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이 열광하는 그곳.
"우리도 슬슬 해외여행 가볼까? 곧 코로나도 잠잠해질 거 같고, 올해 추석연휴도 길잖아. 어디를 갈지는 아이들과 상의해서 결정하고, 미리 계획해서 움직일 수 있게 준비하자."
2023년 추석연휴가 꽤 길었고, 계획만 잘 짜면 일주일은 풀로 여행할 수 있었다. 양쪽 부모님께는 미리 말씀도 드려놨고 비행기 티켓과 숙소만 미리 예약해 두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버렸고, 어느덧 열 달도 더 남았던 추석이 한 달, 코 앞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부랴부랴 티켓을 찾아보니 우리가 가려던 날짜의 비행기 티켓은 한없이 비쌌고 남아있는 숙소는 가격대비, 영 성에차지 않았다. 아이들의 원성을 들을 생각도 무서웠지만, 왜 미리미리 예약하지 않았냐는 남편의 핀잔을 들을까 봐 더 겁이 났다.
평일이면 아이들 챙기기에 바빴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놀기 바빴다는 핑계가 당연히 통하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 아이들과 남편이 이 사실을 알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부랴부랴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지만, 마음에 드는 숙소는 이미 풀 북. 숙소를 검색할 때마다 내 게으름을 탓하고, 또 탓했다.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여 숙소를 찾고 또 찾았지만, 마지막 날 숙소는 예약하지 못한 채, 아이들과 노숙하는 일은 없을 거라 믿고 아이들과 함께 갈 여행지를 먼저 찾아보았다.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는 일본 도쿄였다. 둘째 아이가 좋아하는 해리포터 스튜디오와 지브리 테마파크를 예약할 생각으로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어머! 여기도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가기 힘들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이 싸한 기분. 아이가 실망할걸 생각하니, 더 서두르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아이에겐 한없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어쩔 수 없이 상황대처능력이 빠른 남편에게 그간의 사실을 이실직고했고,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남편은 대책 없는 나를 보더니 실소를 터트렸다. 으이그 하는 표정이었지만, 한두 번도 아닌 내 게으름을 탓하기보다는 그날 밤, 우리는 도쿄행 비행기를 오사카행 비행기로 바꾸고, 모든 것을 새롭게 예약해야 했다.
그렇게 계획에는 없었던, 오사카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또 난관은 시작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가려고 했던 유니버설스튜디오(이하 USJ) 익스프레스 패스권이 전부 다 매진!! 이것도 두 달 전 오픈날 예약해야 겟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셈이 빠른 남편은 4인가족 패스권과 입장권의 가격이나, 유니버설스튜디오 이틀 치 입장권의 가격이 비슷하니 이왕 간 거, 이틀 치 입장권을 끊어 조금은 편하게 움직이자고 했다. 하지만, 롯데월드나 에버랜드 같은 국내 놀이공원을 간다고 생각하고 USJ를 간다면 그야말로 경기도 오산이었다. 편하게 움직일 수 없는 어마어마한 인파와 기다림의 연속이었던 것이 실제로 가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처음 맞는 긴 연휴에 다들 이곳으로 여행을 온 듯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티켓과 주유패스만 미리 예약해 두고, 어디를 여행할지,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몇 군데의 장소만을 대략적으로 정해두고 우리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매사에 파워 J인 남편은 여행할 때 계획표를 만들어 지도에 동선을 표시해 움직이는 걸 선호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면서는 큰 그림만 그리고 움직여, 그때그때 아이들의 컨디션과 니즈에 맞춰 동선을 짜고 움직이는 걸로 스타일이 바뀌었다. 나 또한 미리 동선을 짜고 계획을 짜는 데 신경을 쓰는 것보단 상황에 맞게 움직이는 걸 더 선호하다 보니, 구글지도와 파파고앱, USJ앱 정도만 세팅한 채로 기대와 설렘만을 안고 출발했다.
여행 첫날, 간사이 공항에 도착하자 숙소로 향했다. 캐리어를 끌고 USJ를 가기보단, 호텔에 짐을 맡기고 가볍게 움직이자는 게 우리의 의견이었다. 우리는 짐만 맡기고 바로 유니버설시티로 향하는 전철에 몸을 싣고 기쁜 마음을 안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이동했다. 아침 10시도 안 된 시간이었지만 만보를 넘게 걸었고, 5살까지 유모차를 탔던 우리 집 9살 막내는, 살면서 가장 많이 걸어야 했던 이날 반쯤 넋이 나가있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았고 놀이기구 하나를 타기 위해 2시간씩 기다려야 했던 시간들은 아이들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게 했다. 등산과 산책을 좋아하는 첫째도 힘들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슬슬 버거워지는지 숙소에 가자고 하는 둘째 녀석. '여기에 든 돈이 얼만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다시 삼키고 아이를 달래, 조금 더 둘러보자고 하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귀엽기만 한 둘째 덕분에 여행 첫날은 우선 후퇴를 하기로 했다. 다음날 마리오월드를 가기 위해 오픈런을 계획했던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편의점 쇼핑을 잔뜩 해서 숙소로 돌아갔다. 어쩌면 여행 첫날밤, 더 놀지 못한 아쉬움을 가졌던 사람은 엄마뿐일지도 모르겠다.
다음날, 유니버설 시티로 모여드는 수많은 인파들에 합류하기 위해 우리는 5시부터 일어나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씻고, 아침은 간단히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우유 등을 사고, 오픈런에 필수인 영양제를 입에 털어 넣을 준비를 해서 전철을 타러 갔다. 또 한 번 많은 사람들에 놀랐는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람 많은 걸, 그 누구보다 힘들어하는 가족이기에 유니버셜로 들어가기 위해 많은 인파들에 휩쓸려 움직이는데 벌써부터 기가 빨리고 현실자각타임이 오기시작했다.
