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균이 있었다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면 족하다. 세상에서 실천하기 제일 어렵고 힘든 일. 사실 불가능한 일 같기도 하다. 지금, 여기란 사실 없으니까. 지금, 여기 란 늘 미래, 혹은 과거. 그리고 저기 어딘가와 연결되어있다. 미세하고 촘촘하게 연결된 시간의 실타래 속에서 나는 무언가 그 모두를 꿰뚫을만한 정답을 원했던 것 같다. 그게 비록 나만을 위한 정답일지라도 말이다. 종종 그 정답을 찾았다고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단숨에 고꾸러진달까. 잠깐의 순간이 지나면 바로 불행의 이유들이 수 없이 떠오른다. 그렇게 또 다시 다음 정답을 향해 나아간다.
내가 홍성 장곡에 오기 전 마음 속으로 간절히 바란 염원이었다. 대학교 때부터 9년동안 이 곳 장곡에 올 때마다 느껴지는 묘한 안정감이 있었다. 그게 나를 늘 사람처럼 대해주는 Y 선생님 때문이기도 했고. 나를 친근하게 반겨준 L 이모 때문이기도 했고. 생각 하나도 안하고 뜯을 수 있는 쌈 때문이기도 했다. 아침이 열리면 보이는 하늘, 문을 열면 나타나는 넓은 시야, 그 안에서의 치열한 노력들.
땅 위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나무를 만날 수 있고, 꽃을 내려다 볼 수 있고, 혹은 더 올라가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되돌아 올 수도 있다. 항상 나는 공중에 둥둥 떠다닌 상태로 언제 떨어질까 불안해했다. 저 밑에 있는 땅은 모두 오염되어있을 거라는 머리 속의 망상과 함께. 그러나 서서히 내려오는 와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이 곳에서 진행하는 김교신 사업 활동을 계기로 일단 장곡에서 쌈을 뜯으며 세 달간 생활하겠다고 J 선생님에게 말했다.
일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다만 아직 내가 인간이 아니었다. J 선생님은 서울에서 갓 장곡에 와 열심히 쌈을 뜯고 있는 나를 자꾸 자극한다. ‘너는 지금까지 뭐하고 살았노!’ ‘쟤는 갈 데 없다’ ‘쟤 일하다가 말 안 들으면 때려도 된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자기가 한 말이 어딘가에 적힌다고 생각을 하시면 저런 말을 안할텐데’라고 생각만 하고 그냥 수긍을 했다. 나는 아직 이 곳에서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무 것도 판단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것을 따르기만 했다. 그러다 다른 사람에게 J 선생님 뒷담을 하기도 하고,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냐!!’며 분해하기도 하고. 바로 대꾸하지 못한 감정 잔여물을 어쨌든 풀어내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먼저 “저는 지금까지 뭐 한 것도 아무것도 없는데요 뭘”이라는 말을 스스로 했다. 그랬더니 J선생님은 예상 외로 “그건 니가 말하면 안되는데, 니 역할은 내 말에 받아치는 건데”라 말했다.
내가 이 곳에서 인간이 되지 못했던 건 다른 누군가가 나를 인간취급을 해주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나 자신을 인간 취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늘은 21일동안 충분히 먹었으니 곰은 결심했다. ‘이제 내가 나 자신을 사람 취급 해줘야겠다’.
J 선생님의 잔소리는 그 이후로 사라졌다.
하지만 여기서 쌈을 뜯으면서 생활하려면 내가 사람인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도시에서도 그렇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사람이다’ 정도로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참 어렵다. 이 세상에 나 말고도 수도 없이 많은 또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임을 늘 마음 속에 새기고자 하지만, 타인의 존재는 늘 그 결심을 가로막는다. 더군다나 이 곳 쌈채소 노동을 하다 보면 나만 제일 힘든 것 같다는 피해의식도 피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면 자꾸 다른 ‘인간’들에게 무언가를 바라게 된다. 더 친절하게 대해주지. 더 나를 존중해주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하지? 저 사람은 자기만 편하네. 사실 슬펐다. 가장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늘 제대로 존중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슬펐고, 화도 많이 났다. 나는 부단히도 밖에 보이는 가장 열심히 살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을 떠받치고자 애쓰면서도, 은근 내심 그들과 비슷한 나 자신을 떠받치고 추켜세우고자 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렇지 않아보이는 사람들도 배려하고 존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걸 할 수 있으려면 ‘인간’은 부족하고 ‘왕’이 되어야 한다. 왕은 마음이 내키면 제 멋대로 행동하면서도, 때로는 연민과 공감으로 다른 이들에게 성은을 베푼다. 내 눈에 거슬리는 모습을 가진 이도 다른 왕국의 ‘왕’이기 때문에 나와 똑같은 권리를 가짐을 인정한다. 이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살면서 거의 느껴보지 못했거나 곧잘 무너지곤 했던 ‘자존’의 감각을 무급 쌈채소 일을 하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모두를 둘러싼 고통 속에서 그나마 모두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모두가 인간을 넘어 왕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빳빳한 자존은 언젠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가득찬 고통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난 곰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고, 왕도 아니고. 그냥 쌈-노예 였다. 섬 노예와 다른 건 내가 누구의 노예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실은 우리는 노예라는 표현을 줄곧 잘 쓴다. 회사의 노예, 학교의 노예, 자본주의의 노예, 인스타의 노예. 혹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지어낸 감옥의 노예가 되는 일도 허다하다. 난 인간은, (적어도 나는) 어느정도 자신을 누군가가 부려 주길 갈망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편안하고,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 두려움과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 아주 인간적인 본성 안에서, 적어도 나 자신이 ‘쌈노예’라고 자조하는 것은 내가 감당하지 않고 싶은 고통을 억지로, 왕처럼 빡빡 힘주며 버티는 걸 멈추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이 곳을 아직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자조를 피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사람들, 스스로 자발적으로 자기자신을 부려 더 넓은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일군 곳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곳은 안 하겠다고 하면 쿨하게 하지 말라고 한다. 자조를 통해 나는 스스로 만든 불필요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로 다짐했다. 오전 오후 종일 쌈을 뜯은2개월만에, 오후작업은 이제 하지 않겠다고 J 선생님께 말했다.
