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것을 훔쳤다 1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by 김상혁

09.2024년 04월 18,19

쌈채소 농장에서의 삶은 고통도 가득하고, 행복도 가득하다. 서울의 한 절에서 숙박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오랜만에 서울에 들렸다. 가득 찬 것을 비울 필요가 있었다.






“차 좀 마시죠”


홍성에서 늘상 부려먹혀질 준비를 하는 삶을 살고 있다가, 잠시 서울에 와 잘 곳이 없어 경국사라는 절에 묵게 되었다.


원래 템플스테이로 공부하는 스님과 사람들끼리 가던 절이라 생긴 기회였다.


절에 자는 조건은 6시간의 봉사활동을 하는 것. 토요일 당일은 비가 올듯 말듯 우중충했다.


새벽 여섯시부터 숙소를 출발해 ‘부려먹혀져야지 부려먹혀져야지’ 재워주는 조건을 채우고자 하는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었다.


처음 오자마자 젊은 혜광 스님과 차를 마셨다.


절의 팀장님은 내게 시킬 일, 고구마 캐는 일, 마당 쓰는 일. 나의 부담감을 해소시킬만한 일들을 열심히 고민하신다.


그러나 혜광스님은 그 생각을 끊어내듯 말했다. ‘모든 것은 공이에요. 뭘 하려고 하지 말고, 뭘 안하려고, 없애려고 해야해요’


‘부처님도 계속 말씀하신 게 다 비우는거야. 뭘 만드려고 하는게 아니라 없애는 거에요’ 라 말하며 일을 시키려는 팀장님의 말을 즉각즉각 무마시키신다.


혜광스님은 내가 단단히 부려먹힐 준비를 하고 있는 삶의 상태에서 이 절에 왔음을 나의 파장, 나의 무언가를 통해 감지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스님이 직접 낸 보이차를 마시며 한시간 쯤 차담을 했다.





“감사합니다”


한 시간 남짓 한 봉사는 금색으로 도색된 불기를 닦는 일이었다. 연금술사의 소년이 생각났다.


굶주린 채 걷다가 가게에 들어온 소년이 크리스탈 상인에게 먹을 것을 달라하자 상인은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소년은 더러운 크리스탈 유리잔을 닦기 시작했다. 소년이 유리를 다 닦고난 후, 상인은 소년에게 사막에서는 배고픈 사람의 먹을 것을 달라는 요청을 거부하면 안된다며 점심을 내어준다. 소년이 왜 처음에는 답을 안했냐고 묻자, 상인은 “그야 크리스탈 유리도 더러웠고, 너와 나의 부정적인 생각도 깨끗해질 필요가 있었으니까” 라고 답한다.


박박박 불기를 닦는 크림을 바르고, 수건으로 빤딱빤딱 해질 때 까지 문댄다.


구석 구석 꼼꼼히. 닦인 불기에는 불기를 닦고 있는 내 모습이 비친다.


마무리로 신문지로 한 번 닦고, 세 번째, 이 것은 선택사항인데, 깨끗한 수건으로 한 번 더 닦는다.


혜광스님이 마실 것과 과자를 가져온다. 부려짐 속에서의 여유를 찾는 방법에 익숙해졌던 나는 눈치보지 않고 눈 앞에 먹을게 있으니 바로 먹는다.


누군가가 '그걸 바로 먹네' 하며 말하자 나는,

“헤헤 먹을게 앞에 있으면 먹어야 먹을거 생각 안하고 열심히 일하죠” 라 말했다.


혜광스님은 거의 동시에, “아 그냥 먹으세요 먹으세요”라 말한다.


나는 이제 나 자신에게 스스로 보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불기를 닦는 것 그 자체도 즐거운 일이었다. 마음을 닦는 일이었고. 내가 제일 하지 못하는 것. 빤딱빤딱하게 무언가를 광나게 하는 것을 집에 가서도 더 해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기분 좋게 끝내니, 나와 같이 불기를 닦은, 실은 닦은 불기보다 더 맑아 보였던 할머니 보살님들이 내게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한다.




“조증 삽화인 것 같아요.”


나도 감지하고 있었다. 내가 최근에 조증같다는 것을.


