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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Sep 05. 2024

개같이 굴러보자

개같이 더 굴러보자고!!!!!!! 하고 글을 쓰러 앉는다. 아주 오랜만에 일이란걸 했다. 아파트 인테리어 시공. 교회 다니는 분이 가볍게 인테리어 일좀 자기 아들이 한다고 도와달라해서 한다고 한건데. 알고보니 아주 제대로 집을 뒤집어 엎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 아들은 나에게 시급 1만원을 제안하며 일을 할 것인지 물었고. 나는 뭐, 돈도 없는데 그냥 해보지 뭐 하고 수락했다. 



버틴다. 난 버티는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것 같다. 오늘도 삼촌의 잔소리를 버텼다. 잔소리라기보단 애정섞인 조언이지만. 그런 인테리어 시공 원래 하면 하루 10만원 12만원 넘게 준다. 무슨 시급 1만원 받고 그런 일을하냐. 돈 더 달라고 해라. 근데.. 만약 그 교회 사람이 아들한테 시켜서 아들이 마지못해 인테리어 일을 하는거였다면 나도 삼촌 말에 백번 천번 공감했을텐데. 아들이 먼저 나서서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가 낡아서 두달 시간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겠다고 했단다. 아, 그 엄마를 위한 아들의 사랑에 살짝 감동. 그래서 그 엄마는 아들이 혼자 일하기 어려워서 나를 꼬신거라고. '아니 왜 자기 아들한테 미안한데 나를 이용하는거야' 생각이 들지만. 돈이 없으니까 급하게라도 일해야하니까? 아니.. 난 이제 그런 나를 부족하게 바라보는 마음으로 살진 않기로 다짐했으니 그게 이유가 될 순 없고.. 



하. 그냥 사실 오늘 살아있다고 느꼈다. 일하면서. 문득 내가 왜 신에 대한 신앙심이 생기게 되었는지 이야기 하고 싶다. 올해 1월 나는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땅에 살고 싶다' 라는 생각. 내 마음의 문제는 마음으로 해결할 수 없고, 몸을 먼저 살려야 마음이 살겠다 라는 생각. 그 생각들이 머리를 아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때 진짜 하고 싶었던게 몸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해외 어떤 할머니의 프로그램이었다. 그 프로그램 참여할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근데 그 때는 그렇게 자유롭게 살 용기가 부족했지.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유기농 쌈채소 하우스에서 몸을 개같이 굴리게 되었고. 결국 쌈뜯으며 요가하고 쌈뜯으며 몸의 밸런스를 찾았다. 하지만 쌈채소 하우스에서도 한계가 찾아왔지. 나를 함부로 대한 사람에 대한 미움이 내 정신을 깨지게 만들었다. 수모를 당했다. 수모를 당하지 말아야지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아야지. 업신여김을 당하지도 말아야지. 생각했더니 갑자기 스윽 유기농쌈채소 하우스에서 나를 내보냈고 스윽 이 곳 광천의 평지교회 사람들과 더불어 지내게 되었다. 돈 안받고 일한 이야기를 안쓰럽게 들어주며, 반찬을 챙겨주며 맛없으면 버리라고 말하는 사모님. 아들같다고 막걸리 심부름같은거 시키면서 밥 먹으라 오라해주고 절대 부담같은거 느끼지 말라고 계속 얘기해주는 영화빌라 선생님 부부. 이뻐하면 뭐하냐고 반찬도 못챙겨주는데 라고 말하는 할머니들. 만나면 늘 브이로 환하게 인사하고 절대 눈치고수인 내 시선을 뺏는 법이 없는 목사님. 



그리고 어제 이제 대학원같은거 그만다녀야겠다고. 합리화 하는 삶 그만 살겠다고 마음을 먹으니까 오늘 스윽 몸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 리모델링 시공 일을 하고 있다. 대학원 준비한다고 했으면 맘 불편해서 일에 집중도 못했을텐데. 다 끝까지 버티고 나니 그 뒤에 길이 스윽 열리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떤 결심을 내리든 신은 나를 위해 예비한 것들이 있구나.. 하고 속으로 감사하게 된다. 그 신을 믿지 않았다면, 혹은 내게 주어질 가능성들을 믿지 않았다면 끝까지 버티다가 막혀버렸을 그 가능성들. 내가 내가 겪고있는 고통을 속으로 깊이 헤아린 상태로 버티고 있을 때, 언제나 새로운 길은 열렸다. 



그래서 오늘 내게 또 다른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다. 막노동, 노가다, 일용직이라는 부정적 이름 뒤에 이런 살아있는 느낌이 있었다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오늘 한 것은 일반적인 노동과는 다르긴 했다. 나와 함께 일하는 분도 미국에서 생활해서 꽤 마인드가 열려계신 편한 분이었고. 그 분도 리모델링을 처음하는 터라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서 내가 내 방식과 요령대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이제 이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내가 만약 함께한다면, 다른 노동과는 다르게 나는 하나의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다 경험한 셈이 되므로. 아주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삼촌 잔소리가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사람은 나보다 9살 많은 결혼한 사람이었는데, 대화를 나눌 때 전혀 수직적인 것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좋았다. 시급 2만원을 주더라도 그런 느낌 있는 사람이랑 단 둘이 있고싶진 않아요 삼촌.. 



