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정신이 아닌 순간 1

‘내가 제일 자유롭다’

by 김상혁

13. 2024년 5월 21일

돈을 받지 않고 쌈채소를 뜯으며 생활한지 벌써 100일이 넘었다. 누워서 쌈 뜯고, 갑자기 어디 다녀오고, 뭐든지 제 멋대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를 이 곳의 대부분 사람들은 불안하게 쳐다봤다. 평온을 원했던 나는 광천의 평지교회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내가 제일 자유롭다’라고 하는 사람은 그 누구든지 뻥카를 치고 있는거라고 생각한다. 자유란 쌓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비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내가 제일 자유롭다’라고 말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게 두려워져 가장 자유롭지 못할 수 있다. 혹 ‘내가 제일 자유롭다’라고 한 숨 쉬듯이 내쉬며 말한다면 모르겠다. 그 숨을 내쉰 뒤의 평온함에서 오는 자유를 맛보기 위해 그 말을 하는건 인정.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를 잠깐 자랑해보자면, 오늘 일을 마치고 유기농 치커리 총 6박스가 내게 생겼다. 그 치커리는 원래는 다 버려질 치커리였는데, 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내가 다 주워담은 것이다. 그래서 6박스를 우체국에 모두 보내고, 마지막으로 남은 봉지 하나를 가지고 광천의 평지교회에 왔다.


평지교회를 처음 알게 된 건 3달 전 기독교인 친구가 나를 보러 놀러왔다가 주일 예배를 위해 이 곳 교회에 가보자고 해서였다. 예배당에는 할머니 여덟 아홉명이 전부였다. 다들 젊은 친구 둘이 온 걸 신기해했다. 예배가 끝나고, 사모님이 챙겨주신 샤인머스킷을 먹으며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초등학교밖에 안나왔는데 검정고시로 검찰공무원이 된 이야기. 10대 때 천자문을 혼자 길에서 외다가 서당에 스카웃당한 이야기.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돈을 수천만원 빌려줬다가 돌려받지 못한 이야기. 온갖 조선의 역사이야기. 정말 신기한 목사님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흥미를 끌었던 건 목사님이 한자 초 천재라는 점. 목사가 되고 나서도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을 다니셨다고 했다. 졸업을 아직 하지 못한 나는 한자시험을 쳤어야 했는데. 언젠가 한자를 배우러 이 목사님을 찾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고 두 달쯤 지나서 나는 어떤 계기로 평지교회로 발걸음을 향했고. 마침 그 때 예배당에 목사님이 계셨다. 그 후부터 평지교회를 자주 들르기 시작했다.



가져온 치커리를 다 씻고나니, 목사님이 내게 쉬거나 볼 일을 보라고 하신다. 그래서 이 곳 마당 책상의 파라솔을 피고 바깥 보리밭이 보이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핸드폰은 충전이 얼마 안되어 ‘목양실’이라는 교회 공간에 충전기를 꼽고 충전을 하고 있었는데, ‘자유’라는 한자의 진짜 뜻을 좀 알고 싶어 핫스팟을 사용하려고 목양실의 창문을 열어 핸드폰을 살짝 바깥쪽으로 놓는다. 그런데 핫스팟이 이 곳 마당 테이블까지 닿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 꽃 화분 심는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신 목사님에게 ‘자유’라는 한자 뜻에 대해 물어볼까 고심 중이다.


바로 이 순간의 가능성. 내가 그냥 노트북을 핸드폰 근처까지 끌고와서, 혹은 그냥 저기 바로 보이는 창문 방충망을 열고 핸드폰을 끌어 당겨서 자유라는 한자의 뜻을 찾아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잠시 목사님을 방해하여 자유라는 한자 뜻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뭐가 더 좋은 결정인지는 나도 모른다. 목사님은 기꺼이 한자를 가르쳐주실 수도 있고, 내가 여기 앉아 글을 쓰도록 해주신게 바쁜 와중에 최선으로 내주신 마음일 수도 있다. 혹은, 좀 있다 내가 이 글을 다 쓰고나면 ‘뭐 물어볼 한자 있어?’하고 물어보실 수도 있다. 내가 무슨 선택을 하든, 그건 자유로운 나의 선택이다.


