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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Apr 21. 2021

첼로, 노래하는 나무

아세 히데코

다 읽고 책을 꼭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책을 읽었다. 마치 책이 온몸으로 연주를 하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첼로의 선율이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듯 책의 글자들이 스르륵 다가와서 내 마음을 훑고 지나간다. '첼로, 노래하는 나무'책 자체가 나무이고, 지저귐이고 음악이다. 마치 노래를 하듯 들려주는 글들에서 음악을 듣는다. 숲의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그림에서 새소리, 숲의 향기 소년의 마음이 전해진다. 소년이 처음 첼로를 켤 때 소년의 주위에는 소년이 할아버지, 아버지에게서 받아 마음에 간직했던 숲의 사계절이 아름답게 수 놓인다.


‘첼로, 노래하는 나무’를 보았을 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전에 읽었던 작가의 작품 '나의 를리외르'와 유사한 표지의 느낌이라 비슷한 이야기일 거라고 지레짐작했기 때문이다. 무심히 책을 고쳐주는 를리외르 아저씨의 장인정신과  파리의 풍경, 소녀의 발랄함과 꿈이 어우러진 '나의 를리외르 아저씨'같은 이야기가 이번에는 첼로를 매개체로 나올 거라 생각하며 책을 들었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 쉽게 판단하는 어리석은 독자에게 작가는 다른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첼로, 노래하는 나무'는 나무를 기르던 할아버지와 첼로와 바이올린을 제작하던 아버지에게서 자란 아이의 이야기이다. 이 아이는 아버지를 통해 유명한 첼리스트를 만나게 되고 첼로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아신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위해 첼로를 제작해서 선물로 준다. 그 아이는 커서 첼로를 어린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다. 줄거리만 보자면 우여곡절도 없고, 성공신화도 없는 조금 따스한 3대의 이야기이다.  드라마보다는 휴먼 다큐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이 더 좋다. 첼로를 좋아하게 돼서 첼로를 시작한 소년의 이야기 마지막 장이 그가 무대에 서서 수백 명의 관객에게 박수를 받는 장면이었다면 조금 뻔한 성공신화에 쉽게 잊히는 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불쑥 클래식의 C도 모르던 국민학교 시절 동네 5촌 아주머니이자 나의 멘토였던 6살 많은 언니가 들려줬던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가 떠올랐다. 재미없다고 했더니 언니가 “눈을 감고 상상해봐 음악 안에 무엇이 있는지.”라고 말했다. 언니는 이 그림책의 작가처럼 어린 나에게 음악은 귀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사용해서 듣는 것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걸까? 언니에게 잘 보이고 싶어 장롱에 발을 올리고 언니 옆에 누워 눈을 감고 열심히 상상의 나래를 펼치려 애를 쓰다 보니, 눈을 감아 까매진 사이로 언뜻 코끼리가 보이는 듯도 했다. 그 날 그 방의 냄새, 햇볕의 깊이, 바닥의 미지근함 까지 여과 없이 떠올랐다. 다시 떠오른 그날의 촉각은 앞으로도 계속 마음에 남아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소년은 자라서 자신이 할아버지, 아버지, 유명한 첼리스트에게 받은 사랑하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아이의 몸에 붙여진 첼로와 선생님이 된 소년의 이야기와 진심 어린 마음을 통해서. 유명한 첼리스트이던, 첼로 선생님이든, 오촌 조카에게 첼로를 가르치는 사람이든 그런 건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 안에 담긴 나의 이야기이고, 그 좋아함을 다른 사람에게 잘 전하는 일이다. 작가 아세 히데코는 오랜 시간 첼로를 배웠다고 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내면에 있는 '첼로'의 아름다움을 글과 그림을 통해 전달하려고 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야기를 잘 전해받은 독자로 이 책을 만난 사람은 첼로의 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선율을 느끼며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아기 산비둘기가 울고 있구나. 아직 작고 가냘픈 소리지만, 저렇게 지저귀는 연습을 하는 거란다. 새 옹알이라고 하지.”


나에게 새 옹알이를 가르쳐 준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아버지가 새 첼로 케이스에서 꺼내자 파블로 씨가 켜 보았다.

낮은 소리에서 높은 소리까지, 처음에는 천천히 나중에는 빠르게....

단순한 음이었는데, 점점 하나의 곡처럼 들리는 게 신기했다.

윽고 파블로 씨가 일어서서 아버지를 껴안으며 말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군. 숲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소리야.”


나뭇가지와 잎 사이로 작은 하늘이 흘러넘친다.

시내가 하늘 조각을 반짝반짝 비추며 졸졸 노래한다.

가끔 나지막한, 음정이 어긋난 산비둘기의 옹알이도 들린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가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았다.


높은 활을 잘게 튕기자,

작은 새들의 날갯짓이 보이는 것 같았다.

첼로도 파블로씨도 연주를 하면서 점점 자유로워지는 듯했다.


그루터기의 나무는 베어져 어디로 갔을까?

지금은 여기에 없는 그 나무는

이곳에서 태어나 줄곧

새소리, 벌레소리, 빗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손가락에, 손에, 팔꿈치에, 어깨에, 무릎에, 라 소리가 전해졌다.

다음은 레 소리, 솔 소리, 그리고 도레미파...

아버지의 품 안에서

나는 내가 첼로가 된 것 같았다.


첼로를 켜면 두 사람은 내 연주 속에 있다.

숲 속에서 들은 산비둘기의 옹알이나 강물이 흐르는 소리,

눈 속의 그루터기와 함께.



버스 안에서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다. 늘 듣던 같은 노래인데 책을 읽고 들으니 완전히 다르게 들린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 연주를 하는 사람, 노래를 만든 사람의 마음들이 내 몸을 뿌리 채 흔든다. 들으며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은가. 아름다움을 잘 전하는 준비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그리고 결심한다. 언젠가 온몸으로 연주하는’ 첼로‘를 꼭 배우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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