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

시간상자(데이비드 위즈너:시공주니어:2018)

by 릴리안

”글이 없는 그림책에서 유일하게 있는 글은 바로 제목이다.”라고 그림책 만들기수업 연수에서 한 강사님이 말씀하셨다. 그만큼 글이 없는 그림책에서는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일 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목을 보고 책을 고르게 되고 고른 책을 제목과 연결 지어 읽게 된다. 그러니, 글을 읽는 사람이 그림만 있는 책을 읽는 다면 제목에 더욱 영향을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시간 상자’는 2007년 칼데콧상을 수상하였다. 이름을 들을 만큼 알만한 상을 받았다면 당연하게도 그 책을 잘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데 제목만 글일 뿐 그림만 가득한 그림책은 숨은 그림 찾기 같기도 하고, 풀기 어려운 퀴즈를 만난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데이비드 위즈너의 '구름 공항'이나 '시간 상자' 같은 유명한 글이 없는 그림책은 나에게 넘고 싶은 산 같았다. ‘나는 글이 없는 그림책도 이해할 만큼 그림과 책을 잘 읽는 사람이야’라고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지 그런 그림책을 보면 일단 읽었다. 그림을.


제목만 글인 그림책을 읽으면 한 장씩 유심히 보기는 했으나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을 그림책 연수를 듣고 다시 '시간상자'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그나마 글이 있는 그림책은 글이라도 읽으며 서사나 작가의 의도를 이해했다지만 그림만 있는 그림책은 ‘그림이 아름답다’, ‘소년의 표정’, ‘바다의 풍경’같이 책의 장면 장면만을 열심히 읽어내려 노력했었다. 다음 장면과 연결 지어 깊이 있게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 그림책 '시간상자'를 만났을 때, 한 장 한 장을 미술작품 보듯 읽었으며 그 조차도 설렁설렁 이었다. 그냥 '나는 유명하고 어려운 글 없는 그림책을 읽었어.'라는 마음을 획득하고 싶었을 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제목을 보고 그림을 한 장씩 보며 '현재에서 과거로 다시 현재로 흘러가는 이야기'라고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아름다운 바다그림의 풍경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책의 뒤쪽에 아주 길게 줄거리와 설명이 적혀있는데도 읽어보지 않았다. 파도가 너울대는 바다, 손으로 만져질 것 같은 모래, 소년의 반짝이는 두 눈과 머리카락, 소년의 유연한 몸놀림을 감상하는 것으로 충분히 했다고 생각하고 책을 덮었었다.


바닷가에서 소년이 파란 삽으로 모래를 파고 있다. 깜짝 놀란 가재의 뒤로 커다란 눈이 보인다. 앞 장에서 모래를 파고 있던 소년이다. 소년은 돋보기로 가재를 보고 있다. 소년의 옆에는 현미경, 망원경, 낙지가 들어있는 상자, 해초 같은 것이 삐져나온 양동이, 뜰채 같은 것들이 가득하다. 소년의 뒤로 비치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두 어른이 보인다. 다시 소년은 바다로 가고 이번에는 게를 발견한다. 게를 보다가 미쳐 파도를 피하지 못한 소년은 파도에 휩쓸린다. 그리고 떠내려온 ‘수중카메라’를 줍는다. 소년은 바로 열어보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안전센터에 가서 물어보지만, 그곳에서도 그 주인을 알 길은 없다. 소년은 카메라를 열어보고 필름을 발견한다. 소년은 즉시 ‘바닷가 즉석사진관’으로 뛰어간다. 호기심에 현상해 온 사진은 놀라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현실에서 소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소년의 놀란 눈동자에서 수중카메라 현상 사진으로 들어가는 장면 전환이 일어난다. 현실 소년의 그림은 얇은 사각 프레임에 담긴다. 그리고 수중카메라 사진 속의 장면들은 두꺼운 검은 프레임 속에 담긴다. 그러나 현실과 카메라 속으로 연결되는 장면에는 프레임이 없다.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가려면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프레임을 거두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까맣고 두꺼운 프레임 속 사진의 마지막 장면은 한 소녀가 웃으며 사진을 들고 있다. 사진 속에는 또 사진이, 또 사진이 들어있다. 아무리 손을 멀리해도 눈을 아무리 가늘게 떠도 사진 속의 사진 속의 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호기심 많은 소년은 돋보기와 현미경을 사용하여 사진 속의 사진을 본다. 현미경으로 사진을 보는 모습은 까만 종이에 동그랗게 표시되어 있다. 동그라미 아래에 10x, 25x, 40x, 55x, 70x가 표시되며, 바다에서 찍은 점점 더 옛날 사진이다. 그 안에는 모두 소년, 소녀들이 담겨있다.


