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정신이 아닌 순간 2

자유란, 두려움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by 김상혁

14. 2024년 5월 21일

돈을 받지 않는 대신, 나는 이곳의 훔칠 수 있는 모든 것을 훔치고 있었다. 드디어 스스로 보상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전국1등 유기농쌈채소하우스의 어차피 버려질 쌈채소는 훔치기 대상 1호였다.




아침에 20분 정도 늦게 쌈을 뜯으러 갔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잠에서 깨니 7시 10분이었다. 늘 모이는 시간보다 더 일찍, 혹은 딱 맞춰서 일어났는데, 난 감격했다. 내가 드디어 잠을 오래 자는구나!!!! 푸하하하하 혼자 속으로 신나하면서 붕 뜬 머리카락을 그대로 둔 채 쌈을 뜯으러 갔다. 속으로 예상했다. J쌤은 뭐라고 안할 것 같은데, 그 밑에 Y 선생님이 속으로 머리 굴리면서 내가 믿을만 하지 못하다는 둥, 얘가 시간을 늦기나 하고 탓하는 둥 하고 있을 것 같은데..’ ‘아놔 내가 지 1달동안 아파서 일 못할 때 얼마나 개같이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사람을 부리려고만 해? 고마움도 모르는 인간 같으니라고’ ‘하.. 시발. 그래 그 인간이 이렇게 10년동안 버텼으니 이 유기농 쌈채소 농장도 있고 여기 마을 권역도 생긴건데. 그래서 나도 이런 행복을 경험해볼 수 있었고. 인간사 복잡하다 그냥 고마워하자! 뭐 늦었는데 죄송하다 말하면 되지 뭐.’ ‘아니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돈도 안주면서, 나 같으면 나 같은 애가 처음으로 20분 정도 늦으면 얘가 드디어 여유를 갖는 구나 하고 축하할 텐데, 속 좁은 인간같으니라구’


딱 하우스에 도착했을 때, Y 선생님이 있었고 나는

“안녕하세요~ 아우 늦잠을 자가지고..” 하고 인사했다.

근데 Y 선생님은 슬쩍보고는 본체 만체도 안한다. 인사도 안해.



그래서 마음 속은 ‘시발 시발 시발 시발’ 그래서 나는 Y샘한테 말한다. 어차피 내가 여기 떠나도 상관없으니까 마음에 남기지 말자!


“아니 Y쌤, 제가 싫어요?”


내가 싫냐는 내 말에 Y 선생님은


“아니 니가 늦었으니까 그렇지. 늦었는데 인사하면 뭐라고 하냐.”

속이 복잡했나보다. 그러고는 “야 너 졸업도 이번 학기가 기회 마지막이라매.”라고 말한다. 그래. 이 사람은 지금 돈도 받지 않고 3개월 넘게 버티는 내가 이해가 안가고 두렵고 또 죄책감으로 가득하군. 이번 학기에 한자시험 보면 졸업한다고 말했다. 생채를 뜯으란다.


사실 지난 주 금요일, 평지 교회에 습관 처럼 가면서 결단을 내렸다. Y 선생님의 수제자가 되자! “여기서 니가 이것 저것 다하니까 니 위치가 여기 사람들한테 애매하다. 지금까지는 괜찮은데, 이렇게 계속 되면 나는 니가 이 곳 사람들이랑 더 어색해지기만 해서 이 곳에 다시 못오게 될까봐 그게 걱정이다” Y 선생님의 위 선생님, 여기 대빵 선생님 J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들여서다. 그래 이 곳 마을 사람들에 이곳 저곳 달라붙지 말고, 내가 제대로 취할 것이 있는 사람과 관계를 제대로 맺어서, 저 Y선생님의 온갖 농업에 대한 노하우를 내가 다 취하리라! 그리고 10년 넘게 부려지고 있는 Y 선생님도 정말 선생님이 되게 하자. 가 평지교회에 가는 길에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이상하게 평지교회에 가면서 나는 모든 복잡한 일들을 간단하게 해결한다.




그래서 이번 주 월요일, 처음으로 오후에도 Y선생님한테 가서


“선생님 뭐 가르쳐주시거나 할 일 있으면 말씀해주시죠.”


하.. 이 제일 고마우면서 제일 무서운 사람같으니라고. 내가 말하고 난 후의 그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마치 절에서 스님이 “절에서 고기를 먹는게 어떻다고 생각해요?” 라고 물으면서 나를 날카롭게 시험할 때의 눈빛이었다.


“저기 저 애들 하우스 철거하는 일 하잖아. 나는 좀 있다 저기 붙어서 일할 건데?”


이장님 사모님 식당을 만들기 위해 철거중인 하우스였다. 일이 많이 빡세보였다.


