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 사실은 감사할 수 있다
오늘-이 글을 쓰고 있는 날(화요일)-은 아침에 찬물 샤워를 하지 않았다.
잠이 오는 중에 잠을 깼을 때 억지로 일어나서 나를 깨우지 않았다. 그냥 누워있다가, 적당히 날이 밝으면 비몽사몽 일어났다. 지금까지 내가 사는 숙소 방에 해가 들어오지 않았었다. 창문 자리에는 옛날 한옥 나무 문짝 하나가 대신 있었는데, 창호지로 덮여있었다. 어제-월요일- 감옥의 벽을 숫가락으로 구멍내는 죄수처럼, 해를 가로막고 있었던 창호지를 손가락으로 마구마구 구멍을 냈다. 그래서 이제 방에 해가 들어온다. 겨울에 그 전에 있었던 사람이 놓고갔던 방풍텐트(나의 유일한 안전지대 였던 공간)도 치워버렸다. 나의 정신이 더 넓은 공간에서 여유를 만끽하도록. 잠에 일어나서는 바로 뛴다거나, 바로 유투브를 만든다거나 하지 않고. 이제는 좀 더 차분하게 앉아서 글을 쓴다.
경국사에서 치킨의 힘으로 기도한 날 다음 날-토요일-이다.
그 날도 일찍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아직 마음이 긴장되어 불안하다.
그 날의 일정은 아침에는 미사리에서 대학교 때 조정부 친구와 배를 타기로 했다.
그리고 오후에는 일년 전 템플스테이에서 처음 만나서 인연을 잇게 된 사람들, 그리고 종인이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과 공부모임을 경국사에 다시 와서 할 예정이었다.
순간을 살아간다는 건 긴장되는 일이다. 상담선생님이 말한 조증의 증상은 이와 비슷하다.
사실 그날 아침 마음이 긴장되고 불안했던 이유는 모처럼 절에서 편하게 자고 쉬었는데 아침에 인사도 드리지 않고 친구를 만나러 가서였다.
어차피 오후에 만나서 인사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전날 팀장님께서 하신 말이 있었다.
"아침 8시까지 있는 거로 생각하시고, 시간이 되시면 내일 같이 산행도 하고 절에서 쉬는 것도 좋을텐데. 그냥 배 타지 말고 친구 절에 불러요. 같이 산행하고 절에서 있으면 되지’ "
그리고 나는 "아 그쵸 사실 저도 그러길 원하는데.. 약속에 매여서.." 라고 대답했다.
본래 나의 패턴은
1. 친구와의 정해진 약속이니 당연히 배를 탄다.
그러다 내가 가끔 지쳤을 때의 패턴은
2. 즉흥적으로 친구한테 “아침에 절에서 놀래?” 제안했다가 거절당하면 무안해 하며 웃는다.
현재 조증인 나의 패턴은,
3. 무엇이든 모두 가능하다. 내가 쉬고 싶으면 친구가 뭐라하든 절에 오라고 요구할 수 있고, 친구가 정색하며 거절하면 나는 그걸 받아줄 수도 있고, 내가 친구에 매여있고 싶으면 힘을 내어 약속대로 배를 타러 갈 수 있다!
정도랄까.
그러니까 나의 모든 말, 나의 모든 행동, 나의 모든 순간에 항상 힘이 깃들어 있어서, 정해진 강물길을 타고 배가 물 흐르듯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기어코 내 힘으로 파도를 헤치고 방향을 정하는 초인처럼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과도한 자신감이 조증의 증상이다.
그리고 그 느낌이 매 순간 순간 나에게 힘을 주고, 행복감을 준다 실제로.
하지만 사나워지기도 한다.
상혁씨가 평소와는 다르게 더 사납다. 상담 선생님이 전 날-금요일- 하신 말이었다.
사나울 수밖에. 나는 홍성 장곡에서 ‘훔치기’가 작동 원리인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곳에서 예전의 나는 스스로 ‘훔치기’라고 느꼈었던 행동을 점점 곧잘 해나가고 있다. 이 훔치기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와 어떻게 상냥하게 나눌 수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 날 만난, 현재 서울대에서 진화인류학을 석사과정중인 친구 M 과는, 그게 가능했다. 나는 살면서 한 생각을 토해내고, 그걸 ‘음..’ 혹은 질문도 하면서 받아주는 친구. 그러다 가끔 ‘이 대화를 녹음하면 진짜 좋을텐데’ 말해주는 친구, 그런 친구였다.
