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마라톤 10km 완주 후기
4월 14일, 군산에 왔다. 새만금 국제 마라톤 대회. 새벽 5시부터 출발했다. 새벽 4시 55분께 숙소 앞에 나왔더니, 바로 가끔 이 곳에 오시며 쉬시기도 하고 일도 하는 A 선생님이 나를 태우러 왔다.
“일찍 와있네. 5시에 출발하기로 했으면 그건 마지막 사람 기준 5시라는 말이야”
내심 일찍 나온 나 자신을 속으로 칭찬한다. 다른 사람들은 늦게 출발하기로 해 나와 A선생님 단 둘이 차를 탔다.
“그래서 당신은 뭘 하고 싶어서 여기 온거야?”
“아 뭐 오전에 쌈 작업하고나면 유투브도 하고, 이렇게 달리기 하는 것처럼 여러 사람들한테 배우고, 또 노르웨이어를 공부하고 있어요”.
“노르웨이어는 왜?”
사실 답답했다. 이 곳의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하고싶은지에 대해 잘 묻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내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봐주다니, 나는 술술 노르웨이에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이야기했다. 나는 나의 계획이 허황되고,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A선생님은 나의 계획이 너무 실용적이라고, 한국에선 배울 수 없는거니까 배우러 가도 너무 좋겠다고, 그러나 여기서도 시작해볼 수 있겠다고 나를 북돋아주신다.
군산에 도착했다. 약간 기분이 들뜬 상태였는데, 도착한 시간은 고작 아침 6시 20분이었다. 마라톤 시작은 7시 30분. 어느 유럽같은 분위기의 카페가 국제 마라톤이 열린다고 아침 일찍부터 영업을 하고 있었다. 바깥이 추워 체온을 되찾는데 딱 좋은 따뜻한 고구마 라떼를 주문했다.
내가 생활하는 곳에는 정신건강 돌봄 취지의 농장이 있다. 그 농장의 이사장이신 A선생님은 수도권 지역에서 정신과 의사 일을 하신다. A 선생님은 마라톤 고수다. 마라톤을 시작하신 지는 3년 쯤 되었다. 현재 목표는 3시간 29분 안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것이다. A선생님과 같이 뛰다 보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빨리 뛸려고 하지마. 천천히. 재밌게 뛰어야 해 재밌게.나는 죽기 전까지 뛰는 게 목표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재밌게 즐기면서. 그래서 나는 이어폰도 없이 뛰잖아. 자연소리 , 심장소리, 몸이 말하는 걸 들어야 해”
나는 이 A선생님에 홀려 이 군산 새만금 국제 마라톤에 와있다. 대회 5일 전, 아침에 쌈채소 작업하기 전 사람들끼리 모여 커피 마시는 시간에 오랜 만에 A선생님이 와계셨다. 갑자기 넌지시 내게 “야 너 군산에 마라톤 뛰러갈래?” 난 망설임 없이 “아 뭐, 좋죠. 몇 키로인데요?”
홍성 장곡에 있는 나. 하라면 하는 상태.
그러나 마라톤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거의 10년 넘게 내 안에 있었다. 다만 내 스스로 힘으로 도전하기가 힘들었다. 그걸 A선생님은 슬쩍 건드려줬고, 나는 그 날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 시작. 모든 페이스와 모든 호흡과 모든 속도를 A선생님에 맞춘다. 어떻게든 있는 힘 없는 힘. 그리고 젖먹는 힘까지 다해 이 선생님을 내가 쫓아간다는 마음으로. 처음에 정치인들과 지역 의원들이 손을 흔든다. 나는 저런 보여주기식 응원이 정말 싫다. 하지만 나도 손을 들고 같이 인사한다. 저런 에너지라도 모두 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야 10km를 제대로 완주해낼 것 같으니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달렸다. 그렇다. 살아야 한다. 마음 맞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이 곳에서. 돈도 없이 지내며. 도시생활이 아닌 시골 생활은 처음이고. 마음에는 아직 비워내지 못한 삶에 대한 부담감들이 가득한 나로서는. 나를 살려주는 것들에 대해 모두 마음을 열 필요가 있었다. 머리 속에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아무리 가로막아도 어쩔 수 없다. 마음을 열어야 한다.
A선생님은 계속해서 오른 손으로 내가 있을 자리를 짚어준다. 초반 3km는 순조롭다. 중간중간 북을 치고 춤을 추며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원래 같으면 ‘달리기도 바쁜데 소란스럽게 무슨’ 했을거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그들을 향해 손바닥을 활짝 폈다. 생채식 캠프를 했을 때 배운 것이다. 햇살이 따스하게 드리우는 겨울 바깥을 산책할 때, 손바닥을 위로 향해 펴서 햇빛을 흡수해라. 진짜 손에 따뜻한 감각도 난다. 그치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감사’를 하는 과정이라는 점. 매일 나를 내리쬐는 햇빛을 의식해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 죽지 말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나를 향해 응원하는 모든 마음에 손바닥을 펼쳐 반겼다.
3km쯤 지났을 까. 슬슬 힘들어지기 시작하고, 허, 이게 언제까지 계속 돼? 싶은 생각이 든다. 그 때 나는 손을 꽉 쥐고 있었다. 그냥 자동적으로 하게되는 습관이다. 손을 활짝 위로 폈다. 내 힘으로 달리지 않는다. 햇빛을 내리쬐는 하늘의 힘. 그게 무슨 기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의 기운이든, 내가 이 곳 홍성 장곡에서 생활하면서 함께 하고 있는 여러 선생님들의 기운이든, 엄마의 기운이든, 아빠의 기운이든. 그 모든 기운을 흡수한다는 생각으로. ‘내가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는다. 찰랑 찰랑, 꽉 쥔 주먹을 펴고 손바닥을 하늘을 향해 놓으면 살짝 힘이 빠진 상태로, 하지만 더 가볍게 달리게 된다. 나에게 힘을 주는 모든 존재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면서.
