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지도 모르잖아요"

그쵸 진짜 이러다 죽을 수도 있지. 고맙습니다

by 김상혁

06. 2024년 3월 27일

홍성 장곡의 유기농쌈채소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벌써 두 달이 다 되간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이상하게 계속 참고 버틴다. 생각이 가득차 넘쳐버리게 생긴 나는 울기 딱 좋다.




할렐루야. 나는 요즘 의지하고 싶다는 느낌을 많이 갖는다. 실은 앞이 깜깜하다. 지금 내 가슴 속에 심어진 여러 씨앗들은 너무나도 생생해 언제라도 피어날 것 같다. 하지만 그 씨앗이 제대로 심어져 제대로 펼쳐진 나무가 될지. 아니면 또 열심히 새싹만 피우려고 모든 생명을 다해 작용을 해놓고 그냥 버려지는 씨앗이 되어버릴지. 두렵다. 땅에서 살고 싶다면, 더 좋고 더 광활한 땅에, 저 하늘 높이까지 무성한 나무가 되고 싶은데. 어찌보면 활발한 생명작용이 내 안에 현재 가득해 펼쳐질 수많은 그림들을 계속 생성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에 나에겐 물이 많이 나온다. 아침에 가끔 눈물이 나는가 하면. 사람들이 모여져 있는 곳에서 나를 향해 그냥 무심코 던져진 말에 혼자 상처받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울먹거린다.


나무가 다 자라나다 어떤 천장이 하늘로 가는 것을 가로 막는다면, 그 때 그 천장을 휘감아버리거나 깨트리면 될텐데 말이다. 하늘로 가고 싶다. 하늘로 나아가는 것을 어딘가에서 멈춰지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옆에 같이 자라는 나무들도 만나야 하고, 잘 지어진 집도 넘어가야 하고, 날아가는 새도 마주했다가, 구름 속을 뚫고 갔다가. 번쩍 번쩍. 떠오르는 가능성이 어딘가에서 막혀버리면 어떡하나 깊이 염려한다.


IMG_5276.HEIC 24/04/25 겨울엔 지붕 아래 있던 나무가 어느새 지붕 위까지 자라있다



흑미 핵반, 진짬뽕 컵라면, 그리고 캔 참치를 이곳의 워케이션 (워크와 베케이션의 합성어) 사무실에 새로 입주한 ‘배리’가 건네준다. 나는 사실상 내 봉급인 마을뷔페점심을 먹을 수 있을 만큼 많이 먹고, 저녁을 제대로 챙겨먹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나를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하며 걱정해준다. 내심 '차라리 굶거나 아몬드 먹는게 이런 인스턴트 식품들 다 먹고 배불리는거보다 더 건강한데..' 하며 생각하는 나이지만. 실은 이런 마음이 너무 반갑고 감격적이었다. 내가 굶을 수도 있었는데 이 사람 덕분에 굶지 않았다의 감격스러움이 아니라, 내가 여기에서 그럼에도 이렇게 계속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누군가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는 것 같은 느낌에서의 감격스러움이다. ‘지금처럼 먹으며 살아도 살만하다’고 말하지 않고, ‘그쵸 진짜 이러다 죽을 수도 있지. 고맙습니다’ 라 말한다.


IMG_5170.HEIC 배리의 워케이션 사무실. 보드게임 광팬이다.



지난 주에 서울에 다녀왔다. 심리상담도 받고, 친구도 만나고, 주기적으로 하는 템플스테이에서 만난 사람들도 보고. 환기라고 하면 딱 좋을만큼 한 환경에 갇혀있는 내게 좋은 자극들이 참 많았다. 그 중에서 꽤 신선하면서 유독 생각에 남은 것은 “상혁님처럼 이렇게 갑자기 세속에서 벗어나버린 경우를 주변에서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였다. 내가 이 환경 속에서 당연하다고 느낀 견딤, 힘듦, 깨침의 과정들이 되게 특별한 것이라는 것. 당연하지 않고 사실은 되게 나 스스로가 열심히 노력하는 중이라는 것을 특별하게 깨닫는 계기였다. 아직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서울에서 다시 이 곳에 돌아오지 않았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여기에 있으면서 쌈을 따려고 하지 않나. 쌈을 따다보면 온갖 생각들이 나를 찾아온다. 그렇지만 계속 쌈을 뜯으면. 일하는 것에만 완전히 집중하게 되면서 그 생각들도 모두 지나간다. 그 때 나오는 나의 표정을 나는 '완전한 무표정'이라 부른다. 오늘도 일을 하다가 나오는 완전한 무표정을 온전히 반겼다.