“아….네……”



나는 좀 어슬렁 어슬렁, 에어팟도 충전하고,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스리슬쩍 하우스 철거하는 일에 합류했다. 모든 일의 시작은 내가 부려지는건지.. 배우는건지.. 도와주고 있는건지.. 헷갈린다 헷갈려. 그러나 노르웨이어 오디오북을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그래 ! 운동도 하면서 노르웨이어나 듣는거지 뭐’ 하고는 이 곳에 실습을 온 풀무고 학생들과 몸을 꽤 잘 쓰는 일잘알 양선생님과 함께 하우스 철거일을 했다. Y 선생님은 중간에 합류했다.


잘 하다가 문제가 생겼다. 실습 학생들이 일을 하면서 “아 목말라 시원한거 마시고 싶다” 하는걸 내가 들은 것이다. 마침 지난 주 토요일부터 내가 뜯지 않은 채 놓여있던 사과쥬스를 허락없이 뜯고는 계속 먹고 있었기 때문에, “그 하우스 냉장고에 가면 사과쥬스 있어요 그거 마셔요!” 하고 말했다. 양샘은 일을 하면서


“아니 근데 그거 누구건데요?” 나는 “저도 모르는데요?ㅋㅋㅋ”

양샘은 크게 웃고는, “아니 허락없이 그러면 큰일나~”

나는 “에이 뭐 큰일 나면 제가 하나 사죠 뭐”


근데 사실 적어도 초반 2개월은 개같이 굴러서 이곳의 쌈을 뜯은 나에게 그 사과쥬스가지고 뭐라 할 것 같진 않다고 느끼고 한 말이었다. 심지어 Y선생님이 장이 안좋아서 병원을 가야 할 때도 내가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빠르게 쌈을 뜯었는데...그런데..



양 선생님도 덩달아 냉장고에 가서 사과쥬스를 5개 가져와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을 챙겨주려고 했다. 그런데 Y선생님이 그걸 보더니 그걸 누가 뜯었냐고, 내가 뜯었다고, 아니 그거 스승의날 선물로 준비한건데, 아 그렇구나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제가 뜯었으니, 아니 저걸 저렇게 뜯으면 어떻게 해.


‘시발..’


나는 그 마음을 사과쥬스를 쪽쪽 마시고 있는 고등학생들 앞에서 “하~ 진짜 쪼잔하네” 하고 말했다.


또 저번에 내가 마을 이장님에게 빌린 수레를 잘 모르고 썼는데, 쓰다보니 바퀴가 원래 펑크나있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침 Y 선생님은 나에게 야 그거 원래 펑크난건데 너가 써버려가지고 마을 이장님한테 물어줬잖아. 한 번이면 괜찮은데. 그 이후에도 한 번인가 더 이야기 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같으니라고…….’


그래도 이 곳에서 돈으로 잘못 엮이면 배로 노동해서 갚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나는, 재빨리 그 사과쥬스가 어디서 난건질 확인한다.




‘아침에 사과즙 한잔’ ‘자연을 내 안에’

예당 네츄럴 팜에서 만든 사과쥬스


나에겐 돈이 숫자다 이 사람들아. 그렇게 나한테 감사한 줄도 모르고 쪼잔하게 굴면 내가 돈쭐내서 복수한다고! 하면서 3만원 결제. 그리고 나서 나갔더니 Y선생님은 ‘야 너도 저기 붙어서 해’ 라며 자기 감정을 부리는 것으로 푼다. 그래서 나는 멀리 자기 할 일 하러 가는 Y선생님에게 다 들리도록 “그 사과쥬스 제가 하나 주문했어요” 외친다. 양샘은 “아니 그걸 왜 샇ㅎㅎ”


“복수하려고요..”



상담을 한 시간에 11만원주고 2년간 했던 나는, 마음의 힘이 돈의 힘보다 더 세다는 걸 알고 있다.



어쨋건 허락없이 뜯어 먹은건 나긴 하지… 사과쥬스야 고맙다! 아멘.



KakaoTalk_Photo_2025-09-01-08-10-41.jpeg 2024/05/20 허락없이 뜯어 먹은 사과즙




그 다음날, “내가 싫어요?” 대화 이후에 Y 선생님과 나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의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Y선생님은 안그래도 돈 안주고 쟤 일하는 꼴 보는게 불편해 죽겠을텐데, 또 괜히 쪼잔하게 굴었다가 돈 쓰게 만들었다는 마음이 들었을 수 있고. 나는 내가 어제 3만원을 써서 저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으니, 최대한 내가 여기서 일하는게 불행한게 아니라 행복한 것이다라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요가자세, 고양이자세와 플랭크 자세, 기도 자세로 생채를 뜯고 있었다.

