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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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 뉴욕이라는 사실 말고는 특별한 것 없는 일상적인 데이트를 이어갔다. 손을 잡고 해변을 걷거나, 백화점을 구경하거나, 그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이자카야에 가서 일본 맥주를 마시고. 모든 연인이 누리는 평범한 데이트를 우리는 이렇게 어렵게 시작하게 되었다. 뉴욕은 화려하고 경이로운 동시에 금세 피로해지는 곳이기도 했다. 바로 옆에서 비명을 지르는 듯한 도시의 소음과 거리를 걸으면 어쩔 수 없이 맡게 되는 대마초 냄새, 뉴요커와 관광객으로 섞인 혼잡한 도시 속에서 그가 없었다면 나는 진즉에 국제 미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이곳 사람들의 제스처에 도통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보통 오라고 손짓할 때 손등을 하늘을 보게 하고 손가락을 아래로 구부리는 것이 예의인데, 여기서는 손가락을 위로 까딱까딱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는 운전할 때 고마우면 검지를 들어 올리거나, 예의 없는 사람을 대할 때는 이탈리안 사람처럼 양손을 들어 올리고는 했는데, 뉴요커인 그가 옆에 있어 이런 사소한 것들에 작은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되니 안심이었다.
그는 내 손을 잡고 BMW 브리지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장소로 데려갔다. BMW는 브루클린, 맨해튼, 윌리엄스 다리를 말하는데, 단지 강을 건너는 다리일 뿐인데도 오래된 역사가 주는 장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브루클린 브리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덤보에 가서 그와 함께 사랑스러운 사진도 남기고, 불알(?)이 노랗게 닳은 월스트리트 황소 동상도 보고, 공짜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도 보았다. 자유의 여신상이 내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작았는데, 이렇듯 무엇이든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보는 것이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그가 지나가는 말로 이제 뉴욕에 온 것이 실감 나냐고 물었다. 여전히 시차 적응으로 헤매고 있는 나는 가끔 이 모든 것들이 꿈만 같아서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게 마음에 걸렸던 건지 오늘 밤에 싹 씻고 드라이브를 나가자고 했다. 뉴욕에 대한 로망이 없었던 나도 그가 데리고 간 타임스퀘어의 수많은 전광판 앞에서 완전히 압도되는 기분에 휩싸였다. 날씨가 정말 추웠는데도 감정이 넘실거려서 추위까지 까먹을 정도로 말이다. 타임스퀘어에 다녀온 뒤 그를 한 번 더 사랑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는 그가 고마웠다. 타임스퀘어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집에 돌아와 자는 내내 여전히 그곳에 서 있는 꿈을 꾸었다.
다음 날은 하이라인과 첼시 마켓에 다녀왔다. 하이라인은 지상에서 약 10미터 높이에 있는 기차 철로를 활용해서 만든 공원인데, 봄이 오면 꽃향기로 가득하다고 했다. 그는 밖에만 나가면 연인에서 갑자기 여행 가이드 모드가 되어 이것저것 설명해 주고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내가 뉴욕에 오기 전에 틈날 때마다 관광안내 책자를 보며 공부해 두었다고 했다. 첼시 마켓에서 한국에 가져갈 선물을 사고 나오자 벌써 날이 어두컴컴해졌다.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매일 하루가 짧았다. 마지막으로 루프탑에서 엠파이어 야경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그의 얼굴이 슬퍼 보였다. 별것도 안 했는데 하루는 금방 가고, 자꾸 피곤해하는 나에게 뉴욕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토라진 아이 같은 표정으로 이제부터 그냥 집에만 있자고 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에게 절대 뉴욕에 왔다고 하지 말라는 농담까지 더하면서. 나에게 여행이란 모든 걸 보지 않아도 좋으니 여유로움이 우선이었고, 그는 몸이 피곤해야 그것이 여행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함께 있는 동안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밥을 먹다가도 설거지를 하고, 다 먹은 병과 캔은 바로바로 밖에 쓰레기장에 버려야 한다. 그를 바라보면 엄마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예상이 가기도 했다.
