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그 풍파를 견디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나는 지금 돈이 없다. 지금 70일째 수입이 없는 상태. 아니, 6개월도 훨씬 더 됐다. 작년 10월 공익 소집해제가 끝나고 나서, 스페인-포르투갈 순례길 다녀오며 펑펑 맛있는 것 나에게 ‘오구오구’ 해주며 먹이고, 노르웨이 가서 북극 도시 트롬쇠를 여행하고 오고, 또 다시 스페인 안에 있는 까딸루냐에 가서 순례길에서 만난 친구를 만나 마지막 한국을 오는 그 날까지 소비를 풀로 가동시켰다. 공익근무 동안 모였던 돈을 ‘다 비워버리자!!’ 하는 마음가짐이었다. 마치 돈이 없는 상태를 적극적으로 만들려는 것처럼, 혹은 어릴 때부터 자꾸만 돈을 쓴다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나한테 좋은 것을 사주고 해줄 때마다 왜인지 모를 죄책감과 무게감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 였다. 현재 내 통장은 마이너스다.
“저번에 문자로 보냈던 긴급생계지원비 그거 신청했어? 빨리 좀 신청해~ 지금 돈도 없잖아~”
엄마와의 갈등 포인트는 늘 한결같다. 나는 지금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데, 엄마는 왜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냐고. 돈도 제대로 벌지 않고 있으면서 하고 싶은 것만 붙잡는 나. 결국 문제는 내 자존심 위에서 세워진 행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나는 자존심을 내려놓을 태세를 이미 갖춰놓고 있다. 그러나 다만 기다릴 뿐이다. 현재 내 삶은 아무 문제가 없기에, 열심히 새로운 터전 위에서 나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내가 생각한 계획으로 돈이 벌린다면 좋고, 만약 내가 더 이상 내가 버틸 수 없다는 신호가 왔을 때, 나는 어차피 그 자존심을 내려놓을 것이다. 아직 나는 ‘나는 돈이 없어도 행복하다’는 자존심을 내려놓지 않고 있었다.
“엄마, 내가 돈이 필요했으면 여기 올게 아니고 지금 알바든 뭐든 하고 있겠지. 하 정말 엄마 걱정 좀 그만하고 내가 알아서 잘 행복하게 살고 있을게”
‘엄마나 좀 더 행복하게 살아줘’
마지막에 덧붙이고 싶었던 말이다. 그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하고 그 다음 날, 쌈을 뜯던 중 문득 긴급생계지원을 받으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점심 먹는 걸 봉급삼아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냥 쌈 따는 이 시간을 내가 알아서 활용해서 복지센터에 다녀오면 그만이었다. 그 때까지도 나는 굳이 그 돈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걸 안 받으면, 그 빈 자리에 상응하는 행운들이 분명 나에게 또 찾아오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돈을 받으러 가는 것은 엄마의 사랑을 무시하지 않기 위해서다.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었다. 하우스를 나선다.
걷는다. 뚜벅 뚜벅. 내가 사는 남자 숙소를 향해. 흙이 잔뜩 묻은 쌈 뜯기 전용 무릎 보호대를 벗지도 않고. 그 날은 새벽에 비가 많이 왔다. 그 후 얇게 펼쳐진 흐린 구름으로, 오히려 세상은 더 선명한 날이었다. 긴급생계지원비를 받기 위해 걷던 그 때였다. 나는 어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그 때 그 순간에서의 아빠를 만났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이혼했다. 나에게는 이제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다. 그래도 엄마는 누나와 내가 좀 자랄 때까지는 같이 있어야 겠다고 생각했는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집에서 사라졌다. 아빠는 그 전후 기간 동안 호프집 사업을 하다가, 주식 투자를 하다가, 다단계 일을 하다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해 그나마 살고 있던 아파트도 내놓아야만 했다. 한 순간에 막걸리 냄새가 풀풀 풍기는 막걸리 골목의 어느 주택가가 우리 집 동네가 되었고, 아빠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있었다. 아빠는 그 풍파를 견디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택시 운전을 하고 새벽 늦게 집에 돌아오곤 했다. 어쩔 때는 막노동도 했었나보다. 내가 태권도 장에 가는 길에 우연히 아빠를 보았다. 흙이 잔뜩 묻은 장화와 옷이 보였다.태권도 도복을 입었던 나를 스쳐 지나가며 아빠는 어색한 인사를 했다. 아빠가 한참 풍파를 겪을 때에 돌아가셔버린 할머니를 생각하면. 아빠는 마치 자신의 불행들이 할머니를 죽게 만든 이유일 거라며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에 몸서리 쳤을 것이다. 그 때 아빠의 심경은 어땠을까. 그 때의 아빠를 그럼에도 계속 달리게 만든 그 힘은 무엇이었을까.
