을 부탁하기도 했는데, 역시 사진은 동양인에게 맡겨야 한다는 믿음이 다시 한번 굳어지는 순간이었다. 그와 대형 연못 넘어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지만, 마지막 링컨 기념관만 남겨두고 슬슬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나의 저질 체력을 금방 파악한 그가 전동 킥보드를 빌려 타자고 제안했다. 그는 나를 앞에 태우고 능숙하게 운전하기 시작했는데, 이 나이 먹고 국회의사당과 백악관 근처를 킥보드로 누빌 거라는 것은 내 평생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엄마 오토바이 앞에 탄 반려견 양파의 심정이랄까. 뺨에 스치는 시원한 가을바람 탓인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것이 데이트구나. '진짜' 데이트란 이런 것이구나! 노란 은행나무 사이를 가르며 빠르게 달리는 킥보드 위에서 나는 데이트란 좋아하는 사람과 새로운 경험을 해본다는 의미임을 알게 되었다. 아마 오늘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온돌이 없어 추울 거라 예상했던 뉴욕 아파트는 오히려 반팔이 필요할 정도로 더웠다. 건물이 뜨거운 공기를 내뿜느라 겨울에도 불구하고 많은 뉴요커들이 창문을 열어 온도를 낮춘다고 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 (Thanks giving)이라 1년에 단 한 번뿐인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맨해튼에 갔다 왔다. 그가 매년 추수감사절 때마다 비가 온다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굵은 비를 뚫고 퍼레이드를 보러 갔지만 10분 정도 서 있다가 이내 돌아서서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나처럼 키 160의 동양인은 우산을 든 거인들 사이에서는 아무리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한 풍선이 지나가더라도 제대로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그보다는 평소와 달리 길에 사람이 없는 맨해튼을 걷는 편이 더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뉴욕의 분위기가 눈앞에서 그대로 재연되니 손에서 카메라를 놓을 수가 없었다. 마치 대규모 영화 세트장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나에게 뉴욕의 역사적인 건물부터 복잡한 법률까지 모두 설명해 주었다. 그 덕분에 바둑판처럼 가로 세로 짜여 있는 맨해튼의 길 구조에 조금씩 익숙해졌다. 윌 스미스와 셰퍼드가 출연한 영화 '나는 전설이다' 촬영지도 보고, 미국의 첫 쉑쉑버거 집도 구경하고, 1902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플랫 아이론'에도 갔다. 대부분의 길이 보수공사를 하기 위해 철재 구조물로 가득했다. 나는 그의 폭넓은 지식에서 뉴욕의 오래된 역사를 느끼기보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그의 시간이 오롯이 느껴졌다. 나는 뉴욕과 그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고 있었다.
*
낮잠을 자고 일어난 그에게 건강하게 샐러드를 먹일 작정으로 계란을 삶고 있었다. 나와 있는 동안 그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나의 비밀 프로젝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에서 깬 그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양꼬치 앤 칭다오를 먹으러 나가자고 말했다. 배가 고프지 않은 나는 샐러드를 해줄 테니 대충 저녁을 때우자고 말했고, 그런 나를 소파에 앉혀놓고 구글 리뷰에서 양꼬치가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맛있게 생겼는지 열심히 보여주었다. 연변 냉면 사진까지 보자 갑자기 허기가 진 나는 "양꼬치 먹으러 갈까?" 하고 수줍게 고백했다. 하지만 나를 놀리고 싶어 졌는지 그가 갑자기 그냥 집에서 해결하자고 했고, 급 삐진 나는 "나 집에 갈래."하고 마치 초등학생처럼 토라져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집이라고 해봤자 내가 갈 곳이라고는 침대밖에 없었다) 샐러드 먹자. 싫어! 그럼 파스타 먹을래? 싫어! 와 같은 실랑이를 벌이다 “그럼 양꼬치 먹으러 갈까?”에 묵묵부답인 나를 향해 자신이 먼저 내려가 차를 가지고 밑에서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자리가 없어 역 앞에 주차했기에 꽤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양꼬치 집으로 향하는 길에 그가 오늘은 소주가 마시고 싶다고 했다. 그의 건강에 차라리 맥주가 나을까 소주가 나을까를 고민하는 내게 오늘은 소주를 마시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곧 웨이팅이 있는 인기 많은 양꼬치 집에 도착했고, 안에 들어서고부터 모든 주문을 중국어로 하는 그를 보며 다시금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아, 잊고 있었다. 그가 중국어 하는 남자라는 것을. (공교롭게도 각자 4개 국어씩 한다) 반팔 차림의 그가 위아래로 담이 들어간 옷을 입고 있는 나에게 잠바를 벗어주었다. 자꾸 나를 딸처럼 대하는 그에게는 엄마 같은 다정함이 느껴졌다. 솔직히 우리 엄마보다 더 엄마 같았다. (엄마 미안해!) 양꼬치를 먹다가 식은 건 자기가 먹고 따듯한 것은 나를 먹이거나, 주차장까지 멀고 추우니 전화하면 밑으로 내려오라거나. 식사하는 내내 내가 너무나 갖고 싶은 남자가 나를 이토록 좋아하다니, 이건 기적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필 배경음악으로 주걸륜 (호주에 가서 콘서트를 볼 정도로 좋아하는 대만 가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오늘따라 맥주가 술술 들어갔고 전혀 취하지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완벽하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내가 궁금해하던 사적인 이야기 몇 가지를 알려주었다. 사실 그와 양꼬치를 먹으며 속으로 엄청난 결심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와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면서 이 남자랑 살면 평생 잘 살 수 있겠다, 혹은 평생 행복할 수 있겠다는 문장이 자꾸 마음속에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택시 기사가 우리가 부부 사이인지 물었다. 우리의 대화가 정말 달달하다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