역시 난 몸을 써야하는건가? 생각했다. 너무 머리만 쓰는게 진짜 문제구나. 난 몸을 써야해. 달리기 하는거로 충분히 쓰고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몸을 쓰면서, 몸을 어떻게 쓸지 생각도 하면서. 어떻게 내 몸을 아낄지 생각하는 과정이 정말 나에게는 재밌는것같다. 어찌보면 난 그걸 진짜 잘하는 사람인지도. 일을 많이 해본 사람도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편한 자세를 난 귀신같이 잘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오늘도 벽 판지를 긁어내야하는데, 그걸 망치를 수직으로 때리다보니 손목이 너무 아파서. 이런저런 자세들을 시도하다가 결국 북을 치듯이 스치는 기술로 망치를 '스윙'했다. 그러니 손목도 안아프고, 그 스윙의 충격이 전체 판지에 전달되어 더 잘 떼어내지더라. 한 번은 농촌 일을 돈 받고 했던 적이 있는데. 라오스 친구들이 모판을 논까지 약간 기울어진 내리막 경사면으로 걸어서 옮길 때. 난 기가막힌 묘수를 떠올렸다. 내리막 맨 위에 모판을 다 쌓아놓고. 미끄럼틀 처럼 다 미끄러트려 보내버리기. 라오스 친구들은 그걸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밑으로 내려가서 내가 미끄러트린 모판을 받는 역할을 알아서 척척 하기 시작했었다. 농촌 일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었다. 



농사를 해야하나? 그나마 내가 몸을 쓰는 방법에 가장 가까운건 농사겠다. 흙에 몸을 뒹굴고. 내가 쌈채소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이 했던 말이 있다. '농사 일을 잘하려면 낮은 자세로 해야한다고' 보리수 열매를 따는 것도 서서 허리를 구부리고 따는 것보단 아래에 무릎 꿇고 손을 위로 뻗어 따는게 더 편하고. 모판을 농기계에 옮길 때도 경사면 위에서 모판을 허리숙여 잡아서 일어나며 주는 것보다 아예 더 내려가서 위로 공물 바치듯이 주는게 더 편하다. 그게 자세가 훨씬 더 자연스럽고 '요가스럽다'. 그럼 노동도 몸에 좋은 움직임이 충분히 될 수 있다. 몸을 편하게 사용할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말이다. 몸이 망가지고 마음이 망가지는 이유는 마음이 다급해서다. 마음이 다급해서 남들이 하라는대로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일 수록 마음의 소리에,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 그 무엇보다 그 과정을 방해하는 사람들과 환경을 피해야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인테리어도 재밌다고 생각했다. 그 아들은 단순 효심으로 인테리어를 하는게 아니었다. 자기가 나이 앞자리 수가 바뀔 때마다 10년씩 무슨 일을 할지 미리 계획을 세우는데. 50대가 되면 인테리어를 본격적으로 하고싶은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아파트를 샀을 때 기회다 싶어서 대뜸 하겠다고 한거라고. 그래. 차라리 엄마를 위한 효심보다 그런 호기심 넘치고 도전정신 강한 경험에 함께하는게 내게도 더 좋지. 내가 왜 니 효도를 대신해주겠냐 말이야. 그냥 그 몸을 움직이다가 잠깐 바람쐬며 경치보고, 머 먹고 싶은것 먹는 그 여유의 느낌이 되게 좋았다. 살아있는 기분이었다. 물론 생각에 빠져서, 음악을 들으면서, 몸에 대해 곰곰히 고민하면서 움직이는 일에 집중하는 것도 여유롭다고 느꼈다. 활력있었다. 



막상 일이 다 끝나니 몸이 지쳐서 책도 읽을 생각이 안났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하루만에 난 또 고민에 빠진다. 그렇게 또 계속 누워있었다. 누워있다가 생각했다. '뭐 시발 어때. 그냥 이렇게 계속 개같이 굴러보자'. 안망해 안망해. 이렇게 개같이 계속 굴르다보면 차라리 돈 벌어서 세계여행 더 일찍 가겠지. 진짜 책읽는게 중요하고 언어공부하는게 중요하고 글쓰는게 중요하고 영상만드는게 중요하면 어떻게서라도 짬을 내어 할거야. 그 하루가 좆같지만 않으면 돼. 몸이 피곤한게 뭐 어때서. 그만큼 잘살았다는거잖아. 너는 왜 너가 최선을 다한 하루. 살아있다고 느꼈던 하루에 대해 칭찬은 못해줄 망정 의심을 하는거야? 꺼져버려. 니가 버틸 수 있으면 일단 더 해보도록해. 너를 살리는거라면 계속해도 아무 문제 없어. 그러다 좆같으면 그만 두면돼. 또 그럼 좋은게 생길거니까 걱정마 이 새끼야. 



그렇다고 생각하는 나를 너무 몰아세울 필요는 없다. 오히려 몸을 쓰면서 일하면서 더 잘 생각할 수 있다고 격려하자. 몸을 쓰면서 더 잘살아지는 삶을 어떻게 하면 더 나다운 삶으로 바꿔낼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은 환영하자. 생각은 내가 몸에만 빠져버리는 것을 막아주는 나의 든든한 지지군이므로. 어떻게 하면 몸과 생각이 서로 협력할 수 있을지, 생각에게 그 고민을 할 수 있게 해야겠다. 몸은 생각을 막지 않는다. 생각도 몸을 막지 않아. 그러니 이왕 이렇게 몸을 쓰기로 시작한거. 더 한 번 개같이 굴러보자고 마음먹는다. 이번에는 돈이라도 벌리니까. 이번에는 아무도 나를 무시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테니까. 더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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