“너는 너가 훔치고 있는 중인 게 있어?” 내가 슬쩍 물었다.
“음 훔치고 있는 중이라는 건 훔치는 게 꼭 행동만은 아니라는 거네? 내가 훔치고 있는 중인 거라..”
그 친구는 자기가 ‘이걸 받아도 되나’ 싶었던 대학원 조교 월급, 가까운 관계에서 약간 받을 때마다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받는 것들 등을 이야기 했다.
나는 그 친구가 누군가로부터 자신이 훔친다는 죄책감을 느낄 때, 그 누군가도 그 친구로부터 무언가를 훔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늘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을 “그럼 반대로 상대 쪽에서 너에게 훔치고 있는 건 뭐라고 생각해?”라 표현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늘 내가 그 친구의 책임을 좀 덜어주려고 할 때마다, 자기 혼자 우뚝 선 완벽주의자 처럼, ‘에이 그건 그냥 내 책임이지’ 하고 완고하게 걷어 차버리는 낙타같은 친구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음, 나는 훔치는 건 완벽하게 능동적인 행위라고 생각해서, 훔친 건 내가 훔친 거지 그게 상대가 나한테서 훔쳐서 훔친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경상도 사투리)”라고 답했다.
훔치는 건 완벽하게 능동적인 행위라. 그 말을 들으니 수동성, 고통, 연민이라는 키워드로 떠오르는 한 아이가 있었다.
벌써 2년 전 내가 공익근무를 하던 아동센터에서 또래보다 키가 훨씬 크고 맨날 일본 애니메이션 대사를 혼자 중얼중얼 거리며, 친구들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하던, 큰 등치에 비해 아무도 괴롭히거나 건들지 않는 착한 심성을 가졌던 6학년 시우.
그 친구는 매번 아동센터의 남자선생님에게 군대 후임처럼 혼이 났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매우 화가 나 있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체험학습을 간 독립 서점 같은 곳에서 비치되어 팔고 있는 과자를 그냥 먹었다. 파는 게 아니라 그냥 비치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걸 본 남자선생님은 ‘너 그거 훔치는 거야. 너 내가 경찰 부르면 어떡할래, 이렇게 남의 물건에 손대도 되는 거야 안되는 거야’ 라며 또 군대 선임처럼 혼을 냈다.
난 그 장면을 직접 보지 않고 선생님들의 회의시간에 들었지만, 그 장면이 지금도 선하게 그려지고, 들린다.
나는 그 시우 이야기를 친구 M에게 했다.
훔치는 게 정말 완벽한 능동적인 행위일까? 내가 이 곳(홍성 장곡) 에서 살면서 보는 게 있어. 하지 말라고 하는데 저수지에서 불법으로 낚시하는 사람들. 이 곳에 견학을 온 공무원들을 태우는 버스기사가 아무렇게나 정원에 있는 모종이나 꽃들을 가져가고 옮기는 모습.
나도 그랬거든. 처음에 내가 돈도 안 받고 오전 오후 쌈채소 일을 했을 때, 이 곳 대빵, 겉으론 호랑이 같지만 실은 사슴 같은 J선생님이 내게 해주신 말이 있었어.
“저기 탕비실 냉장고에 먹을 것 많으니까 그거 그냥 먹고 싶을 때 먹고, 뭐 작업할거면 여기 세미나실, 공용 사무실 쓰고, 사무실에 티비로 영화도 봐도 되고, 니 맘대로 써라”.
난 실제로 맨날 쌈을 뜯다가 탕비실 냉장고에 있는 것 아무거나 먹었고, 이 곳의 공간 사용 규칙이 뭔지도 모르고 일단 그냥 이 곳 공간들에 거의 내 집인 것처럼 살다시피 했어.
그니까 뭐랄까, 훔친다는 게 인간이 갖고 있는 깊은 본성이고. 그런 본성이 누군가가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려있을 때 그냥 표출되는 게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했거든. 결국 무언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이미 훔쳐졌으니까, 나 역시 훔치게 되는 거지.
(잠시 서울에서의 토요일 시간 중단)
-글 쓰는 오늘(그 다음 주 화요일)-
오늘도 다시 줌으로 심리상담을 했다. 상담에서 나는 이제부터 글을 쓰겠다고 했다. 상담선생님은 나에게 “심리학 책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하나도 없지만, 제 임상 경험의 진실은 우울의 치료제는 예술이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상담이 끝났다. 시간은 여섯 시였다. 이 곳 마을에서 참여해야 하는 마을학교가 한참 진행중일 시간이다.
