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릴리안 Mar 31. 2021

아빠의 발 위에서

이모토 요코

제목을 보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빠의 발 위에 있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힘이 될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황제펭귄은 본능에 따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매년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는다. 그리고 알을 낳은 엄마 펭귄은 먹이를 구하러 가고 아빠 펭귄이 알을 받아 발 위에 올려 품는다.


그런 모습은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많이 보아왔다. 다큐멘터리를 다 보았다기보다는 다큐멘터리의 예고를 보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긴 하다. 다큐멘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기억이 없다. 우연히 예고편을 보고 인터넷 뉴스의 한 토막을 읽거나, 텔레비전 어딘가에서 누가 소개하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들이 있다. 제목보고 매서운 바람에 서로와 서로의 알을 보호하기 위해 자리를 옮겨가며 꽁꽁 둘러싼 황제펭귄 무리의 모습이 사진처럼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걸 보니 다큐멘터리를 보진 않았어도 어디선가 무언가를 보고 기억할 정도의 관심은 있었나 보다.


몸이 떨리는 것이 보이지 않는데도 고개를 숙이고 다닥다닥 붙어서 눈보라가 치는 곳에 모여 있는 커다란 펭귄들은 몹시 추워 보였다. 그리고 남극이나 북극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지구 온난화', '환경 파괴'같은 라는 단어들이 굴비를 엮어가듯이 떠오른다. 이제 북극곰과 남극의 펭귄은 우리의 삶과 함께 지켜야 할 소중한 존재들이 되었다. '아빠의 발 위에서'는 직접적으로 환경보호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지만 책을 읽고 있으면 지구 상에 함께 살아가는 동일한 생명이라는 것을 가깝게 느낄 수 있게 한다.


남극의 추위는 영하 50도가 넘기에 알이 바닥에 떨어지면 바로 얼어버린다고 한다. 때문에 아빠 펭귄은 알을 지키기 위해 발 위에서 알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지켜진 알에서 새끼 펭귄이 태어난다. 4개월의 기다림 끝에 태어난 새끼 펭귄은 새끼 펭귄을 위해 먹이를 구해온 엄마 펭귄의 발 위에 옮겨주면 그제야 아빠 펭귄은 먹이를 먹으러 나갈 수 있다. 그러면 엄마 펭귄은 발 위에 올려진 새끼 펭귄에게 배속에 저장해둔 먹이를 하나씩 먹이며 이제 아빠 펭귄을 기다린다. 그렇게 새끼 펭귄이 바다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부모 펭귄들은 돌아가며 사냥을 해서 새끼 펭귄을 먹인다. 새끼 펭귄들이 남극의 얼음을 이겨낼 수 있게 되면 부모 펭귄의 발아래로 내려온다. 그리고 솜털 같은 깃털이 빠지고 어른과 같은 깃털이 나면 이제 부모와 함께 바다로 가서 사냥을 시작한다.


많은 동물이 자손을 이렇게 키운다. 각자 조금씩 방법은 다르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발 위에서 안전하게 자라 성인이 되는 것이다. 부모가 아무리 발 위에 놓고 조심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아이도 있고, 부모가 발 위에 올려놓지 않아도 잘 자라는 아이도 있다. (물론 새끼 펭귄들은 부모의 발 위에 있지 않는다면 얼어 죽을 테니 자라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어떤 상황에서든 아이들은 자라긴 한다.


어떻게 무엇으로 자라든 '부모의 발 위에서 자란다'라는 것은 인생에 큰 기둥이 되어 주지 않을까? 표지의 그림은 입을 벌리고 어른 펭귄을 쳐다보고 있는 새끼 펭귄과 그런 새끼 펭귄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어른 펭귄의 부리이다. 어른 펭귄의 눈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기 펭귄의 신뢰를 바탕에 둔 눈빛과 그 눈빛 아래에 있는 아기 펭귄에게 향해져 있는 어른 펭귄의 부리만으로도 어두운 배경과 차가운 바닥 얼음 위에서도 따뜻해 보이게 해 준다.


책의 내용도 이렇게 따뜻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부가 되어 가족이 되고 알을 낳고 믿음으로 기다리고 도와가며 공동의 육아를 하는 이야기가 잔잔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 이 책의 편집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루리라는 편집자는 '북극의 눈물, 더 코브:슬픈 돌고래의 진실, 펭귄-위대한 모험'이라는 다큐멘터리 3편을 아주 감명 깊게 보았단다. 그래서 북극곰이라는 출판사를 만들고 북극곰에 대한 그림책을 만들었다고 적혀있다. 펭귄과 돌고래에 관한 이야기를 쓰지 못한 미안함이 늘 있었는데 2015년 볼로냐 국제 아동도서 전에서 바로 ‘아빠의 발 위에서’라는 일본 그림책을 발견한 것이다. 당장 이 책의 판권을 사서 우리나라에 번역해서 내놓았다.


책은 '펭귄-위대한 모험'이라는 다큐멘터리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와서 따스한 가족의 이야기로 풀었다고 편집자는 이야기한다. 그림도 황제펭귄 실사에 가깝게 그려져 있다고 안내한다. 다큐멘터리에 이야기를 작가의 해석으로 그림책으로 만들었다. 북극의 눈물 같은 것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들어간 해설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처럼 ‘아빠의 발 위에서’라는 새끼 펭귄의 탄생과 성장에 이바지하는 부모 펭귄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남의 일 같지 않은 울림을 준다. 그들도 우리와 이 넓은 지구에서 함께 사는 같은 이야기를 가진 생명체라는 것이 마음에 담긴다. 그리고 또 하나 부모의 애정으로 쑥쑥 자라는 사랑스러운 새끼 펭귄의 성장을 보며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을 배우게 된다. 두 가지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따뜻한 그림책이라 내 마음도 노곤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람은 보이지 않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