실은 최근에 너무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찬물샤워를 하고,


농약 하나 없는 마을 자연경관을 보며 달리고,


맨발로 흙을 밟으며 수행하듯 쌈을 따고,


원래 같으면 버릴 쌈들을 상자에 모아 담아 엄마 택배로 주고,

맛있는 밥을 수익도 없이 매일 해주시는 이장님 사모님 비닐에 조금 담아 주고,


일하다가 스스로 여유를 내어 잠시 낮잠 30분 당당하게 때리고,


그러고 일이 끝나면 트랜스포메이션,


좀비처럼 흙 묻은 채로 밥먹는 곳에 가는게 아니라 단단히 의식해서 찬물샤워로 몸을 씻어 내린다.


깔끔한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사모님이 해주시는 맛있는 밥을 산같이 쌓아 다 먹으면 사람들과 커피 마시며 나무, 꽃 바라보며 멍 때리기.이 곳 아줌마들 수다듣기.


서울에선 월세 내고 빌려야 했을 컨테이너 작업실을 이 곳의 생존방식을 터득해 공유하고 있다.


그 곳에서 유투브 영상을 오후에 만든다. 중간중간 저수지 산책. 작업실에서는 오서산의 멋진 풍경이 바로 보인다.


저녁에는 운 좋으면 사람들과 술 먹고 밥 먹고, 아니면 책 읽거나 글 쓰거나. 별은 언제나 본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씨앗에서 새싹이 올라오듯 성장하는 것 같은 고양감.


최상의 행복.



IMG_5234.HEIC 빌려 사용했던 컨테이너 작업실



하지만 건드리면 바로 울어버릴 것 같은 상태.


아직 해소되지 않은 부정적 생각들. 오히려 부정을 모두 긍정해버려서 초월하고 싶은 긴장된 마음가짐. 모든 나와 타인, 모든 존재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좋게 말하면 영적 성장이지만, 객관적으로는 그냥 조증 같았다.


하지만 심리학에 꽤 시야가 밝고, 정신과 진단기준과 약에 꽤 비판적인 나는,

‘나는 조증이다’ 자체가 나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 평가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저항했다.


따라서 ‘무슨 조증이야 행복하면 행복한거지. 그냥 누리고, 이대로 성장하자. 하지만 이 위험 속에서 내가 안전을 자각하기만 하면 되는거야’고 생각하고, 좀 더 자기 연민을 시작하는 중이었다.


다만 이 곳에서 내가 처리하고 소화했던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긍정들, 훔치기, 잡아먹기, 유독 여기서 많이 꿨던 온갖 꿈이야기들, 내가 살면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사람과 사람간의 기생의 모습들. 인간의 쉐도우, 연꽃이 피기 위한 진흙,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들에 대해, 이야기를 쏟아내고 함께 소통할 사람이 필요해 서울에서 상담 약속을 잡은 상태였다.


절에서 출발해 상담을 하러가면서,

나는 상담선생님이 내 이 모든 생각들과 함께 춤을 춰주길 기대했는데,

상담선생님은 나의 그런 사나운 생각들을 수술대에 올라온 환자의 장기에서 철철 나오는 피마냥,


팍 눌러버렸다.


“조증 삽화 증상이에요. 그거 1차 오고 2차 3차 오면 진짜 약 먹어야 할 수도 있어요. 이건 저를 믿으세요”


“앞으로 되도록이면 사람들 만나지 말고, 잘 자고 잘 먹고 혼자 쉬는 시간을 많이 가지세요. 새로운 일이나 결정은 웬만하면 하지 마시고요”





“어 상혁이 형! 오랜만이다”


실은, 상담 전에 나는 조증의 증상을 제대로 보였다.


경국사 팀장님이 “좀 있다 저녁 여섯시에 108기도회를 해요. 한 번 참여하면서 기도도 하시면 좋아요. 그리고 친구도 부르면 더 좋고. 친구 오면 서로 주고 받는 에너지가 더 좋아지거든. 당연히 부르면 자고 가도 괜찮아요”


나는 신나서 경국사에서 상담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한 시간 만에 친구 7~8명에게 연락을 돌렸던 참이었다.


