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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얼굴

이 세상 전부를 사랑하는 방법

by 김규리

그와 서른두 개의 아침을 함께했(을 때 쓴 글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에게 일어났다고 보고하는 것. 나는 부산에 살고 그는 뉴욕에 있으니, 내가 아침이면 그는 밤이고, 그가 아침이면 나는 밤이다. ‘Good morning for me, for you good evening.’ 그가 보낸 메시지가 마치 책 제목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몸이 떨어져 있으니 더 노력해야 한다며, 가능하면 연락은 미루지 않고 바로바로 답장을 한다. 앞으로 136개의 아침을 더 맞이해야 우리는 비로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만큼 서로를 가까이 느낄 수 있게 우리는 매일 통화를 했다. 최장 기록은 하루 6시간이다. 졸음이 쏟아져 전화를 끊었지만, 사실은 더 할 수도 있었다. 통화를 오래 해서 다른 볼일을 보지 못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지금 우리는 만나지 못하기에 데이트 대신 통화하는 것이라 괜찮다고 그가 대답했다. 매일 하는 통화이지만 그와의 대화는 매번 맛있었다. 그는 오래지 않아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는 공통점이 아주 많지만, 그중에 조금 특별한 공통점은 서로의 언어를 이해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쩌다 보니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게 되었는데, 나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를 하고, 그는 영어 한국어 중국어 스페인어를 한다. 그래서 가끔 장난으로 단어 맞추기 게임 같은 것을 하면, 서로 모르는 단어를 알려주면서 자연스레 사고가 확장되는 것이다. 새로운 단어를 알려주는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사람이다. 전에는 몰랐던 말을 알게 되면서 새로운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특히 내 세계는 그로 인해 더욱 넓어졌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미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평생 가지 않아도 괜찮은 곳이라 여겼다. 영 관심이 없어 뉴욕이 도대체 무엇으로 유명한지도 몰랐던 나에게 “그럼 자유의 여신상은 어디에 있는 줄 알았어? 한국 울릉도에 있는 줄 알았어?”라며 그가 놀려댔다. 그럼 나는 세계의 중심이라 불리는 뉴욕에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찾아내 그에게 반격했다. 지금까지도 뉴욕에 없는 것을 찾아내 그를 놀리는 것이 나의 기쁨 중 하나이다.


처음 그와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나는 습관처럼 불안했다. 사랑의 끝은 결국 헤어짐이 아닐까. 먼저 내 곁을 떠나게 될까 개를 기르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기쁜 것보다 슬픈 것을 먼저 떠올렸다. 하지만 그에게 사랑이 시작될 때의 두려움에 대해서 털어놓자, 그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잘 될지만 생각한다며 단번에 나를 안심시켰다. 그는 나의 불안을 잠재우는 사람이었다. “나는 너를 믿어. 네가 잘 해낼 거라고 믿고, 걱정 안 해. 너는 똑똑하니까 무엇이든 잘 해낼 거야.” 엄마가 내게 해주던 말을 똑같이 그가 해주었다. 그가 살아온 환경이나 사고방식, 심지어 결핍까지도 우리 엄마와 닮은 점이 많았다. 그가 나를 바라볼 때, 어쩌면 어머니가 자식을 향한 마음일지도 모르겠다고 느꼈다. 진짜 사랑의 얼굴을 가진 사람을 만난 것이다. 든든한 내 편이 생기고 나서, 나는 이제 어디를 가든 기죽지 않게 되었다. 슬픈 꿈을 꾸어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고, 주위에서 결혼한다거나 연애를 시작했다는 친구들을 봐도 초조하기보다 내 일처럼 기쁜 마음으로 축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아이를 보아도 꽃을 보아도 다 귀엽고 예쁘게만 느껴진다. 어제와 오늘의 세상은 그다지 바뀐 것이 없는데, 그를 만난 후로 세상은 내게 좀 더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 이 세상 전부를 사랑하는 방법은, 단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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