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든 것을 훔쳤다 3

"훔치는 업의 완성은요,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거에요"

by 김상혁

11.2024년 04월 18,19

쌈채소 농장에서의 삶은 고통도 가득하고, 행복도 가득하다. 서울의 한 절에서 숙박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오랜만에 서울에 들렸다. 가득 찬 것을 비울 필요가 있었다.




내가 애초에 서울에 온 목적이 바로 이 템플스테이 공부 모임이다. 2023년 2월 아는 분이 모집한 청년들을 위한 템플스테이가 시작이었다. 이름은 ‘붓다의 향기’. 냄새는 참 중요하다. 아마 인간은 다른 사람이 뿜는 파동을 냄새로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첫 템플 스테이 이후 나는 주변 사람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경험을 했고, 2023년 8월 두 번째 템플 스테이, 기독교인인 친구 한 명도 초대했었다. 나는 사람들 속에서 울었다. ‘묵빈대처’. 스님(*비구니 스님)은 나에게 더 견뎌라, 더 이해해라 라고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스님은 예상 외의 조언을 해주셨다. 나에게 함부로 대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사람에게 아무 말도 섞지 않는 것이라는. 그 템플스테이 이후 우리는 1달에 한 번 공부모임을 했고, 이 곳 사람들에게서 최고의 사랑은 어쩌면 상대를 그냥 놔두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향기를 맡게 되었다. 2024년 1월 템플스테이, 나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임을, 내가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내가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걸 성취하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원력’이라는걸 세우기만 된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어쩌면 내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이었다. 뭘 하지 않아도, 진정한 마음만 세우면 저절로 되게 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2024년 2월부터 서울을 떠나 홍성에 가서 살면서도 늘 한 달에 한 번 이 모임에 참여하러 서울에 올라왔다. 얼떨결에 회장 역할도 맡게 되었는데, 사실 쌈채소 노동하느라 계속 회장 역할을 하는게 짜증이 났었다. ‘아이씨.. 농촌은 이렇게 돈도 조금 받고 힘들게 일하면서 살고 있는데 스울 사람들끼리 속 편하게 불교 공부하자고 모임이나 하고 말이야..’하는 마음가짐으로 꾸역 꾸역, 경국사와 연락해서 장소 대관하고, 스님과 연락하고, 날짜 투표 올리고. 예의는 쏙 빼고, 필요한 내용만, ‘이렇게만 해도 부처님 말씀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비심을 가져야지 안그래?’ 하는 마음으로 대충 대충 공지했다. 서울에 갈 때마다. 허나 고통을 좋아하고 있던 나는, ‘속 편한 소리하네.. 현실이 그래 현실이. 나는 현실을 직면하고 있을 뿐이라고. 나는 이 고통을 떠나지 않을 거여’ 라 혼자 속삭였다. 어쩌면 나는 홍성 장곡에 있으면서 십자가의 고통을 짊어진 예수님과 더 가까워지고 있었고, 모든 것을 깨닫고 해탈한 부처님과 더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렇게 그 둘을 무 자르듯 싹둑 나눌 순 없는 문제 아닌가. 내가 이 곳 홍성 장곡에서 먹는 밥. 산처럼 쌓아 놓고 먹는 밥. 수입과 지출이 똑같은 행복부엌. 그 행복부엌의 맛있는 식사를 해주시는 이장님 사모님은 불교 신자시다. 이 밥은 꼭 템플스테이 공양식 맛 같다가도, 티베트의 국물 요리 같은 산뜻함이 있으면서도, 꼬다리, 제육, 수육, 돼지김치찌개, 동태찌개, 온갖 제철 나물요리들. 이 곳 농장의 루꼴라와 파스타로 만든 샐러드에, 여기 쌈채소 농장의 유기농 쌈까지.



마을 사모님의 신심 가득한 밥


이 밥은 신심에서 나오는 밥이다. 그래서 어차피 뽑아서 버렸을 쌈채소들을 엄마 꺼를 챙긴 후, 사모님께 갖다드린다. 마을 사람들을 위한 식사를 해주실 때 쓰시라고. 한 번 한 하우스 안의 쌈채소를 통째로 다 뽑아서 버릴 때 사모님이 ‘아이고 이거 아까운데 왜 안 불렀어’ 한 걸 봤기 때문이다. 그 ‘아깝다’는 말은 자기를 위한 아까움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마음을 위한 아까움이다. 조증에, 한껏 고조된 나는, 신심에 매우 예민하다. 참고로 신심을 구별하는 엉터리 노하우가 하나 있다. 줬을 때 흔하게 예상한 기대보다 리액션이 별로다.. 하지만 결국 그 고마움이 내 마음에 닿는다.