마침 변호사 시험 합격소식이 궁금하던 차에 연락한 친구는 결혼식 가러 여수였고. 합격소식을 기쁘게 전했다.


한 친구는 서울에 있는 줄 알았더니 울산에 가 있어서 수업준비 전이라 바빴다. 그런데도 상혁 얘기 10분만 듣고 싶다고 했다.


내가 사람 거르던 중이라 시험합격 했다고 연락 왔었는데 약속 잡을 연락을 못하고 있었던 친구는, 제주도 여행중이었다.


맨날 나 보고싶다고 카톡한 친구는 전화해보니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알고 보니 중국에 가있었다.


또 누가 내 마음 속에 떠오르나. 8년 전 마지막으로 연락한 한 친구가 떠올라 전화를 해봤다. 내일 아침 6시에 축구를 해서 친구 집에 자야 한단다. 못 가게 되어서 아쉽다고. 형 정말 오랜만이라고.



허 참. 사실 그 짧은 시간에 같이 템플하자고 저렇게 연락을 돌렸던 것도 참 조증 증상 맞긴 한 것 같다.또 내 용기가 가상하기도 하고.


덕분에 반가운 소식도 듣고, 무엇보다 친구들이 다 반갑게 내 전화를 받아준 게 기분 좋기도 하다.


근데 사실 그 중에서 제일 의미심장한 건, 아니 왜 다 어디 나가 있는거야?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돕는 것처럼(연금술사에 나오는 말이다),


온 우주가 내 철철 쏟아나는 피를 누르려고 작정한 것 같았다.


혜광스님처럼.


“좀 쉬어. 좀 쉬라고. 뭐 하려고 하지 말고 너 혼자 좀 쉬어”.



아냐 난 더 행복하고 싶다구! 으씨이이 더 행복하구 싶어!!!



그러고 혼자 절에 다시 들어갔다. 혜광스님이 나를 보고 말한다.

기도 안하고 그냥 쉬셔도 된다며, 저녁 안 드셨으면 저녁 밖에서라도 드시고 오시라고.


팀장님이 저녁으로 챙겨 먹으라고 아까 줬던 떡을 그냥 먹을까 하다가.


더 행복하고 싶은 나는 생각한다. 그래 난 팀장님이 떡으로 준 사랑도 먹고 싶지만! 이건 내일 아침에 먹고 저 스님의 나를 쉬게하고 싶은 사랑도 먹어야겠어. 밥을 든든히 먹고오면 108 기도도 힘내서 참가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난 더 행복해지겠지! 마침 예전에 약간 다툰 친구가 그 전에 생일선물로 준 비비큐 황금올리브 쿠폰이 있으니 그걸 먹자. 그걸 먹어서 그 친구가 선물하며 줬던 사랑조차 듬뿍 먹는거야! 그럼 용서를 통해 난 더 행복해져!


순식간에 이런 생각들이 팽팽 돌아가더니 치킨을 주문한다. 매장 식사는 안된다고 해서 포장으로. 바깥에는 비가 왔고. 절 안에서 치킨을 먹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의 나에겐 문제될 건 없다. 모든 것이 초월이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밖에서 비오는 운치 느끼며 치킨 먹으면 더 좋지. 도시 사람에게 시골사람의 자유를 보여주자.


이렇게 생각하면서 비오는 날 정릉천 데크 파라솔 밑으로 간다. 앉을 곳이 젖었길래 천재처럼 치킨 박스에서 치킨이 든 속 봉지만 빼고 치킨박스를 넓게 펴서 엉덩이 깔개로 만들었다.


그리고 치킨 한 마리를 다 해치웠다.


자 이제 기도하러 갈 때다. 난 마음을 세울테다. 결코… 눌리지 않겠어.


다 먹고 버릴 비비큐 치킨 봉지를 눈치 보며 몰래 몰래 절 안으로 들고 와선, 혹시나 냄새가 방에 배면 안되니 묵는 방의 화장실에 놓고는. 주지스님이 염불을 하는 곳에 들어가 1시간 조금 넘게,


치킨의 힘으로 부처님께 기도했다.



2024/04/20 경국사 앞 정릉천 바닥에서 먹은 치킨 한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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