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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Sep 06. 2024

땀흘리는 것에 대한 소외

피부가 많이 탔다. 한 번은 그냥 카메라를 들고 땡볕을 1시간 넘게 걸었다. 그게 내 피부가 탄 제일 큰 원인. 그 외에도 아침에 햇볕아래에서 달린다던가. 또 뭐가 있었지? 사실 내 피부가 막 탈 이유는 올 여름엔 별로 없었다. 내가보기엔 봄부터 서서히 유기농쌈채소 비닐하우스에서 유브이 차단된 빛을 받으며 피부가 선굵게 익기 시작했고. 그 익은 피부에 종종 5분 10분 걷고, 종종 무모하게 땡볕을 걸어서 피부가 더 타보이는 것 같다. 속 빛이 달라진거지.



우리 엄마는, 그 탄 피부를 보고 썬크림을 바르라고 했다. 나는 그냥 귀찮았다. 선크림을 바르는 것도 귀찮은데. 나중에 그 선크림을 세수해서 없애야 하는 것도 귀찮고. 특히 엄마가 선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생길 수도 있는 온갖 피부염들과 그 이미지들을 이야기하는 걸 듣는 것도 귀찮았다. 옛날엔 나도 그런 두려움을 엄마와 공유하고 있었지만. 요즘에는 꼭 반드시 선크림을 바르지 않는다고 해서 피부가 그렇게 벗겨지고 원자폭탄 맞은 것처럼 변하는게 아니란걸 안다. 두려움 장사. 이 세상엔 진짜 두려움장사가 많다. 왜냐면 사람들은 다 두려움 속을 헤엄치며 살기 때문이다. '선크림 안바른다고 다 그렇게 되는거 아녀~' 그나마 건조하게 엄마에게 대응하고선, 그래도 엄마가 바르라는데 마지 못해 선크림을 발랐다. 



하여간 그렇게 선크림을 아주 오랜만에 발랐다. 문제는 저녁부터 생겼다. 저녁에 집에 돌아오니 피부가 가렵고 붓기 시작하는 것이다. 눈이 띵띵 붓고, 얼굴 주위주위에 모기가 얕게 물린 것 같은 자국들이 생겼다. 바로 선크림 탓인가? 하고 선크림을 탓을 하기시작했다. 이건 마치 내가 겪는 불행에 대해 일단 '엄마 탓인가?' 하고 보는 아들의 피해의식과 비슷하다. 남자로 태어난 아들의 자기존재의 태어날때부터의 근원이지만 자기와 다른 성을 가진 엄마를 향한 피해의식은 고양이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는 것만큼 선명한데.  그 날카로운 비명을 속에 아무도 모르게 간직하고 있느니, 그 비명이 어떤 각도로 날서있는지, 비명의 끝은 어떤 마음의 자리에 걸쳐있는지를 확인하고 직시하는 것은 사는데 도움이 된다. 선크림 탓이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비염알러지가 이번에는 얼굴 피부로 도진 걸수도 있고, 최근 하기 시작한 아파트 리모델링 시공의 후유증일 수도 있다.



내가 선크림에 대해 더 날이서게 두려움장사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햇빛을 쬐는 것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아니. 당연히 햇빛을 몇 시간이고 계속 맞으면 피부에 안좋겠지. 그런데 기본적으로 인간은 햇빛 속에서 사는 존재잖아. 어떻게 잠시 나가는 외출에서 햇빛을 쬐는게 피부병의 원인일 수 있지?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국적, 라이프스타일을 초월한)은 오히려 햇빛을 쬐는 것을 즐기던데?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도, 모자며 선글라스며 썬크림이며 피부때문에 이것저것 다 챙기는 사람들은 한국인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인이 동안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당연히 쬐어야 할 햇빛에 너무 과하다 싶었던 것이다. 햇빛이 우리가 두려워야 할 스트레스가 된다면, 삶이 너무 각박해지잖아. 그 각박한 마음이 더 암을 유발하겠다. 



아파트 리모델링 시공의 후유증.은 절대 답이 아니었다. 그 다음날 벽 도배지가 다 벗겨진 곳에서 먼지 날리면서 도배지를 정리하고, 음침한 화장실 밑에 떨어진 벽돌조각들을 줍는 일을 했다. 그런데 오히려 피부가 나아졌다. 땀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부 알러지 반응은 피부에 누적된 열 배출을 제대로 못해 생기는 것이라는걸 며칠 전에 검색해서 알았던게 생각났다. 아, 지금 내가 땀을 흘리면서 배출을 하고 있으니 피부가 괜찮아지는구나.  



아파트 리모델링 시공의 후유증. 내가 왜 이런 일을 서른 한살이 되어서야 처음 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봤다. 그건 엄마 탓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엄마가 발라준 선크림같은 것이 내 삶에 두텁게 발라져있었다. 땀흘리는 것에 대한 소외. 에어컨 빵빵하고 서류작업하고 머리쓰는 일만이 엄마가 생각하는 내 인생의 선택지였다. 당연히 내가 그런 삶을 받아들일리 없었지만, 나는 엄마가 발라놓은 선크림. 마치 햇빛을 두려워 하는 것처럼 인간으로서 마땅히 몸을 움직여 일하고, 그 과정에서 땀흘리는 것을 두려워 했다. 마치 몸을 움직여 일하고 땀을 흘리면 삶이 무너지는 것이라 느꼈다. 삶이 그렇게 무너지는 것을 막아주는 사람들의 배려와 걱정에 감동해야 하는 것처럼 느꼈다. 그런 일을 하는 존재들을 볼 때면 연민이라는 감정으로 가장 먼 거리감을 작동시켰다. 나는 그들이 사회에서 소외당한 존재들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 자신이 알러지도 낫게하는 땀흘리는 삶으로부터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었다. 



선크림을 이제 벗겨내려 한다. 선크림을 벗겨내려 하는 것은 감동하지도 않은 일에 감동하는 척을 멈추는 일이다. 아들의 피부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만 절묘하게 남겨놓은 채 선크림을 바르라고 하는 잔소리를 과감하게 거절하는 일이다. 그보다는 솔직하게 땀을 흘려 땀으로 내 피부를 도배하는 것이 낫다. 햇빛조차 피하는 두려움으로부터 땀은 나를 과감하게 밀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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