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잠자는 일에 문제를 느껴본 적이 없다. 느슨하지만 나만의 계획을 세우길 좋아하는 나는 11시에는 잠을 자야 한다라는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규칙을 만들어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 지켰었다. 거의 11시 누우면 바로 잠들고 6~7시쯤 기상하는 생활을 했었다. 늘 8시간 이상 충분히 밤에 자니 낮잠은 거의 자지 않는 편이다. 11시에 자려고 누워서 못 자고 잠을 깬 경우는 읽다 남은 만화책의 뒷내용이 궁금할 때나, 시험기간 정도였다. 그래서 남편이 말하는 불면증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걱정이 많아서 잠이 안 온다거나, 밤에 일찍 자는 일이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출산 전까지 나의 생활패턴은 일단 퇴근을 하고 저녁잠을 조금 잔 후 1시쯤까지 무언가를 하다가 자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텔레비전을 무척 좋아하여 1시쯤까지 하는 예능프로를 보기 위해 저녁잠을 선택했었다.(그래서 최종 나의 수면시간은 늘 8시간 정도로 맞춰져 있었다.) 아이를 낳고는 아이 재우다 같이 10시에 잠들어서 6시에 일어난다. 나이 40이 넘어서도 아이처럼 하루 8시간을 자는 나를 보며 남편은 놀라워한다. 그리고 혼자 외롭게 밤 시간을 지내는 게 무서운지 텔레비전 같이 보자고 가끔 나를 깨웠다. 그러면 나는 당연히 화를 내고 다시 자거나 가끔 투덜거리면서 옆에서 같이 텔레비전을 봐주는 친구를 해 주었다. 지금은 그 외로운 밤 시간을 첫째 아이가 함께 해준다. 나는 두 사람이 이해가 안 되지만 둘은 그 시간이 되면 세상 둘도 없는 짝꿍이 된다.
아이도 아빠처럼 잠잘 시간이 되면 나는 상상도 못 한 온갖 걱정으로 쉬이 잠들지 못한다. 잘 잠들지 못하는 아이에게 ‘잠자고 싶은 토끼’를 읽어주었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 재우기가 얼마나 힘들면 이런 책까지 나왔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나도 구매했었는데 최면치료처럼 아이를 재우는 책이었다. 아이는 어떻게든 자고 싶은 마음에 그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데, 아마도 책이 진짜 잠이 오게 했다기보다는 긴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정성이 갸륵해서 잠들어 준 것 같다. 지금 그 책은 그냥 우리 집 한편에 있긴 한데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외에도 잠들기를 무서워하는 아이나, 잠들기 전 걱정을 많이 하는 아이들을 위한 책들이 꽤 많은데 그 책들 중에 ‘발가락’이라는 책이 지금껏 읽은 책 중 가장 마음에 든다. 발가락은 하루 종일 고생한 발가락에게 인사하면서 시작된다. 지쳐있을 발가락에게 ‘잘 자’라고 인사한다. 그런데 이 발가락이 자기 싫다며 더 많이 여행을 하자고 말한다. 침대에 누워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한다. 발가락은 계단도 되었다가, 아치도 되고, 텔레비전도 되고, 글자도 된다. 내가 발가락 책을 읽어줄 때 두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한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니 웬일로 자기들끼리 알아서 책을 한편에 놓고 쉬를 하고, 불 끄기 당번인 아이가 불을 끄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잠들었다. 두 아이는 그날 밤 침대에서 발가락과 할 수 있는 여행의 세계를 다녀왔겠지?
남편과 아이는 주말 저녁 거실에 요를 깔고 늦은 시간까지 텔레비전을 켜놓고 잔다. 텔레비전을 켜놓고 자는 건 남편의 오랜 꿈이었는데 아이도 그걸 무척 좋아해서 금요일 저녁이면 아빠를 기다려 함께 이불장에서 요를 꺼내고 베개를 가져온다. 금, 토 이틀 동안 아이는 아빠와 여행을 떠나나 보다.(둘이서 텔레비전 켜놓고 자고 있으면 그 소리가 시끄러워 텔레비전을 끄는 건 결국 내 몫이다.) 발가락을 읽고 이 글을 쓰며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거실에서 그것도 텔레비전 켜놓고는 절대로 잘 수가 없다. 닫힌 문, 적막, 어둠은 나의 잠에 필수 요소이다.) 두 사람의 행동읗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잠들기 싫어하는 두 사람이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켜놓고 자는 건 행복한 꿈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