다시 현실의 프레임으로 돌아왔다. 바다와 하늘의 색이 변했다. 부모님이 짐을 싸서 소년에게 뭐라고 말한다. 소년은 ‘수중카메라’에 사진을 남긴다. 그리고 사진과 카메라는 바다로 돌아간다. 다시 시작된 ‘수중카메라’의 여행은 현실이었다가 어느새 상상의 세계로 넘어간다. 마지막 장은 한 아이가 밀려온 ‘수중카메라’를 막 잡으려는 순간 끝난다. 절대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바닷속 상상의 세계와 아이가 밀려온 ‘수중카메라’를 잡는 장면에는 동일하게 프레임이 없다. 마치 두 가지 이야기는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피터 팬의 존재를 믿든 안 믿듯 그건 당신의 자유인 것처럼 작가는 자신이 만든 세계를 독자가 믿든 안 믿는 자유라고 말하는 듯하다.


시간 상자에 나오는 어른들은 소년이 보고 있는 사진 속 세상에 관심이 없다. 부모님은 소년의 안전 정도만 신경 쓸 뿐이며, 안전요원은 분실신고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수중카메라에 관심이 없고, 즉석사진관의 직원은 그저 인화해줄 뿐이다. 조금만 호기심을 가지고 멈추었더라면 프레임을 벗어나 멋진 세상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어린 소년이 들어간 ‘바닷가 즉석사진관’ 안에 전화 통화하며 건성으로 소년을 맞이하는 가게 주인의 모습은 처음 ‘시간 상자’를 만난 '나' 같았다.


'시간상자'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니, 시간 상자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오래전에 이 책을 만났을 때 ‘시간 상자’가 카메라라고 생각했었고, 타임머신 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내가 그때 그림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던 것은 제목이 잘못되었다고 핑계를 대고 싶어 진 것이다. 그림을 다시 읽고 표지를 유심히 보고 있자니 그림책의 원제가 눈에 들어온다. ‘Flotsam(해변에서 내려온 표류물)’ 그리고 그 아래 빨간 물고기의 눈에 비친 카메라와 빛, 그리고 작은 물고기들.


내가 시간 상자에서 이전에 발견하지 못한 것을 이제야 볼 수 있었던 이유가 무얼까? 자세히 보려 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려 하지 않은 이유는 볼 줄 아는 눈이 없어서와, 보려고 하지 않은 마음 두 가지였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이 없어서 보지 못했고, 모르는 걸 알아보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다른 바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직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천천히 오래 보아야 하는 것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흘려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고 덮으며 ‘시간 상자’라는 번역 제목이 내가 책을 잘 못 읽은 이유라고 슬쩍 떠넘기려 했었다. 그리고 표지를 들여다 보며 '왜 번역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고민해 보았다. Flotsam을 우리 나라말로 다르게 번역했다면 무엇이 있었을까? 그러다 문득 나는 '시간 상자'를 타임머신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고 읽었었는데, 번역하여 출판한 입장에서 ''시간상자'라는 것은 오랜 시간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들이 담긴 상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 편견에 갇혀 더 배우려 하지 않고 찬찬히 보려 하지 않는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것을 담은 상자를 펼쳤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한다. 나에게 보이지 않아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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