하루하루가 분별의 연속이다. 이것은 나를 부리는 것인가, 나에게 가르치는 것인가? 이 말은 내가 반발했었어야 했던 것인가, 혹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야 했나? 저 사람은 이 곳에서 제대로 일도 하지 않으면서 기생하는 것인가, 혹은 사실은 되게 열심히 보이지 않는 자기 역할을 하고 있나? 도대체 이 분별 들을 구슬처럼 꿸만한 실은 무얼까. 적어도 여긴 심플한걸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는데. 여기는 쓸모있는 존재건 쓸모없는 존재건 그래서 서로 기생하기도 하고 서로 캐리하기도 하고, 약간 젠틀하지는 않지만 서툴고 거칠게 각자의 영역에 있는건가? 그래서 나는, 도대체 이 복잡한 서로간의 역할관계 속에 어느 역할을 할 수 있는걸까?


마음만 같아서는 하늘로 솟아나는 나무처럼, 부딛히고 상처받고 배신당한다 할지라도 이 땅을 박차고 솓구쳐 이 곳에서 내 마음이 향하는대로 모든 힘을 다 쏟아내어보고 싶다. 그러면서 기껏 선별해낸 내가 신뢰할만한 어떤 사람에게 완전히 의지해보기도 하고, 그 사람을 쏙쏙 뽑아먹기도 하고, 내가 쏙쏙 뽑아 먹히기도 하면서, 작은 씨앗이 흔들리는 것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금까지는 그 흔들림이 너무 위태위태하고 쉽게 무너졌지만, 적어도 이 곳에서는 신기하게도 쌈을 따는 일이 무너짐을 막아줄 것만 같다. 여기서는 그런 이상한 믿음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에서의 환기는 나를 당당하게 ‘오후 작업은 그만하겠습니다’라고 말하게 만들었다. 이 말을 하기 까지 허벅지를 한 네번이나 때리면서 ‘야 김상혁 그냥 말해!’ ‘야!!!!!!! 오후 작업 하지 말라고!!!!’ ‘돈도 안 받고 일하잖아. 당연히 오후 작업 안해도 괜찮아!!!’ 하고 자기 설득을 했다. 처음에 했던 3개월간 일하겠다는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과 함께, 왜인지 분명하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여기서 자기 할 말 다 하는 J쌤의 눈치를 봤다. 그러나 생각 밖에도, 혹은 예상대로, J쌤은 특유의 시니컬한 경상도 사투리로 ‘난 니가 너무 생각을 오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라 말하며 ‘그냥 네 하고 싶은대로 해라’라고 말했다. 그 말과 태도에는 내가 이 곳을 한 순간에 떠나는 가능성까지 담겨있었다. 냉정한 말이었지만. 왜인지 평안함을 주는 말과 태도였다.


난 내가 오래전 부터 만들어놓은 단단한 씨앗을 박살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결승점은 하늘이 아니라, 외할머니의 행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 평생 밭일하고 자식 키우고 외할아버지 온갖 꼴 지켜보며 그래도 하나님 예수님을 믿었던 외할머니의 행복. 내가 요즘 물이 많아지고 있는 건 어렸을 적 빗소리가 날 때 ‘아이고 우리 똥강아지’하고 나를 늘 따뜻하게 사랑으로 챙겨준 외할머니와 더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잠깐동안 완전한 무표정의 나는 생각했다.


나를 걱정해준 배리와 같이 쌈을 뜯은 날 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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