어쨋건, 서울에 온 난 부처와 더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친구 M과 이야기를 하고 템플스테이 사람들을 만났다. 이틀 째 서울에서의 강행군에 녹초가 된 나를 보고 템플 사람들은 “아이고 상혁님 무게가 많아보이네”라 말한다. 나는 “아 그쵸 가방이 무겁습니다 크크”. 그랬더니 “아니 가방이 아니라 상혁님이 무게가 많아보인다고..ㅋㅋ”


그래서 조계사에서 여러 불교 전시 관람을 마친 뒤, 템플스테이 사람들은 ‘세상에는 맨날 고통받는 사람들 투성인데 이 한지로 만든 연꽃이 무슨 소용이여…’하고 있는 나를 얼른 어딘가에 앉혀야 겠단다. 밥을 먹으러 갔지만, 나를 앉히기 위한 마음이다. 아직도 온 우주가 나를 쉬게 하려고 나서고 있다. 지금은 이 사람들이. 한 사람은 무거운 내 가방을 들어줬다. 예전 같으면 괜찮으니 내가 매겠다고 기어코 버텼겠지만, 물 흐르듯 가방을 맡기고 말한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밥을 먹으면서는 흔한 이야기들을 했다. 뭐가 힘들고, 뭐가 꼴 보기 싫고. 템플스테이 사람들은 역시 내 말을 잘 들어주며, ‘응응 그렇지 상혁님이 너무 버틸 필요 없어 빨리 나와버려.’ 스님은 한술 더 떠 “그래도 쌈채소 뜯으면서 잘 관찰하세요. 어떻게 작물을 심고, 키우고 유통하나. 그래서 그걸 더 나은 방법으로 나중에 써먹어보세요” 라며 나에게 기술을 잘 기록해두라(훔치라) 권한다. 난 이 곳 홍성 장곡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옳고 그름’이 없다며 부당함을 계속 버티는 것에 답답해 했었다. 그런데 한 분이 던진 되게 절묘한 통찰.


“그렇게 버티면서 힘든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는 건, 사실 그 사람도 거기서 자기 이익이 중요하게 있다는 거야.”

“그 자기 이익에 탐심을 가지니까 그 사람도 아파지는 거지”


아… 아멘..



밥을 먹고 밖을 나선다. 내가 좀 기분이 나아졌는지, 사람들에게 북촌에 있는 기가 막힌 찻집을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아니, 나는 원래 기가 막힌 무언가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기분이 나아진다. ‘기가 막히다’ 참 이상한 말이라고 여러번 생각했다. 왜 기가 막히는데 좋은 뜻인 거지? 기가 채워져야 하는 거 아녀? 가만 보니 나도 지금 기가 막힐 정도로 기분이 좋은 거잖아? 그럼 스님께 질문해야겠다!


“스님, 기가 막히다 는 표현이 왜 쓰이는 거죠?”


스님은 환한 미소로 대답한다. 늘.


“기가 막히다는 표현은요. 사람의 행복이라는 게 다 채워질 수가 없는 거여요. 진정한 행복은 다 채울 수 없음 을 알고 끊임없이 자기 그릇을 키워가는 과정이고요. “


‘그렇지.. 자기 그릇을 키워야 하지..’ 나는 또 생각한다. ‘아..그런데 너무 정답 같아. 더 자극해 봐야지. 지금의 난(조증의 난) 기가 꽉 차서 막힌 것 같은데?’


“스님, 그래도 스님도 기가 막힐 정도로 행복해본 적은 없으세요?”


기가 막힌 찻집으로 향하는 인사동길을 가로지르며, 스님은 말한다.


“아 제가 예전에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세상이 너무 선명하고 깨끗하고 티끌 하나 없는 거예요. 그게 그 다음 날도 그러고, 그 다음 날도 그러고. 그러니까 기분이 너무 좋은데, 또 두려운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 때 ‘거기서 나와야지 나와야지’ 했어요. 그래도 안 나와지다가 어느 순간 되니 다시 세상이 흐릿흐릿하게 더러운 것도 보이고, 어두운 것도 보이고, 하더라고요.”


그 날은 유독 날이 선명한 날이었다. 구름은 흐릿흐릿 하지만, 모든 게 다 선명하게 보이는 그런 날. 내가 이런 날이 날이 좋은 날이라고, 경국사 팀장님에게 그 전 날 말했더니 팀장님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전화가 오더니 “오늘 날이 너무 좋더라. 전주는 구름이 막 껴가지고, 진짜 선명하게 다 보이는 거야” 하신다. 난 엄마를 닮았군.. 엄마는 그림을 그리는데..