후반 5km가 지금까지 온 5km를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을 알았을 때. ‘10Km 별 것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엔 몰랐지만 A선생님은 점점 페이스를 올리고 있었다. 아마 점점 더 힘이 들어지고 있는 탓에 ‘별거 아니네’라는 생각으로 내 힘듬을 합리화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은 바깥으로 분출해버리는 편이 나았다. 나는 약간의 욕설을 섞어, 별 것 아니라는 고함을 질렀다. 별 것 아니네 라고 소리를 질러버리면 실은 힘들다는 사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몸에 잔뜩 움켜쥐고 있던 힘을 다시 빼게 되고, 손바닥을 다시 펴든지, A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호흡을 고르게, 자세를 신경 쓰면서 달리는 수밖에 없다. 5km를 반환하는 지점은 오르막 이후에 내리막이었다. “오르막은 발 보폭을 좁게!” A선생님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는다. 이제 내리막이다. 힘을 아예 다 빼버린다. ‘중력에 다 맡겨버리자’
A선생님은 계속 오른 편의 자리에 손을 짚으며, ‘힘들지?’라고 내게 물어보기도 한다. 예전 같았으면 “아뇨 괜찮아요”하고 힘을 쥐어짜 달렸을텐데. 이제 마음 끝까지 ‘네 힘듭니다’라고 말해야 힘이 다시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답한다. “네 힘듭니다.” 계속 달린다.
“헤에 헤에 헤에”
아직 7km가 오지 않았다. 긴 터널을 통과하는 지점이 나온다. 마라톤을 뛰고 있던 사람들은 함께 온 무리끼리 ‘빠이팅!!!’을 외친다. 지금 그 빠이팅에 동참하면 오히려 내 힘이 빠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도 그 무리의 힘에 동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잠시 주저하느라 사람들이 빠이팅을 외친 지 2초가 지났다. 나도 우렁차게 "빠이팅!!!!" 을 외친다. 두려움을 뚫는다.
그러다 6km쯤 들어섰을까. A선생님은 말한다.
“자 이제 다 왔어. 7km까지는 쉬면서 달리는 거야. 호흡 하고. 힘 빼고 천천히. 힘을 비축한다는 생각으로. 7km 부터는 이제 페이스 올릴거야”
이 A선생님의 포인트는 이렇게 말해놓고선 실제로 페이스를 안 늦춘다는 데 있다. 그래도 여튼 간에 지금까지 한 모든 힘을 빼는 방법을 동원해서. 그리고 달리는 사람들의 얼굴도 살피면서. 쉬엄 쉬엄 걸어가는 한 아빠와 어린 딸의 모습을 보며 ‘그래 나도 참 쉬고 싶다 저렇게 쉬었으면 좋겠다’ 하며 또 달리고, 나를 추월해 앞서가는 웬 나시 입은 아저씨를 보며 ‘알았어요 제가 따라갑니다’ 하고 달리고. 머리 속으로는 계속 감사 감사, 또 감사.
7km까지만 가면 분명 힘을 내 달릴 참이었는데. 힘이 다 떨어졌다.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 끝나지 않은 절망감이었을까? 나의 페이스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나는 내 안 더 깊숙이 들어간다. 엄마를 위해 달린다. 마치 어린 아이가 엄마 품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뛰듯이. 그렇게 엄마 품속을 향해 달린다. 여기서 힘을 다 빼 버리면, 여기서 더 달리지 못해버리면 이것은 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저버리는거야.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럼 적어도 죄책감의 구덩이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달릴 것이다.
9km쯤 왔을 때, 아. 인생은 혼자구나. 이제 엄마도 모르겠다. 나부터 살아야겠다. 문득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소리내어 말한다. “시작이다 시작!!!” 갑자기 페이스가 혼자 빨라져 A선생님 옆 자리를 이탈해 앞으로 나아간다. 아까 쉬엄쉬엄 가면서 비축한 힘이 지금 나오는걸까? 아니 이게 바로 젖먹던 힘이라는 그 힘인가? 혹은 다 끝이 날 거라는 기대감에 뛰기 싫다고 싫증내는 내 자신이 좀 양보한걸까?
글쎄. '나부터 살고보자' 하는 힘은 아주 잠깐 일어났다 다시 사라지는 듯 하다. 금방 또 쳐진다. 한 300미터, 500미터 남았나. 그래도 다 끝나가는 와중이다. 이제 결승점도 보인다. 안 보이던 A선생님이 나를 지나쳐 앞서 달린다. 그리고 다시 오른 쪽 옆 자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래 다 끝나는데 끝은 같이 통과해야 할 거아냐!’ 하고 헥헥헥 거리며 그 옆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뛴다.
10km를 다 완주했다! 기록은 52분. 1시간 30분을 생각하고 참여한다고 말했던 나에겐 기적적인 기록이다. 나는 내 체력이 아니라, 나를 살리기 위해 실천한 온갖 정신적인 방법들에 더 뿌듯했다. A선생님은 그 이후로 나에게 감명을 입은 듯 하다. 9월 홍성 마라톤에 하프를 뛰자고 하신다. “좋죠 하프 가자 가자!” 나는 답한다. 밥을 먹으러 갔는데 뭘 자꾸 먹으라고 많이 먹인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 오늘도 A선생님과 함께 10km를 뛰었다. 나는 계속 뛸 것이고, 아마 하프를 뛰게 될 수도. 아마 노르웨이 극지방 마라톤에 A선생님과 함께 나갈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