아빠는 자존심이 무척 센 사람이다. 젊었을 때는 공대 학생회장에, 술도 막걸리를 10주전자 마셔도 끄떡없는가 하면, 더 젊었을 때는 학교 축구선수에, 야구선수에 운동이란 운동은 다 잘했었다. 사람들은 어찌나 그리 챙기던지. 회사에 다니던 시절 아는 사람 결혼식은 다 갔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농사일도 주말마다 가서 도왔다. 삼촌도 우리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고, 내가 아기였을 시절 아빠는 월급 40만원 중 고시 공부를 하는 작은 아빠에게 방세와 용돈으로 30만원을 줬다고 한다.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쳤던 것도 회사 관리자가 동료 직원을 함부러 대하는 꼴을 보지 못해서였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고통 속에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스스로의 삶 그 한 가운데에서, 처벅 처벅 걸어가고 있었을 그 아빠. 가족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누나를 위해서, 척박한 자신을 위해서. 자기가 갖고 있던 자존심 모두 내려놓고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주는 돈과 물품들을 받으러 걸어가고 있었을 그 때의 아빠는.
울음이 가슴 깊숙히부터, 과거 그 어딘가에서부터, 아빠와 나의 깊은 인연으로부터 뛰쳐나온다. 아빠는 나를 위해 그 모든 것을 훔쳤구나. 아빠는 나를 위해 죄책감을 다 끌어안고 자존심을 내려놓았구나. 나는 어쩌면 이 곳 장곡에서 돈 없이 생활하며 아빠를 만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초생활 생계지원을 받기 위해 어딘가, 어느 순간 걸어가고 있었을 그때의 아빠를 만나고 있는 중인지도.
어제 존재를 알게된 남자숙소의 한 뒷 마당 공간이 있었다. ‘이런 공간이 이 숙소에도 있었구나. 되게 낡고 허르스름 하지만 조금만 잘 관리하면 쉬기 좋은 공간이 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었다. 울음이 뛰쳐나오자 나도 모르게, 그 뒷 마당 문을 열고 뛰쳐나간다. 화장실 변기에 토라도 하려는 듯이. 혼자 엉엉 운다. 울음을 토해낸다. 아빠의 울음인지도 내 울음인지도 모르게 다 토해낸다.
숙소를 나서니 비가 미스트처럼 오고있다. 촉촉한 비의 수분이 내 얼굴을 적신다. 울음이 끝나고 난 뒤의 눈물이 아직 내 눈에 남아있다. 복지센터를 가는 길 중간, 다리를 건너며 다시 울음이 뛰쳐나오려고 한다. 비가 더 많이 오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입은 옷은 흙이 가득 묻어 긴급생활비지원을 받기에 외관상 아주 제격이다. 그러나 처음보는 사람들 앞에서 울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빗물이 내 얼굴을 적신다. 이게 빗물인지도, 눈물인지도 모르게. 빗물인지도, 눈물인지도 모르게. 꼭 그게 아빠의 삶을 함축하는 한 문장 같다고 느낀다. 난 지금 돈을 받으러 가고 있지만, 이미 필요한 순간을 모두 만났다. 그 시절 아빠와 만났고, 그 시절 아빠를 표현하기에 딱인 한 문장을 만났고. 어느새 평화가 내 안에 깃든다. 이제 비는 눈물도 빗물도 아닌 그냥 물로 보인다. 시야에 꽃이 보이면 눈이 홱 돌아가 지켜본다. 비가 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지만 새와 곤충, 공기가 맑게 적셔지는 소리들이 들린다. 내 눈에 있는 물이 빗물인지 눈물인지 아직 모르지만. 그 순간 나는 가장 행복했다. 가장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