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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Sep 05. 2024

불법 낚시꾼에게도 도움을 받으려면

"한 시인이 말했지요. 어떤 사람도 섬이 될 수는 없다고. 선한 싸움을 이끌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겐 친구가 필요하지만, 친구가 멀리 있을 때는 고독을 자신의 중요한 무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단호하게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주위의 모든 것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것 속에서 당신의 '선한 싸움'을 이끌어 승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나타나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오만한 전사가 되고 말 것이고. 그 오만함은 결국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말 것입니다. 너무나 자신만만한 나머지 전쟁터의 함정들을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 파울로코엘료, 순례자 ,99p




유기농 쌈채소농장에 일하며 살 때, 근처에 저수지가 있었다. 그 저수지에는 꼭 외지 사람들이 차를 타고 와 낚시를 했다. 낚시를 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그래서 그 곳에 마을 사람들은 그 낚시꾼들을 안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한 편으로 들었던 생각은, 주어진 환경을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활용해야 잘 관리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낚시꾼들이 불법으로 와서 낚시하는 걸 뭐라하지 말고, 농업 용수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었던 저수지를 더 잘 활용하고, 그래서 더 청정하게 관리하면 좋지 않을까. 뉴질랜드를 떠올렸다. 그 곳에는 사람들이 그냥 마을의 강가에서 조정 배를 타고, 낚시를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자연이 공유되기 때문에 더 청정하게 관리한다. 한국은 꼭 모든 것을 금지해놓고, 그 책임을 하나의 권위가 모두 독점하고, 그러면서 별 책임의식 없이 함부러 사용하는 것을 두고 '역시 인간은 그렇지'하고 비관한다. 그러고 더 통제한다.  애초에 책임을 공유해볼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하여간 나는 항상 이렇게 삐딱하게 모든 것에 대해 생각의 꼬리의 꼬리를 물곤 했다. 


어느 날은 저수지를 달리고 있었다. 난 그 때 한참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던 때였다. 나는 뭐든지 다 해낼 수 있다는. 그 자신감이 한정된 환경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다는 게 딱 한가지 문제였다. '난 울지않고 꿋꿋하게 이 곳에서 행복할 수있어' 이런 풍선같은 생각은 살짝만 건드려도 울음이 터진다. 달린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저수지에서 도로로 통하는 길을 잘 몰랐다. 평소같았으면 네이버 지도를 찾으면서 달렸겠지만, 그 때는 내가 뛰는 곳이 곧 길이요 하고 내가 알아서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로 그랬다. 그 당시 나는 정말 귀신같았다.



두리번 두리번 거리더니 물가에 낚시꾼들이 있는 길이 있고, 낚시꾼들이 없는 길이 있다. 낚시꾼들은 보통 외지인이기 때문에 차를 타고 낚시기구들을 잔뜩 가지고 온다. 낚시꾼이 있다면 그 길로 차 도로가 통해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낚시꾼이 있는 길을 따라가면 이 저수지를 빠져나가 도로로 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몇 초도 안되어 팽팽 돌아갔다. 낚시꾼들을 바라보며 '에휴 저 낚시꾼들 때문에 저수지가 망가지지' 만 생각했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마을에서 적대시했던 낚시꾼들에게도 내게 필요한 무언가를 얻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며 '모든 것에 감사해야지' 하고 혼자 실실 쪼개며 달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달리다가 그 낚시꾼들에게 환하게 인사를 해봤다. 나는 그 시절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고팠다. 아무도(몇 명 빼고) 내게 표면적인 온정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는 버릇같은걸 약간 저항하듯이(사람이 이러케 서로 잘 대해야지!!!!) 세웠었는데. 내가 그렇게 인사해봤을 때 가장 환하게 인사해준게 그 낚시꾼들이었다. 이유는 뻔하다. 그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이어서가 아니고, 주변에 마을 사람이 오면 늘 잔뜩 긴장해서 저 사람이 나 신고하면 어쩌지 하고 부들부들 떨려했을 그 사람들에게 나의 작은 친절은 마음이 환해지는 안도감이었을 것이다. 인사뿐만 아니라 달라는 것 모두 줄 기세의, 두려움 가득한 친절이었다. 그래서 곧 놀러오겠다는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야 여기 저수지에 불법으로 낚시하는 사람들 널렸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 사람들에게 잡은 것 좀 달라고 하면 다 줄 것 같더라 ㅋㅋㅋ" 친구는 한 술 더 떠서, "아 그럼 미끼도 안챙겨가도 되겠네. 그냥 전화기 귀에 대고 낚시대나 들고다니면서 그 사람들한테 미끼랑 낚시도구랑 다 달라고 하자. 안 주면 경찰에 신고한다 하면 되지". 진짜 언제 꼭 한 번 해봐야함. 



오늘 읽는 순례자에 나온 저 구절은 오묘하다. 고독을 자신의 가장 중요한 무기로 만들라고 하면서, 주위의 모든 것으로부터 필요한 도움을 받으라고 한다. 실제로 고독하게 되면 아무 도움도 필요없다는 듯이 살아야 할 것 같고. 실제로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 그 사람에게 은혜를 갚아야 할 것 처럼 산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는 '선한싸움'의 영역에서는 오히려 모든 것에 도움을 얻으면서 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 '도움'과 '좋아보이는 친절'에 파묻히지 않고도, 혹은 그것들을 모두 가로막지 않고 살 수 있는 자유의 길을 저 구절은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속으로는 더 큰 걸 얻길 바라면서,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는 척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사기다. 인간이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혹여라도 뭔가 베풀어놓고 원하는 보답을 받지 않았을 때 아쉬워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니가 감히!!' 하는 것은 명확히 사기다. 그 사람이 좋은 마음으로 나를 도와줬으니, 나중에 내가 더 크게 갚아야하겠다 하면서 더 큰 부담을 느끼는 건 이런 사기에 제 발을 스스로 묶는 격이다. 이런 생각이 겉으로는 어둡고 캄캄하고 냉정해보이지만. 실은 그렇게 제 발을 스스로 풀어헤치는 노력이야 말로 계속해서 내 안의 밝은 마음을 드러내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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