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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May 17. 2021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성석제 소설; 교은 그림;소설의 첫 만남 02

작가 성석제가 들려주는 선택에 관한 이야기.(책의 뒤표지)


0과 1이 있다. 0은 백선규라는 유명한 화가의 이야기이다. 1은 그런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보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0과 1은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서로에게 별다른 접점은 없었다. 일생에 딱 두 번 서로를 의식하며 지나쳤다. 학교에서 열린 사생대회날과 사생대회 우수작 전시회 마지막 날이 바로 그날이다.


처음부터 다른 길에서 출발해서 가다가 우연히 두어 시간 동안 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그림을 그리게 되겠지만 앞으로 영원히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이야. p. 51


사생대회 날 둘은 같은 히말라야시다를 보며 그림을 그렸다. 백선규에게서 나는 가난의 냄새를 불편해하며 여자아이는 그림을 그렸다. 백선규는 상을 받고 싶은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날은 여자아이가 백선규를 의식한 날이다. 우수작 전시회 마지막 날 백선규는 자신이 그리지 않은, 자신이 상을 타게 된 그림을 본다. 그리고 그 그림이 그날 자기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그린 그림인 걸 알게 된다.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돌아 나오던 그날 백선규는 마주오는 그 여자아이를 의식한다. 그러나 여자아이는 백선규가 그 날 가난의 냄새를 풍기던 아이인지도 모른 채 지나친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백선규와 여자는 고백한다. 두 날의 실수와 선택에 대해서. 실수와 선택은 '그날의 분위기' 때문에 생겨난 것처럼 0과 1은 말한다. 어쩌다 보니 그런 실수와 선택을 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 날 이후 0은 그 선택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간다. 영원히 마음속에 담아 두고. 1은 그날의 선택에 대해 미련이 하나도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둘은 그날 그리고 그 이후의 선택들로 한 명은 유명한 화가가 되었고, 한 명은 부유한 집에서 아이들을 잘 키워낸 엄마가 되었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나는 상을 못 받았지만 내가 타고난 행운, 삶 자체가 상이다 싶어. p 62


그러나 글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한 번의 선택, 실수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만들어낸 선택과 실수 그 이후의 삶은 이전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부유한 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1과 가난하여 화가의 꿈을 접고 가족을 돌보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0은 서로 다른 부모의 기대를 받고 자랐다. 1의 아버지는 미술과외 선생님이 그림에 재능이 뛰어나다고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겠다는 말에 "딸내미가 이쁘게 커서 시집만 잘 가면 됐지, 뭐 그림 그려서 돈 벌 것도 아니고 결혼해서 식구들 먹여 살릴 것도 아닌데 힘들게 공부할 거 뭐 있나."라고 말한다.


반면 0은  그림보다는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버지의 친구의 꿈이 투영되어 차차로 그림으로 길을 가게 된다. 축구경기를 보고 싶었던 아이는 사생대회를 나가고 미술반에 들어간다.  끊임없이 아버지를 닮아서 그림을 잘 그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위해 가난한 살림에도 크레파스를 사 온다. 1이 사는 대충의 삶과 0이 사는 끝 간 데 없는 집요함의 시작 지점은 사생대회가 아니라 바로 이곳이라고 생각한다. 1은 잘못 쓴 번호로 1등을 하지 못한 것에 '나는 그런 상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도 행복해. 그런 스트레스받는 것 자체가 싫어. 왜 내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P.63이라고 말하며 포기한다. 반면 0은 '그 뒤부터 나는 늘 나를 의심하면서 살았어. 누군가 나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누군가 나와 똑같은 대상을 두고 훨씬 더 뛰어난 작품을 그렸고, 앞으로도 더 뛰어난 작품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을 벗어나 본 적이 없어.' P.76라는 생각으로 평생을 산다.


수많은 '선택'과 '만약'은 내 안의 에너지이자 나의 밖으로부터 이어진 에너지의 결과이다. 0과 1은 모두 화가가 될 수도 있었고, 화가가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 명은 화가, 한 명은 화가가 되지 못했다. 그들의 삶이 달라진 것이 나는 비단 그날의 선택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타고난 재능도 인생에 꼭 필요한 어떤 것이지만, 어떤 곳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0이 좋은 화가가 된 것은 무척 축하할 일이지만 그것이 정말 0이 원한 행복한 삶인지에는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아버지와 선생님의 기대가 없었다면 0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진다.


반면, 1이 좋은 문학과 미술작품을 잘 이해하는 정도에서 그치고, 자식을 잘 키운 것으로 만족하며 사는 삶으로 마무리가 된다. 나답답하면서 속상했다. 하다못해 책에서도 0은 백선규라는 이름이 있지만 1은 이름이 없다. 잘살든 못살든 여자는 결혼해서 아이나 잘 키우면 된다는 이전 세대의 생각이 그대로 주입되지 않았다면 1은 좀 더 자신으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누구의 딸, 누구의 부인,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어떤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지 않았을까?


누구에게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 기회는 대체로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다. 그러니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벗, 이웃이 금쪽같이 소중하다! 작가의 말


이름 모를 여자아이는 백선규에게 어떤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이름 모를 여자아이에게는 '대체로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는'그 기회가 완전히 박탈당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된다. 박탈했다고, 박탈당했다고 느끼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는 사회 분위기에서 그렇게 소외되어 갔다. 여자아이가 끊임없이 '나는 괜찮아, 이 정도로 만족해'라고 할 때마다 자연스러워서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부족한 여성에게 주어지는 '기회'와 '선택'에  관해  하나씩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다짐하게 된다.


'무엇에도 자연스러워지지 말자. 내 이름 세 글자가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하는 삶을 살아가자.'


점점 멀어지네.

사라졌네.

나는 여기에 있고.

나도 곧 가야 하지만.

-책의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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