요즘 나는 집문제와 돈 문제에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8월이면 1800만원 보증금에 한 달 6만원만 내면 살 수 있는 홍성 임대아파트 당첨이 될 예정이다. 그런데 서울에 이미 뺀 원룸의 집주인이 보증금을 주지 않아 나의 현재 빈곤하다 못해 마이너스인 경제상황이 당첨에 걸림돌이 될까 걱정이었다. 지난주 토요일, 기차를 타기 위해 광천에 들렸다가 잠깐 평지교회에 들렀더니 목사님이 계셨다. 사실 그 전에 꽤 자주 이 곳 교회를 들렀을 때 라면도 먹고 가고, 그냥 좀 앉아있다 가고 했었는데 그 때는 목사님이 보이지 않었았다. 목사님은 나를 보자 특유의 브이 하고 인사하는 제스쳐를 취하고는, 의자를 옆에 끌며 “자 여기 앉아” 하셨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앞에 있는 달맞이 꽃들을 함께 쳐다봤다. 몇 번 이 곳에 들러서 라면도 먹고 갔다니까 목사님이 "잘했어"라고 말하신다.


나는 “목사님이 그렇게 말하실 것 같아서 먹고 갔어요 ㅎㅎ” 라고 받아쳤다. 목사님은 나에게 여기는 평일에 말고 주일에 와야한다고 말씀하신다. 난 이 말의 의도를 아주 잘 알고있다. 평신도 2명이 있는 수요일 저녁 7시, 교회 예배당에서 목사님이 신도 한 명 한 명을 위한 기도 내용을 마치 하늘을 뚫을 것처럼 소리쳐 기도하는 것을 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날 목사님의 그 기도하는 모습에 감흥을 받아 밤 9시에 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달리기를 했다. 아마도 나를 위해 기도해주기 위해 주일에 오라고 하는 것일테다. 그래서 나는 이 평지교회가 있는 곳 근처에 차라리 집을 아예 구해버릴까 하는 생각으로


“이 곳은 집을 구하려면 얼마 정도 하나요?”



500에 30정도 한다는 이야기. 주로 월세로 받는다고 한다. 기독교는 행동의 종교다. 목사님은 곧바로, 저기 오른쪽에 있는 2층 집에서 방 하나를 구하고 있다면서, 저기 가서 한 번 문 두드려봐 하신다. 몇 번 두들기고 큰 소리로 불러봤지만 대답은 없었다. 다시 돌아와 앉아서는, 한숨을 푹 쉬며 “사실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고 있지 않고 있어요. 에효 이 못된 사람을 어떻게 해야할 지…”


누군가가 미워질 때 어떻게 해야 할 지는 할머니의 가르침 덕분에 잘 알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내게 귀한 것, 고운 것을 줘야한다. 죄책감에 짓눌리지 않고 온전히 누릴 경험을 내게 줘야한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럴 용기가 없었고, 미움에 장악될 수도 있는 상태에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목사님은 한 3초 정적을 지키더니,


“나 좀 어디 다녀올테니까, 저기 저 꽃 좀 보고 있어”


“아 예”


나는 목사님이 한 말의 의미를 한 85%정도 알고 있었다. 바로 꽃을 보러 걸어나갔고, 그러나 꽃에 완전히 다가가고 있지는 않았다. 목사님은 내 손을 부여잡더니 더 꽃 가까이 나를 끌고가서


“꽃 좀 보고 있어” 하시고 어딘가로 가신다.


