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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May 13. 2021

발가락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지금까지 잠자는 일에 문제를 느껴본 적이 없다. 느슨하지만 나만의 계획을 세우길 좋아하는 나는 11시에는 잠을 자야 한다라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규칙을 만들어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 지켰었다. 거의 11시 누우면 바로 잠들고  6~7시쯤 기상하는 생활을 했었다. 늘 8시간 이상 충분히 밤에 자니 낮잠은 거의 자지 않는 편이다. 11시에 자려고 누워서 못 자고 잠을 깬 경우는 읽다 남은 만화책의 뒷내용이 궁금할 때나, 시험기간 정도였다.  그래서 남편이 말하는 불면증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걱정이 많아서 잠이 안 온다거나,  밤에 일찍 자는 일이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출산 전까지 나의 생활패턴은 일단 퇴근을 하고 저녁잠을 조금 잔 후 1시쯤까지 무언가를 하다가 자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텔레비전을 무척 좋아하여 1시쯤까지 하는 예능프로를 보기 위해 저녁잠을 선택했었다.(그래서 최종 나의 수면시간은 늘 8시간 정도로 맞춰져 있었다.) 아이를 낳고는 아이 재우다 같이 10시에 잠들어서 6시에 일어난다. 나이 40이 넘어서도 아이처럼 하루 8시간을 자는 나를 보며 남편은 놀라워한다. 그리고 혼자 외롭게 밤 시간을 지내는 게 무서운지 텔레비전 같이 보자고 가끔 나를 깨웠다. 그러면 나는 당연히 화를 내고 다시 자거나 가끔 투덜거리면서 옆에서 같이 텔레비전을 봐주는 친구를 해 주었다. 지금은 그 외로운 밤 시간을 첫째 아이가 함께 해준다. 나는 두 사람이 이해가 안 되지만 둘은 그 시간이 되면 세상 둘도 없는 짝꿍이 된다.


아이도 아빠처럼 잠잘 시간이 되면 나는 상상도 못 한 온갖 걱정으로 쉬이 잠들지 못한다. 잘 잠들지 못하는 아이에게 ‘잠자고 싶은 토끼’를 읽어주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 재우기가 얼마나 힘들면 이런 책까지 나왔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구매했었는데 최면치료처럼 아이를 재우는 책이었다. 아이는 어떻게든 자고 싶은 마음에 그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데, 아마도 책이 진짜 잠이 오게 했다기보다는 긴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정성이 갸륵해서 잠들어 준 것 같다. 지금 그 책은 그냥 우리 집 한편에 있긴 한데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잠들기를 무서워하는 아이나, 잠들기 전 걱정을 많이 하는 아이들을 위한 책들이 꽤 많은데 그 책들 중에 ‘발가락’이라는 책이 지금껏 읽은 책 중 가장 마음에 든다. 발가락은 하루 종일 고생한 발가락에게 인사하면서 시작된다. 지쳐있을 발가락에게 ‘잘 자’라고 인사한다. 그런데 이 발가락이 자기 싫다며 더 많이 여행을 하자고 말한다. 침대에 누워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한다. 발가락은 계단도 되었다가, 아치도 되고, 텔레비전도 되고, 글자도 된다. 내가 발가락 책을 읽어줄 때 두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한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니 웬일로 자기들끼리 알아서 책을 한편에 놓고 쉬를 하고, 불 끄기 당번인 아이가 불을 끄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잠들었다. 두 아이는 그날 밤 침대에서 발가락과 할 수 있는 여행의 세계를 다녀왔겠지?


남편과 아이는 주말 저녁 거실에 요를 깔고 늦은 시간까지 텔레비전을 켜놓고 잔다. 텔레비전을 켜놓고 자는 건 남편의 오랜 꿈이었는데 아이도 그걸 무척 좋아해서 금요일 저녁이면 아빠를 기다려 함께 이불장에서 요를 꺼내고 베개를 가져온다. 금, 토 이틀 동안 아이는 아빠와 여행을 떠나나 보다.(둘이서 텔레비전 켜놓고 자고 있으면 그 소리가 시끄러워 텔레비전을 끄는 건 결국 내 몫이다.) 발가락을 읽고 이 글을 쓰며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거실에서 그것도  텔레비전 켜놓고는 절대로 잘 수가 없다. 닫힌 문, 적막, 어둠은 나의 잠에 필수 요소이다.) 두 사람의 행동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잠들기 싫어하는 두 사람이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켜놓고 자는 건 행복한 꿈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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