그다음 날도 그가 차려준 아침을 먹고 뉴욕 공립도서관, 브라이언 파크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 세상에서 가장 큰 트리가 있는 록펠러 센터, 세인트 패트릭 성당, 라디오 시티, 그리고 빌딩 전체가 여행용 트렁크 모양을 한 루이뷔통 건물을 보고, 애플 매장을 구경한 뒤에 트럼프 타워까지 다녀왔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집에서 그가 해 준 스파게티를 먹으며 오늘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 그에게 트럼프 타워 앞에서 트럼프 가면을 쓰고 흉내를 내던 아저씨가 잊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행 끝에 서서 내 기억에 가장 남았던 건 매일 그가 해 주던 요리였다. 평소 잘 챙겨 먹지 않아 요리하지 않는 나는 여행 내내 그가 해주는 요리를 받아먹기만 했는데, 그는 나와 반대로 잘 챙겨 먹고 또 요리도 잘하는 사람이었다. 키가 180cm인 사람은 이 정도 먹는다는 걸, 주위에 고만고만한 사람들과 살았던 나는 처음 알게 되었다. 샤오룽바오 6개가 들어가는 찜통을 한 번에 3판이나 먹은 적도 있다고 내게 고백했다. 먹는 입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샤오룽바오 안에 육즙을 쭉 빨아먹는 그에게서 중국 판다 한 마리가 보였다. 한국으로 가서 꼭 한식을 배워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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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온 지 10일이 되었다. 아침에는 잠시 진눈깨비가 내렸고,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 가장 큰 보험 회사 CEO가 암살당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뉴욕에서도 여느 곳과 다름없이 크고 작은 일이 생기고, 그럼에도 사람들은 모두 제 할 일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 글을 조금 느긋하게 쓰고 싶었는데 그와 하루 종일 붙어 있어 그럴 수 없는 날이 늘어났다. 그런 나를 보며 자신은 잠시 뉴스를 볼 테니 나에게 글을 쓰라고 말했다. 그가 밥을 차릴 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옆에서 기웃거리면 ‘소파에 앉아서 글 써.’라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응원해 주고는 했다. 뉴스 소리가 컸지만 그래도 꿋꿋이 글을 써내려 가고 있었는데, 그가 너무 시끄럽지 않았냐며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싱글로 오래 산 사람들은 이제 누군가와 함께 지내면서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처럼 사소한 것부터 중대한 가치관까지 바꾸어야 할 때가 오고 마는 것이다. 그와 있는 게 너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다가올 변화가 두렵기도 했다.
그에게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가정적이고 경제관념이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각자 와인 한 병씩 꺼내 마시며 서로 살아온 이야기와 앞으로 함께 살아가고 싶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는데 나 같은 사람도 괜찮냐고 묻고 싶었다. 나에게 이러한 단점이 있는데 그래도 괜찮냐고 묻자, 그는 사랑하는 이의 단점까지 모두 받아들이면 그건 더 이상 단점이 아니라고 대답해 주었다. 반대로 그가 나에게 어떤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지 물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건 고생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고생을 아는 사람이 분명했다. 고생을 아는 사람은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순간적인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에게서 자꾸 우리 가족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가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고생했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엄마의 어려웠던 시절과 미국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아빠의 이야기와도 닮아 있었다. 스타벅스 컵을 들고 있는 그의 손가락은 친오빠와 닮아서 사진으로 남길 정도였다. 배가 안 고프다며 굶으려는 나를 자꾸 먹이려는 모습은 외할머니 같기도, 운동을 한 듯 커다란 몸은 외삼촌이 생각나기도 했다. 외모와 분위기, 심지어 그의 손 모양에서도 자꾸 우리 가족이 보여, 나는 걱정과 달리 뉴욕에서 보내는 한 달이 전혀 외롭지 않았다. 그는 나를 정말 자신의 가족처럼 보살펴주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사이 편의점에 다녀온 그가 입술이 건조해진 나를 위해 체리 향 립스틱을 건네거나, 뜨거운 것을 못 먹는다고 하자 내가 쓸 그릇을 잠시 냉장고에 넣어두는 등 지나가는 내 말을 모두 까먹지 않고 해결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의 유머와 생존 지식, 엄마 같은 다정함과 좋은 기억력에서 오는 배려. 특히 그가 고르는 단어나 문장에서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고, 그의 많은 면모에서 특히 나의 엄마가 아른거렸다. 심지어 그는 나와 정반대인 엄마의 MBTI까지 똑같았다. 비록 나는 그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지만, 내가 엄마를 이해하느라 30년을 썼으니 그를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적어도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해한다는 것은 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나는 한 사람의 역사를 알아가고 있고, 그것이 내게는 뉴욕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