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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Apr 03. 2021

내 이름은 파리지옥

이지유

원래의 이름을 찾아냈죠. 알아요. 그 이름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 분명 그녀를 사랑했을 사람들, 하지만 억지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라면 몰라도요. 그래도 내게는 동굴에 찍힌 손자국을 찾는 것만 같았어요. 그건 신호였어요, 전언이었어요. 내가 여기 있었어요. 내가 존재했어요. 나는 실재했어요.

그녀의 이름이 무엇이었느냐고요? 물론 알고 싶으시겠죠.

크리스털이었어요. 그리고 나는 지금도 그녀를 그렇게 기억해요. 그녀를 크리스털로 기억해요. p.152 증언들


밖에는 나갈 수 없으니 집에 있으면 어느새  텔레비전을 자꾸 켜서 볼 것도 없는데 채널을 돌리게 된다. 그러다가 ‘포커스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잠시 본다. 포크송을 부르는 사람들이 경연을 벌이는 tvN 프로그램이라고 알고 있다. 예전에 슈퍼스타 K에서 귀여운 얼굴로 노래를 잘해서 한때 인기가 있었던 유승우라는 가수가 어떤 여성 가수와 팀을 이루어 다른 팀과 경연을 한다. 그동안 경연대회들을 봤을 때 두 팀은 아마도 이렇게 결성되어 노래를 부르고 나면 다음 경연에서는 팀을 이루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성스레 팀명을 정해서 가지고 왔다. 유승우라는 가수와 여성 가수의 팀명은 ‘세모 네모’였다. 상대편의 팀명은 ‘21세기 불타는….‘같은 거였는데 너무 길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팀명을 보면서 어딜 가나 모둠을 만들면 팀명을 정하라고 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날 하루 또는 그 활동이 끝나고 나면 사라질 모둠명을 과연 꼭 정해야 하는가? 그냥 1팀, 2팀 같은 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필수 절차인 것처럼 등장하는 프로젝트팀에서 저렇게까지 이름을 정할 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팀명을 정하지 않고 유승우, 000팀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모둠명을 정하든 정하지 않든 노래와 편곡의 방향이 그 팀의 색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텐데 같은 삐죽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렇다 나는 이런저런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모둠명을 만들고 소개하는 일이 많이 부담스럽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노래를 조금 듣다가 또 채널을 돌린다. 이번에는 JTBC에서 하는 ’서울에는 우리집이 없다 ‘라는 프로그램을 본다. 오랫동안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일하시는 분이 사는 집이다. 이 분은 산 자락에 무려 4채의 집을 짓고 살고 계셨다. 각각의 집에는 이름을 정해주었다. 이수근이 왜 집들에 이름을 정해주었냐고 물어보았더니 감독님은 자신은 만나는 모든 것에 이름을 정해준단다.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야생의 동물들을 만나면 그들의 이름을 정해주는 식이다.  다시 만날 일 없는 어떤 것에도 이름을 부여하는 감독님의 마음이 조금 궁금해졌다.


불리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가지고 살아가는 이름에 대해, 그리고 내가 부르는 이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증언들’에 등장하는 이름을 잃고 누군가의 소유로 불리는 시녀. 그 이름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마음속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는 소녀를 떠올린다.


’내 이름은 파리지옥’이라는 그림책은 이지유 작가가 쓰고 김이랑 작가가 그림을 그렸다. 책은 열대우림에 사는 파리지옥과 치즈 잎이라고 불리는 몬스테라가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열대우림의 기후, 식충식물의 종류, 열대우림에 사는 식물과 그 식물에 다가오는 곤충과 새들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식물의 한 살이를 보여준다. 서문에 이 책을 쓰게 된 시작이 나온다. 이지유 작가가 식물원에서 파리지옥을 보고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파리지옥 풀 잎들 사이로 보이는 어린잎을 보며 ’그, 그렇구나, 내가 네 이야기를 써줄게.’라고 말하고 집으로 왔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너무 당황해서 파리지옥 풀에게 이름을 묻지 못했단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 파리지옥‘으로 두기로 했다고 안내하고 있다.


참, 내 동생도 예쁘지만

내가 가장 아름답다는 걸 잊지 말아 줘.

내 이름은 파리지옥이야.

호호호호~. p.78 내 이름은 파리지옥 마지막 페이지


  위대한 한 살이를 끝내고 다음에 올 동생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아름다운 식물의 이름은 ’ 파리지옥‘이다. 나는 이제 크리스털을 기억하고, 세모 네모를 기억하고, 파리지옥이라는 이름들을 기억한다. 그와 함께 그들의 마음과 삶을 기억한다. 태어나면 우리에게 이름이 주어지듯이 모둠이 만들어지면 이름이 만들어지는 것 또한 당연한 거였다. 그 이름들에는 무언가를 향한 기억이 담겨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모둠명을 만들고 부른다는 것, 그리고 내가 우리가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이 무척 아름다운 일임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영원히 다시 만나지 못하더라도, 단 한 번의 부름으로 끝나는 이름이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명’으로 기억되는 일은 일찍이 김춘수 시인이 ’ 꽃’이라는 시로도 말했듯이 ’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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