난 누군가, 여긴 어딘가...
한 시간 전에 도착했지만 이미 앞에는 두 시간 전에는 도착했을 법한 사람들로 가득 찼고 우리 가족은 사색이 된 채로, 줄 서기에 합류했다.
가져온 영양제를 털어 넣고, 편의점에서 사 온 삼각김밥과 샌드위치로 간단히 배만 채우고 마리오월드에 들어가기 위한 설렘을 안고 대기행렬에 섰다.
이날, 결국은 오픈런에 성공해 마리오월드를 신나게 돌아다녔다. 마리오 월드 안에서 사용 가능한 밴드를 착용하고, 내가 마리오와 루이지가 된 거 마냥 상자를 "띠용 띠용" 찍으러 다니고, 게임 세상 속에 들어온 것처럼 행복한 시간을 누렸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하나가 되어 신나게 추억을 만들고 나니, 아이들은 이제 놀이공원 말고, 진짜 일본을 느낄 수 있는 다른 곳을 가자고 했다. 아니 벌써??!!
'우리 오늘 밤 마감시간까지 여기서 놀아야 해. 엄마는 아직 못 가본 장소들이 많다고~~ 티켓을 끊었으면 뽕이 빠지도록 놀아야지. 여기서 나가자니 무슨 말이야~~ 너희는 나중에 커서 애인이랑 오든, 가족이랑 오든 또 올 수 있겠지만, 엄마, 아빠는 다시는 오기 힘들 곳이잖아. 거기다 돈이 얼마니??!!' 목구멍까지 새어 나오는 내면의 목소리들을 한번 더 삼킨 채, 잠시 가족회의를 거쳐 6시간 만에 이번여행에서 완전히, USJ를 탈출했다.
사진 좀 그만 찍으라는 두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우리의 추억은 마음속에 고이 접어 넣어둔 채로...
그리고 다음 행선지를 어디로 잡을까 하고,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의 의견을 물어보니 뽑기가 하고 싶다는 두 아들. 아이들이 일본을 가고 싶은 여행지로 뽑은 건, 뽑기 기계가 다양하다는 것도 한몫을 했다. 뽑기 기계의 선구자 나라답게 거리 곳곳마다 뽑기 기계들이 있었고, 100엔으로 신기한 인형들을 뽑아내는 아이들을 보며, '저 인형을 어떻게 들고 가야 하나. 어차피 다 내가 들어야 할 텐데.'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도 흥이 많은 남편이 찾아낸 곳은 실로 어마어마 한 곳이었다.
* 라운드원
종합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주로 하는 일본에 본사를 둔 회사입니다. 볼링장, 아케이드 게임, 가라오케, 당구, 스포차(스포츠 활동 수집)로 실내레저단지의 운영에 임하고 있습니다.
11층 큰 건물에 층층별로 볼링장, 탁구장, 몇백대의 오락기와 인형 뽑기 기계가 모여있던 초대형게임센터. 일본사람들은 이곳에서 가족들과 휴식을 취하고 스트레스도 풀기 위해 종종 찾는다고 한다. 다른 층은 관심이 없어 사진도 없고, 화장실 이용을 위해 슬쩍 둘러본 게 다 인지라, 이 글을 쓰는 내내 아쉬울 뿐이다. 아이들이 인형 뽑기를 마음껏 하게 해 주겠다는 남편의 일념으로 찾아낸 이곳은 아이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릴 적 오락실은 나쁜 사람들이 많아 함부로 가면 안 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던 나와는 다르게 두 아들은 인형 뽑기 방도 오락실도 낯설어 뵈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뽑기는 어쩌다 한번 해주기는 하지만, 돈낭비라 생각해서 잘해주지 않기도 했고, 여행 왔으니 기분이다 싶기도 해서 각각 2천 엔씩을 바꾸어주었고, 아이들이 신나서 뽑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과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USJ를 가지 말고 여기를 더 일찍 올걸 그랬다며, 아이들이 여기서 더 즐거워한다며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여행기간 3박 4일 동안 이곳을 드나들었고, 도톤보리내에 지점뿐만 아니라 우메다점까지 실로 다양한 뽑기 기계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아이들은 그간 모아 온 용돈을 환전해 온 돈으로 ‘탕진잼'을 느끼고 있었다. 커다란 인형도 쓱쓱 뽑아냈고, 인형의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접 직원에게 가서 손짓, 발짓을 해가며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여행 계획을 짜며 고객의 니즈 파악이 필수인데, 이런 곳이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남편 회사 직원의 와이프가 스튜어디스라 오사카를 수시로 여행하는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사실은 매번 USJ만 가도 딸들은 좋아한다고, 거기서 사진 찍으며 시간을 보내기에도 모자란다고 하는데, 아들만 둘인 우리 집은 인형 뽑기 방 같은 곳에서 더 신나고 즐거워했다니 거긴 어떤 곳이냐며 궁금해했다. 여행을 다녀온 지 몇 달이 흘렀어도 그때, 아이들의 행복해하던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이 2023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가장 즐거웠던 첫 번째 여행이 일본여행이라고 꼽은 것도 라운드원이 한몫을 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때 실로 두 아들은 많은 인형들을 뽑았고, 결국 캐리어를 하나 더 사서 인형을 이고 지고 싸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라운드원을 다녀오고 나서는 길거리에서 지나가다 인형 뽑기 기계를 봐도, 딱히 하고 싶어 하거나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또 일본여행을 가고 싶은 이유가 라운드원 때문이니 큰 단점도 생기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