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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May 11. 2021

최영희 소설; 김윤지그림 <소설첫 만남 19>

저 칡 밭에 가기 전까진 세상에는 칡을 캔 사람과 못 캔 사람만 있는 줄 알았다. 이제 시훈이는 캘 수 있는 데까지 캐다가 떠난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았다. 끝내 칡을 두고 돌아선 그 사람들은 어찌 지내고들 있을까. p. 96


2020년을 돌아보며 읽었던 책 중에 최고의 한 문장을 뽑으라면 나는 이 문장을 뽑을 것 같다. 칡이라는 짧은 소설은 나에게 그만큼 강렬했다. 창비 소설의 첫 만남 19번째 책 최영희 작가의 ‘칡’이다. 이제껏 나온 시리즈는 주로 하얀색 표지인데 칡은 짙은 형광 연두색의 표지다. ‘칡’이라는 글자도 강하다. 칡이라는 검고 센 글자와 칡을 향해 눈을 질끈 감고도 모자라 양팔로 방어 자세를 취한 남자 사이에 ‘최영희 소설/ 김윤지 그림’이라고 하얀 글씨로 적혀있다. 남자의 바지는 꽃무늬 몸빼 바지다.


책의 표지가 책의 모든 내용을 말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룻밤 사이에 온 마을을 뒤덮은 강력하고 무서운 칡의 존재는 공포영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무섭다. 그런데도 그 상황에 보이는 소년의 몸빼바지처럼 키득키득할 수 있는 유머가 살아 있다. 유머와 공포의 사이에는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칡을 향해서 뻗지 못하고 최선을 다해 방어하고 있는 소년의 고군분투가 있다.


한밤중에 갑자기 들려온 대피령에 미처 동생의 애착 이불을 가져오지 못하고 탈출한 시훈이의 가족. 그때까지만 해도 동네의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므로 계속 우는 동생의 이불을 가지러 동네로 향한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탈출한 사이 하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는 동네 입구에는 커다란 철벽이 생기고 군인들이 총을 들고 앞을 지키고 있다. 시훈이는 두려움으로 다시 대피 장소로 돌아가는 대신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위해 강을 건너서 집에 이불을 가지러 가기로 한다. 강을 건너 도착한 마을은 하나의 거대한 칡 밭이 되어 있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칡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있는 것들을 해치우고 조정하며 새로운 생명을 찾아 꾸불꾸불 기어 다닌다. 사람들이 다 떠나고 미처 도망가지 못한 동네에서 키우던 개와 돼지들이 곳곳에서 칡에 희생되었다. 그리고 동네에 미친(?) 이모 한 명이 나타난다. 이모의 손에는 칼이 들려 있고 칼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진다. 이모가 나를 헤칠지도 모르니 도망은 가야 하고 이불은 챙겨야 하고 그때 마을 회관에서 방송이 나온다. 이장 할아버지가 마을 회관에 계신 것이다. 아직 탈출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마을 회관으로 오라고 방송을 한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마을 회관으로 향한 시훈. 그러나 이장 할아버지는 살아 있되 산 사람이 아니다. 할아버지는 칡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 칡이 마을을 더욱 번창하게 해 줄 것이라 굳게 믿으며.


시훈이가 죽기 직전 미친(?) 이모가 나타난다. 이모는 시훈이에게 수레를 맡기며 마을의 중앙으로 가라고 한다. 그곳에는 이 거대한 칡의 시작점이 있다. 시훈이는 칡의 뿌리를 파내기 시작한다. 그때 철문 위의 군인들이 시훈이에게 말한다. 칡을 팔 생각을 하지 말고 사다리를 내려 줄 테니 그 마을에서 나오라고 말이다. 시훈이는 혼자 탈출할 수도 있었지만, 칡을 판다. 그러나 칡은 너무 거대하고, 세고, 뿌리가 깊다. 시훈이와 미친(?) 이모의 힘으로만은 불가능하다. 시훈이는 칡이 다시 자랄지도 모르지만, 칡을 완전히 죽이는 것을 포기하고 이모를 살리기 위한 탈출을 한다.


거대하고 두려운 세상의 어떤 것들을 표현한 칡. 그런 것들에 희생당하거나 거대한 것이 말하는 것에 판단력을 상실한 채 따르는 이장님.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고 폭력과 강압으로만 사람들을 대하는 군인들. 이런 것들에 홀로 맞서는 미친(?) 이모의 존재.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돌연변이 칡이라는 소재로 이렇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다니 놀랍다. 그리고 마지막에 칡을 죽이지 못하고 이모를 살리기 위해 탈출을 감행하는 시훈이에게서 나를 본 것 같았다. 우리는 언제나 천재, 영웅, 세상을 바꾼 사람들을 본다. 그러나 나는 미미한 존재이다. 그러니 그냥 소소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시훈이가 바라는 인생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말썽 안 피우고 불의는 적당히 피해 가면서 하루 세끼 밥 꼬박꼬박 챙겨 먹기. 그리고 엄마 아빠 시아랑 같이 살기. 거기에 오늘 새로 한 가지가 추가되었다. 청아 이모랑 같이 탈출하기. 마을 회관 쪽에서 전기톱 모터 소리가 그친 게 맘에 걸렸지만 섣부른 결론은 내리지 않기로 했다. 넘겨짚는 건 아까 축사 앞에서 일만으로 충분하니까. p. 87


우리는 칡을 키우고 마을을 박살 내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를 두려워한다. 칡을 끝내 캐서 마을을 살리는 영웅이 되지 못하여 좌절하고 그런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리고 이기지 못한 사람들에게 쉽게 손가락질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잊어버린다. 시훈이도 그러했다. 그러나 칡과 싸움을 통해 시훈이는 성장한다. 작가는 ‘단 한 번의 생을 부여받고, 애쓰다 사라진 이들의 자취를 되새기고 싶다.’라고 썼다. 미친 이모를 리어카에 태우고 동생의 애착 이불을 가지고 마을의 탈출 직전 시훈이의 모습에는 뭉클하게 끓어오르는 어떤 지점이 있었다.  우리 삶은 다 그렇지 않나. 칡을 끝내 캐지 못하고 돌아서는 삶. 그러나 시훈이는 이모와 동생에겐 최고의 영웅이다. 그래도 시훈이는 오래도록 끝내 캐지 못한 칡에 대해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살아가면서 오래오래 끓어오르는 뭉클함이 마음에 남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할 것 같다.


시훈이는 엄마 아빠를 생각했다. 엄마 아빠는 패배자가 아니었다. 싸우고 또 싸우다가 지쳤을 뿐. p.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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