달맞이 꽃, 장미꽃, 작은 보라빛 색깔의 꽃, 담장, 담장 너머의 파란 지붕 같은 것들을 봤다. 꽃 그림 그리는 걸 전문으로 하는 엄마에게 꽃 사진 몇 장을 보내준다. 꽃 냄새도 맡아본다. 장미는 꽃 냄새가 안나는 줄 알았는데 꽤 냄새가 났다. 목사님은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앉아 사색을 하다가, 그 날 아침에 쌈을 뜯다가 핸드폰으로 적고 있었던 글에 ‘자연과 친구’ 부분을 ‘자연,친구, 그리고 영’ 이라고 수정한다. 왠 참새가 갑자기 내 바지 주머니 켠에 날라왔다. 작은 참새가 내 몸에 이렇게 날라와 앉은 것은 괜히 처음 있는 일 같다고 느꼈다. 어딘가로 가신 목사님은 한 동안 오지 않았고, 나는 기차시간을 맞춰 역에 가야했다. 미리 가방에 챙겨놓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표지 기념품을 책상에 놓고 소리없이 사라졌다.


KakaoTalk_Photo_2025-09-01-07-48-58.jpeg 2024/05/18 갑자기 내 바지에 앉은 참새




그렇게 또 한 순간의 평안을 찾고 나서 지금 화요일 다시 평지교회에 찾아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어제, 월요일에도 집 보증금 대출 기한을 연장해야 하는 일이 생겨 쌈을 뜯다가 한 숨을 푹 쉬며 은행 직원과 전화를 했다. 전화가 오고, 전화를 하며, 전화를 마친 후 내 마음이 평안함을 잃자, 나는 일단 하우스 동 쌈 냉장고에 있는 ‘아침에 사과즙 한잔’ ‘자연을 내 안에’ 예당 네츄럴 팜에서 만든 사과쥬스를 집어 마셨다. 그리고 다시 일을 하러 하우스에 들어가지 않고, 그냥 더 걸어가 , 더 걸어가, 더 걸어가 출입 금지 구역인 저수지 산책길을 돌아서, 그 곳의 날라다니는 새도 보다가, 낚시하는 낚시꾼도 보다가, 또 지나가서 라벤다 밭도 지나서, 돌아와 쌈채소 하우스에 다시 도착했다. 마음은 다시 평안함을 찾았다. 그 평안한 마음으로 쌈을 따면 쌈도 덩달아 더 잘 자랄 것 같다고 느꼈다.

KakaoTalk_Photo_2025-09-01-07-50-54.jpeg 산책길 풍경



그래서 오늘 이 곳 평지교회에 와서 다시 그 2층 집에 찾아가 방을 구하고 있는지 물어봤다. 이번에는 집 주인이 계셨다. 그러나 방은 이미 구해졌다고. 보증금 200에 30이었다. 예전에 전세로 집 사는게 가장 바보같은 짓이라고, 진짜 부자들은 월세로 집을 구해 그 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이제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돈이란 건 반드시 자유를 구속시키기 마련이고, 돈이 나가고 들어오는건 숫자에 불과하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내 삶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함과 평온함과 풍족함을 누리고 있는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얼핏 알고 있다.



국화를 심고 있는 목사님 주변을 맴돌며 “이 풀도 좀 뽑을까요?” 말했다. “상혁 형제는 좀 앉아서 쓰던 레포트 써” 목사님이 답했다. 나는 슬쩍 자유라는 한자에 대해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목사님은 “알았어 내가 알려줄게 앉아있어” 하신다.


목사님은 일을 하시고, 난 다시 테이블에 돌아와 앉는다. 글을 다시 쓴다.


그래서 자유라는건 도대체 무엇일까? 일단 자유는 쟁취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유를 추구하고 자유를 행할 때는 제 정신이 아니게 되는 것 같다. 오늘 아침, 나는 원래는 수레에 버려야 할 치커리 6박스, 그리고 목사님 드릴 것 까지 총 7박스의 양을 박스와 봉지에 마구마구 담았다. 거의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아, 목사님이 책상에 와서 앉으신다. 자유라는 한자를 설명해주시려나 보다.


KakaoTalk_Photo_2025-09-01-07-48-50.jpeg 自는 스스로 자, 폐에 공기가 드나듬을 형상화 한 글자 / 由는 말미암을 유, 밭에서 식물이 자라나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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