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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Feb 23. 2024

시어머니랑 함께 하는 여행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이 주간의 제주살이를 앞두고 이번엔 어머니랑 함께 여행을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벌써 우리 부모님과는 두 번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던 터였고, 어머니와는 한 번의 제주도 여행을 함께 다녀오긴 했지만, 대가족 행사였기에 이야기 나눌 시간도 많지 않았었다. 줄곧 바쁘셨던 어머니는 몸이 편찮으시고 나서야, 여유가 생기셨던 참이었다. 어머니와는 틈틈이 짧은 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이번엔 좀 길게 함께 지내면 어떨까 하고 연락을 드렸다.

"어머니, 저희 이주동안 제주살이 하는데 같이 가세요. 하루 이틀 전에 저희 집으로 올라오셔서 제 차를 타고 같이 출발하시는게 어떠세요?"

쿨하신 어머니는 언제나 내 말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만사 오케이 해주신다. 그렇게 우리의 이 주간의 제주살이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한 달로 잡았던 여행이었는데, 아이들의 학교 결석과 남편과의 너무 오랜 떨어짐이 싫어 일정을 변경했다. 숙소 사장님께서도 너그러이 이해해 주셔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김포에서 새벽 3시. 완도까지 열심히 내려갔다. 우리는 이번엔 오후 3시에, 완도에서 제주로 출발하는 배를 탔다. 2년 전 제주행은 새벽 2시 반이었는데, 9시면 칼같이 잠드는 아이들을 12시에 깨워 완도항으로 차를 맡기러 가는 과정이 힘들어서 이번엔 한낮 출발로 바꿔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쌩쌩한 아이들은 여전히 들떠있었고, 매일같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거냐며 마냥 설레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어머니와 나도 설레긴 매한가지였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 보통은 아침, 점심, 저녁 3끼를 사 먹는 편이다. 집에서 아이들 챙기느라 못 먹었던 음식들도 먹어보고, 여행에서만이라도 주방에서 해방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이번여행의 주방장을 자처하셨다. 그래서 아침, 저녁은 직접 해주셨고 점심은 나가서 사 먹는 일정으로 움직였다. 거기다 작은 보냉팩에는 한참 커가는 아이들을 고려해 틈틈이 먹을 간식도 손수 챙겨주셨고, 나에게는 주방엔 얼씬도 말라고 미리 언질을 주신 터라, 난 정말 2주 동안 설거지 한번 안 하고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것을 먹고 치우지도 않는 철없는 며느리가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랑 짧은 여행을 다니며, 항상 맛있는 요리들을 해주셨지만, 이렇게 긴 여행에서까지 손수 여행을 해주시다니... 마트에서 사온 신선한 재료들로 뚝딱뚝딱 요리를 만들어내어 주시는 어머니의 정성 어린 마음이 감사할 뿐이었다. 여행의 중간중간, 친정엄마랑 하는 통화에서 "얘, 너는 어머니께서 그간 고생하셨는데 맛있는 거 사드리고 해야지. 주방에서 요리만 하시면 어쩌니." 하면서 나를 나무라셨다. "아니... 아무리 말씀드려도 좋아서 하신다는데, 내가 어찌할 수 없잖아 엄마~~."

여행 가서는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즐기자는 주의였는데, 어머니랑 여행하면서 확실히 조금만 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걸 직접적으로 체감하게 되면서, '이렇게 해 먹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라는 걸 몸소 느끼게 되었던 여행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놀이만 실컷 하다 하루는 <제주돌문화공원>을 갔었다. 하필, 그날은 비가 왔고 땅은 젖어있었기에 우리는 우비를 입고 돌아다녔다. 둘째 아이가 신나서 뛰다가 넘어진 곳이 하필 진흙밭이었다. 운동화를 신으라고 노래를 불러도 신지 않더니, 크록스를 신고 온탓에 미끄러지며 진흙이 온사방으로 튀었고, 온몸과 옷이 머드팩을 바른 것처럼 젖어버렸다. 부끄러워 용수철처럼 일어나는 아이를 보고 우리는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얼른 아이를 일으켜 세우며, "괜찮다 괜찮다." 달래어주셨다.

아이는 속상해서 눈물을 글썽글썽거리는데, 난 그걸 보며 웃음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께선 얼른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씻겨주시고 옷도 빨아주셨다. 그리고 자신의 얇은 바람막이를 아이에게 큰 원피스처럼 입혀주셨다. 9살이었던 둘째는 원피스라 입기 싫었지만 젖은 옷을 입기엔 제주의 비바람이 찼던 지라, 그걸 입고 다녔었다. 어머니를 보면서 느낀 건 이 와중에 어쩜 저리 밝게 웃으시며 아이에게 괜찮다 괜찮다. 마음 편해지는 말씀을 해주실까? 였다. "원래 살다 보면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하는 거다. 연두야. 그때마다 지금처럼 벌떡 일어나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걸어가면 되는 거다. 알았제~."

원래가 매사에 낙천적이고 즐거우신 어머니.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을 자신감 넘치고 자존감 강한 어른으로 키워내셨나보다. 첫째 아이가 3학년 때 학교수업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시간에 "할머니"라고 이야기했었던 적이 있었는데, 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온 것이었다. 아이의 눈에도 모든 일이든 할 수 있고, 모든 일이든 긍정적이니 말이다. 어머니를 보면 항상 기분이 좋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아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운 분. 연륜에서 나온 여유로움도 있겠지만, 타고난 천성도 한몫하는 것 같았다.


돌문화공원을 한참 구경하다 보면 맨 마지막에 "어머니의 방"이 나온다. 밭 한가운데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제주어로 '머들'이라고 하는데 이 머들의 형태로 용암석굴을 만들고 그곳에 용암석 하나를 두었다. 높이 160cm의 용암석의 모습을 그림자로 보면 설문대할망이 사랑하는 아들을 안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벽과 수면 위에 비치는데 모성애의 화신인 설문대할망을 상징하는 용암석이라고 하며, 용암석굴을 어머니의 방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아들들은 관심이 없는데, 어머니와 나는 모자상 주변을 맴돌며 한참을 요리조리 봤다. 꼭 아기를 우쭈쭈 하며 안아주고 있는 엄마의 모습 같았고, 어머니도 지금은 장성해 버린 아들을 아기 때는 많이 사랑해 주고, 안아주며 키우셨을 텐데… 잠시나마 추억에 잠겨 계시는 거 같았다. 나만해도 두 아들의 그러한 시절이 그리운데, 어머니는 한참이나 모자상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하신 걸까? 이제는 손에 닿지만 만지기는 힘든 마흔을 앞둔 아들을 곁에 두고, 마음만 먹으면 물고 빨고 하던 그 귀한 시절이 그리우셨던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아마도 어머니는 모자상을 보며,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고, 돌아가려야 돌아갈 수가 없는 저때의 시간과 추억들이 사무치게 그리우신 건 아니었을까?


모든 사람에겐 자신만의 기억이 있고 소중한 추억이 있다. 삶이 고단하고 힘들어지면 소환할만한 가슴속 추억을 꺼내어 그 힘으로 살아간다. 어머니와 내가 시어머니와 며느리란 자리에서 만나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며, 나중에 이 시간을 그리워하는 사이로 나이들어가면 좋겠다. 어머니는 나를 어떤 며느리로 기억해 주실지 궁금해지는 밤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틈틈이 연락드리는 살뜰한, 이쁜 딸 같은 며느리로 기억하시고, 추억하실 수 있도록 내가 더 잘해야지! 다짐 한 숟가락도 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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