난 지금 꽤 행복하다. 쌈을 오른 손으로도 따고 왼 손으로도 따고. 서서 땄다가 무릎꿇고 땄다가. 약간 스쿼트 런지자세를 취하며 쌈-운동을 하기도 하고. 신발과 양말은 꼭 벗고 하우스에 들어가 수십년간 신발에 틀어 막혀서 빛을 보지 못했던 내 발가락들이 더 자유롭게 움직이게 해주고 있다. 무릎을 꿇으면 꼭 발가락을 뻣뻣하게 세워 몸통을 모두 지지하려는 습관 같은 게 있었는데, 신발 발등부분이 더러워지지 않아야 한다는 무의식이 있었나보다. 이젠 맨발이 익숙해 그냥 발등을 흙 땅에 포개 밝가락은 쭉 눕혀 발 윗면 전체로 무게를 분산한다. 이 곳에 오기 직전까지도 속이 진짜 안 좋았는데, 속도 편하다. 몸도 처음에는 이게 운동이 되나 싶었는데 점점 코어가 단단해지며 몸의 중심이 잡히는 느낌이다. 일이 끝나면 적절한 긴장도가 유지되어 내가 그 날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일에 몰입할 수 있다.
난 이게 내 머리가 하는 일도 아니고, 장 속의 균이 해내고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장은 뇌와 밀접한 기관이다. 장이 안 좋아 한의원에 가니 처음 들은 이야기가 ‘평소에 책 많이 읽고 생각 많죠?’였다. 장곡에 오기 직전에 난 속과 마음이 정말 많이 무거웠다. 도시 생활하면서 장 속의 균들이 친구 균들이 없어 외롭다가 매일매일 하우스에서 유기농 쌈채소에 서식하는 균들과 부비적거리며 생활하니 반가워 신난 게 틀림없다.
난 이걸 머리-장-발 삼위일체라고 부른다. 태초에 균이 있었다. 인간이 언어와 발달된 뇌를 갖추기 이전 인간은 장내 균이 반응하는대로 행동하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인간의 머리는 커져 문명을 발달시키고 사회성을 고도화 했지만, 그럴수록 인간의 장내 균들은 죽어갔을 거라 추측한다. 발은 장내 균이 세상과 맞닿는 통로이다. 그런데 도시의 인간은 흙 대신 깔려있는 아스팔트 시멘트 바닥에 적응하느라 그 통로를 온통 덮어버렸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머리만 굴리면서 어떻게 하면 건강해질까, 정신적으로 행복해질까 고민한다. 그러나 실은 장내 균이 시키는대로 몸을 움직이고, 마음을 발동시키고, 그에 따라 생각하면 행복은 어려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 어떻게 장내 균을 따를 수 있을까. 이 곳에 있다보니 종교적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특히 마을협동조합이 주를 이루는 이 곳은 기독교적 세계관이 어느정도 깔려있기 때문이다. 장내 균들 중, 코프로코커스(coprococcus) 라는 아직 그 목적이 뚜렷이 밝혀지지 않은 균이 있다고 한다. 그 균은 아마 내게 이리 말할 것이다.
“태초에 균이 있었다”
“남의 장을 네 자신의 장처럼 대하라”
“장이 가난한 자는 균이 있다”
“장이 아픈 곳에 길이 있다”
“균이 있는 곳을 두려워 하지 말라”
균이 득실득실대는 유기농 쌈채소 농장에서 일하면서 나는 머리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장내 균의 행복을 믿는다. 조금 더 균들과 가까이 지내봐야겠다. 그리고 난 사람들이 인간의 입장 뿐 아니라 균의 입장에서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균의 행복을 진심으로 염원하길 바란다. 그래야 나는 몰라도, 내 안의 균들은 신나 날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