'그냥 거기에 가지 말고 지금부터 당장 글을 써볼까...' 하다가, 그냥 평상시의 의무감대로 마을 학교에 가려고 자전거를 탔는데..
아멘, 아담이 이브가 금지된 선악과를 먹어 원죄를 얻었듯, 프로메테우스가 신에게 불을 훔쳐 벌을 받았듯. 인간의 삶은 훔치는 것 위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 엄마의 생명의 일부를 훔치고, 학교에서 지식을 훔치고, 사회에서 돈을 훔치고, 국가로부터 삶의 안정을 훔치고, 실은 더 나아가 우주에게서 시간을 훔친다. 신에게서 사랑을 훔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로 귀결된다. 감사. 모든 것에 사실은 감사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훔친 것이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지금, 자전거를 타고 마을학교에 가다가 자전거 안장을 고정하는 못이 두동강 나 부서졌다. 아무도 없는 언덕 지름길 속에서, 소나무가 펼쳐져 있었고, 한적한 마을이 내다 보였다. 내 이어폰에는 플라워 ‘독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전거 페달이 갑자기 부서진 것에 당황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마치 저 하늘 위 누군가가 나보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위해, 이 곳 마을을 위해 살지 말고, 너를 위해, 네 자신의 표현을 위해 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글이나 쓰러 돌아가야겠다.” 자전거를 끌고 걸어서 온 길을 되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자전거가 부서진 덕분에, 나는 글을 쓸 시간을 훔쳤다.
(다시 토요일 시간대 시작)
아.. 다시 돌아와서, 사실 친구 M과 하는 대화는 이게 늘 문제다. 정말 몰입해서 고조되어 모든 진실의 끝까지 다 찍고 돌아오지만. 막상 상기하려면 그 생생함을 복원할 수 없다.. 훔치기와 관련된 나의 경험을 필두로 여러 이야기를 했다. 북유럽은 국가에게서 많은 걸 훔칠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안정적이지만, 한국은 국가에게서 훔칠 수 없으니 자꾸 이상한 쪽으로 샌다. 그리고 내가 이 곳 홍성 장곡에서 관찰한 훔치고 있으면서 자기가 훔치고 있는 걸 부정하는 사람들. 사실 그게 착취당하는 농촌과 착취하는 도시 관계로 넓혀지는 폭넓은 사회적 관점까지. 하지만 실은 L이모가 매일 날마다 새롭게 심어 놓는 꽃, 나무와 식물을 쳐다보며 커피를 마시며 나누는 수다, 하우스 안에서 맨발로 흙을 밟는 것, 농약이 없는 동네를 달리기, 밤하늘의 별, 공짜로 얻은 컨테이너 작업실, 엄마에게 보내는 (원래는 버렸을) 유기농 쌈채소 등 서울보다 이 곳에서 내가 훔칠 수 있는 것들이 더 풍요로운 것 같다는 이야기. 그걸 내 안의 인간의 쉐도우, 혹은 인간의 동물적인 면이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다는 말도 하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데 사납지 않을 수 있냐며, 너무 화가 난다고, 훔치면서 자기가 훔치고 있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보는 게. 그래서 난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려 계속 나를 긴장감으로 내몬다고. 이 고통이 너무 힘이 들어 내가 조증에 해당하는 고조된 행복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 같다며. 하지만 사실 나는 이 고통을 계속 겪고 싶다고. 이 고통을 통해 성장하고 싶다고. 그러면서 인간이 정말 자유를 가질 수 있으려면 신의 존재가 반드시 상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며(고조되었던 그 논리구조가 떠오르지 않아 생략) 대화는 마쳤다.
친구 M에게 사납게 내 이야기를 다 풀어놨다. 물론 내 마음이 아닌, 생각의 구조들, 고리들.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단편들을 말이다. 아마 친구는 진화인류학자의 관점으로 나의 이야기들을 동물-인간의 울음소리 처럼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다 풀어놓고 나니 사납던 나는 마치 쌈채소 농장에서 쌈을 한 6시간 뜯다 보면 나오는 무표정의 나, 모든 껍데기가 다 덜어진 나, 그래서 겉으로 보면 힘이 전혀 없는, 꼭 도와줘야 겠다고 느껴지는 상태로 변했다. 그러고 템플스테이 공부모임의 스님과 사람들을 조계사에서 만난다. 이제는 신이고 사회고 모두 재쳐두고, 본격적으로 내 마음자리로 돌아갈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