스님이 하는 말을 들으니, 이 ‘조증 행복' 상태에서 나오고 싶지 않은 나는 또 질문한다.

“그럼 거기서 더 나아가는 방법은 없어요? 빠져나오지 않고요”


“그래서 저도 거기서 두려워서 벗어났다가 나중 되서 선지식(인연이 되어 나를 더 깨달음으로 이끌어주는 불교 용어) 에게 여쭤보니,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저절로 거기서 나오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음… 그렇군' 하던 차에 감고당 길을 지난다. 이 곳은 내가 자전거 인력거를 끌면서 맨날 설명했던 곳. 스님이 이 길을 궁금해 하길래 자신감 있게 설명 하려다가 이야기가 또 딴 곳으로 갔다. 나는 아까 밥을 먹으면서 했던 대화를 다시 꺼냈다. 어차피 버릴 쌈을 상자에 넣어 엄마나 사모님에게 주는 것을 훔치기라고 표현했다고 나는 말했었고, 스님은 “그걸 훔친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어차피 버리는 걸 순환시키는거지.”라고 말했었다.


“스님 근데 아까 훔친다는 표현을 제가 한 이유가요..”


저수지에서 불법으로 낚시하는 사람들 사례를 들었더니, 스님이 답했다.


“상혁법우 님은 그곳에서 정당한 노동을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얻고 싶은 거잖아요. 다르죠”


그건 그렇지만, 더 세상을 넓게 봐 보면 사실 훔치고 훔쳐지는 게 딱 떨어지는 게 아니지 않냐는 이야기를 하면서, 키가 180인 6학년 시우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러자 스님은 ‘투도업’이라는 걸 언급한다.


“아 그럼 상혁 법우님이 본인의 투도 업을 잘 보신 거예요. 투도 업은 훔치는 업인데, 보통 투도업이 있는 사람은…”


투도 업이 있는 사람은 물질을 잘 취한다는 이야기. 나는 말한다. "저는 사실 다른 사람에게 많이 훔쳐지면서 산 것 같다고 느꼈는데, 사실 아빠한테 많이 훔친 것 같아요." 그러자 "아니 그건 아빠가 고맙게 내준 거죠'" 라는 즉각적인 스님의 반격. 투도 업에 대한 여러 이야기 이후, 하이라이트.


“투도업의 완성이 있어요”


“업에도 완성이라는 게 있어요?”


불교에서 업은 무조건 지으면 좋지 않은 걸로 알았는데.


“투도 업의 완성은요,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거예요. 사람의 마음만큼 훔치기 어려운 게 없고, 사람의 마음만큼 귀한 게 없거든요.”


드디어 기가 막힌 찻집에 도착했다. 사실 나는 이 곳이 왜 기가 막힌 찻집인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차가 나오니 그 이유를 알았다. 작은 유리에 작은 실제 꽃이 심겨져 있고, 차와 함께 먹으라고 과자도 준다. 스님은 투도업의 완성을 이어 이야기 한다.


“봐봐요. 이런 꽃이랑 과자를 주는 게 사람의 마음을 훔치잖아요. 왜 상혁법우님이 여기가 기가 막히다고 했는지 알겠네요”




나는 그 날 밤 경국사에서 하룻 밤을 더 묵었다. 사실 그날 아침 너무 일찍 자리를 떠서, 경국사의 팀장님과 오후 네시에 붓다의 향기 모임을 하면서 인사를 나누려 했다. 그러나 종인스님께서 경국사가 아니라 조계사에서 야외 산책하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팀장님께 인사를 못 드리게 됐다.


그리고 장소 대관을 취소하는 연락을 드려야 했다. 연락을 했더니, 팀장님이 오늘 잘 곳 있냐고 물어보신다. 안 그래도 템플스테이 사람들과 충분히 이야기하고 나면 홍성으로 돌아가는 막차 시간이 늘 촉박했고, 또 그 다음 날 오전 7시 30분부터 쌈채소를 뜯을 기력이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참에 더 쉬어 버리고 싶었다. 또 묵어도 되냐 물어봤다. 팀장님은 잠시 확인을 하더니 된다고 답했고, 절에 들어가는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서울에서의 주말,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훔친다. 또 훔쳐진다. 근데 이 두 날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나에게서 훔쳐갈 게 별로 남지 않았음을 무언으로 느끼는 듯하다. 자기 직전, 언어공부를 위해 켜놨던 성경 ‘오늘의 구절’ 알림을 확인한다. “모든 것에 감사하라”. 절에서 자기 위해 누운 나는, 모든 것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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