KakaoTalk_Photo_2025-09-01-07-49-03.jpeg 플랭크자세로 쌈뜯는 모습


Y선생님은 같이 쌈을 뜯고 있던 한 풀무고등학교 학생에게

“야 너 쌈 뜯는거 힘들어보이니까, 저거 치커리좀 뽑을래? 저거 진디가 너무 많아서 어차피 수확 못해 버려야해”


“그리고 다 뽑은건 좀있다 수레 가져와서 다 버려”


뽑는건 내 일인데.. 저거 내가 뽑아서 절,교회,엄마,아빠,삼촌,누나 다 갖다줘야하는데.. 내가 뽑는 일이 오길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풀무고 학생, 키가 큰 남학생은 뽑는 일을 하기 싫어하는 눈치였다. “아 선생님 저 허리가 아파서..”

그러나

“네..” 하면서 뽑기 시작.


내가 그 학생을 보니 싫은 표정이 역력했고, 어제 열심히 하우스 해체를 돕느라 허리도 아픈데 허리를 굽혀서 일하는 꼴이 나도 보기가 안좋았다. 그래서 내 비장의 무기. 정면을 쳐다봐도 목을 숙이지 않아서 허리가 아프지 않은 ‘귀찮음 거울반사안경’ 을 찾아 갖다줬다.


“이거 쓰면 허리 안아퍼요. 안써도 되는데, 쓰면 허리는 안아플거야”


역시 순수한 고등학생들은 그 안경을 일단 반기며 써본다. 그리고 Y쌤에게 선생님 이거 뭐냐고 묻는다. “난 이거 싫어” Y샘은 말한다.


‘아니 시발 내가 저거 쓰고 쌈을 얼마나 뜯어다 줬는데!!’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말한다.


“ㅎㅎ 그래도 쓰면 허리는 안아파요~”


어쨋든 그 학생은 갑자기 신나게 돌변해서, 그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치커리를 뽑기시작한다. 무슨 물만난 개처럼 뽑더라. 난 속으로 의기양양 했다. 훗, 내가 여기서 괜히 3개월 버티고 지금은 마냥 행복한 줄 알아? 내가 여기서도 행복하려고 얼마나 팽팽 머리를 썼는데. 그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하우스 밖을 나가면서 그 학생에게 “제가 두 박스 챙길테니까 기다려요” 자신있게 말한다.


그 학생은 약간 나를 리스펙하는 말투로 “넵!” 대답했다.



마구마구마구마구마구마구마구마구마구마구 담았다. 마치 빈 수레에 버릴 것을 담듯이 흙이고 뿌리고 뭐고 마구마구마구. Y샘이 없을 때를 틈타 훔칠까 생각했지만, 그런 두려움에 내가 쫄면 나는 죽어버리는거다 생각하고 더 자신있게 훔쳤다. 이젠 이걸 훔치는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건 당연히 내가 가져가도 되는 보상이야’라고 생각해버리면 현재의 내 행복이 100이 아니라고 인정해버리는 것임을 이젠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래는 슬쩍 눈치보면서 뽑은거 100중에 한 40정도만 훔쳤는데, 이번엔 거의 90 이상을 훔쳤다. 한 박스 두 박스 세 박스.. 그렇게 총 5박스가 되었다. 이쯤 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뭐 죄짓는거도 없었다. 오히려 그 친구 대신 잘 버려주고 있었지. 오히려 Y 선생님이 내가 어제 3만원 쓴 것때문에 불편한 마음도 버려주고 있었지. 그래서 마지막 박스 하나를 가져오면서 Y샘한테 말했다.


“ㅎㅎ 이제 마지막으로 담겠습니다..”


내가 치커리를 쓸어 훔치는 동안 계속 가만히 있던 Y선생님이 말한다.


“너 뭐 하냐?”


“ㅋㅋ 훔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Y샘과 실습 학생들 하우스 퇴장. 나는 마지막으로, 사실 이제 그만하고 버릴 생각을 하던 쌓여있는 치커리 더미를 보고는.


‘아 저거는 비닐에 싸서 평지교회 갖다드려야겠다’


그리고 남은 마지막 100중의 5를, 수레 쓸 것도 없이 양손으로 가볍게 하우스 바깥에 버리고는, 쿨하게 Y샘과 실습 학생들이 있는 4번동에 가서 그 키 큰 남학생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제가 버리는 거 다했어요” 말한다. 걔네들이 쌈을 뜯어주고 있는 덕택에 내가 더 잘 버티며 훔칠 수 있었다는 감사함의 표시였다. Y쌤한테 ‘이게 진정한 버리기다’를 보여주는 동시에.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치커리를 마구마구 담았다. 자유란,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무언가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자유란, 두려움 안에 있는 것 아니라. 두려움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KakaoTalk_Photo_2025-09-01-07-48-44.jpeg 원래는 버려졌을 치커리 6박스와 교회 갖다 줄 한 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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