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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적의 만남

그의 첫인사

by 김규리

고요한 아침. 너무나도 고요한 6월의 아침이었다. 환하게 밝아진 내 방에서 눈을 떴을 때, 나는 마음이 평온한 나머지 ‘여기가 천국입니까?’라고 하얀 천장에 대고 묻고 싶었다. 지난 3주간 매일 8시간씩 운전하고, 뇌에 쥐가 나도록 영어로 떠들어댔다. 비가 와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4번 달렸고, 대구의 담배 쩐 내로 가득한 7만 원짜리 모텔에도 머물렀다. 이렇게 바쁘게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기 위해 들렸을 모텔 소파에 기대어 앉아, 왜 하루가 24시간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반쯤 열린 눈으로 누런 벽지를 쳐다보면서 말이다. 아무튼 그날 아침은 나에게 있어 장정의 21일을 지나, 마침내 갖게 된 달콤하고도 아름다운 첫 휴일의 아침이었다.


게을러진 손으로 베개 밑에서 폰을 찾아 화면을 열자,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뉴욕에 사는 ….’ 나는 곧바로 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확인했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 이 사람 마음에 들어!’였다. 그가 우리 가족과 함께 서 있으면 어느 화가가 그린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우러질 거로 생각했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얻은 휴일에 내 기분은 최고로 좋았고, 마음은 평안을 되찾아 이제야 사람 얼굴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던 때였다. 과연 어땠을까? 만약 그가 내가 경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서 첫 문자를 보냈다면. 혹은 피곤함에 절인 채 낯선 모텔에 머물 때 첫 문자를 보냈다면. 아니면 너무 바빠 끼니도 거르던 때 그가 내게 첫 문자를 보냈다면. 어쩌면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에게 대충 답장하고, 지금 당장의 할 일에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있어 운명은 믿지 않지만 ‘타이밍’은 믿는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날의 컨디션, 그날의 분위기, 그날의 내 기분, 그날의 시간과 날씨, 취향부터 내가 살아온 환경과 지금 열중하고 있는 일까지. 도대체 몇천 겹의 우연이 겹쳐야 평생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던 두 사람이 기어코 만나게 되는 걸까. 그날 아침에 내가 받은 문자는, 이 지구에 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지 딱 일주일 만에 온 첫인사였다. 그리고 그날 이후 우리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서로가 궁금한 사이가 되었다.


내게는 그런 아침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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