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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안 Jul 22. 2021

콤플렉스를 느슨하게 만드는 비기

콤플렉스의 밀도고재현, 김혜정, 방미진, 송미경, 이경혜, 이진, 홍명진

콤플렉스 complex

현실적인 행동이나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의 감정적 관념. 융은 언어 연상 시험을 통하여 특정 단어에 대한 피검자의 반응 시간 지연, 연상 불능, 부자연스러운 연상 내용 따위가 이것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밀도 密度 [밀또] 듣기

1.  명사 빽빽이 들어선 정도.

2.  명사 내용이 얼마나 충실한가의 정도.

네이버 표준국어 대사전


동아리 학생들과 짧게 30일 글쓰기 활동을 했었다. 30일 동안 400자 이상의 글을 되도록 매일 쓰도록 하는 활동이었다. 매일 쓸 수 있도록 혹시 생각나는 주제가 없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주제 단어 30개를 올려두었었다. 그중에 한 단어가 '내 이름'이었다. 거의 초반에 등장하는 이 단어를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나씩 글을 올렸다. 학생들의 이름은 내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하나같이 예쁘고 평범한 이름이었는데 그들이 들려주는 이름에 관한 이야기는 그렇지 않았다. 남자 이름 같아서 놀림을 받기도 했고, 같은 이름이 많아서 불만이었다는 학생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느낀 각자의 이름의 매력을 댓글로 달아주곤 했었다.


콤플렉스의 밀도는 7명의 작가가 7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작가가 들려주는 단편의 주제는 '콤플렉스'이다. 송미경의 '젤잘자르 헤어'는 코믹하면서 다소 엽기적이다. 어느 날부터 혓바닥에 털이 자라기 시작한 소녀는 어쩌다가 단골 미용실이 이렇게 특이한 털들을 제거해 주는 미용실임을 알게 된다. 각자 위치는 다르지만 남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이상한 곳에 털이 자라는 사람들이 미용실을 찾는다. 털이 자라는 부위는 내뱉지 못한 그들의 아픔이다. 아주 우연히 알게된다.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잘난 언니도 그 미용실의 단골임을 말이다.


김혜정의 '학교에 갔어'에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교실에서 위치하는 곳은 완전히 다른 두 아이 '서은수'와 '소은수'의 이야기이다. 학교를 가지 않은 학생은 '서은수'이고 '서은수'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얌전하고 공부도 곧잘 하지만 인기는 없는 '서은수'는 얌전하지 않지만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 '소은수'가 말을 걸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말 끝에 늘 나를 비웃는 듯한 웃음을 보였기 때문이다. 가출해서 돌아온 '서은수'는 알게 된다. '그때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됐다. 말을 할 때 한쪽 입꼬리를 올리는 건, 소은수 특유의 버릇이었다.'[p. 52]


앞의 두 이야기와 방미진의 '연꽃 소녀'가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에 위로를 얻는 이야기라면 뒤의 이야기들에게 보여주는 콤플렉스 극복 방법은 조금 다르다. 고재현의 '곰이 춤춘다'의 콤플렉스를 가진 '이찬란'은 콤플렉스를 돌파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사람과 우정을 쌓는다. 그리고 콤플렉스의 시발점인 가족과 정면승부를 벌여 보기도 한다. 그렇게 애써서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딛는다. '하루에 한 번, 한 시간 동안만이라도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서다. 지금은 그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p. 101'


이진의 '백조의 냄새', 홍명진의 '오늘 같은 날', 이경혜의 '저주의 책'은 어느 쪽이냐면 '덮어두거나, 도망간다.'이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나쁘지 않다. '모든 일에 무조건 맞서서 싸우고, 이겨 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상쾌했다.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나는 내가 있기 싫은 시간과 공간에서 도망쳤다.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도망치는 건 비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평생 감옥 속에서나 썩으라지. p. 196'   오히려 도망간 친구의 다음 한 걸음이 기대되는 마음이 더 컸다.


학생들이 쓴 '내 이름'에 관한 400자의 이야기는 대부분 이런 흐름이다. 가족 중 누군가가 지어준 소중한 이름이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는 마냥 좋았다. 그러다 학교에 들어가서 비교나 놀림을 당하면서 조금씩 싫어진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이름과 화해를 한다. 화해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책에 이야기 들처럼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지점을 찾아서 느껴지는 동질감, '내 이름'의 뜻을 찾아보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적극적으로 돌파하기 같은 것들이었다. 때로는 그냥 견디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좋아진 경우였다.


콤플렉스는 매우 복잡하고 빽빽하게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기에 한 가지 방법으로 벗어나기 힘들다. 결국은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빽빽함이 조금 옅어질 뿐이지. '콤플렉스의 밀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여러 콤플렉스를 다루면서, 콤플렉스를 함께 데리고 다니며 잘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신기하게도 '내 이름'에 관한 학생들의 이름 콤플렉스에 적힌 이야기들과 비슷하다. 그 시절,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데리고 있는 나의 콤플렉스 들이 책의 이야기들과 만나면서 조금은 헐렁해진 기분이다.  30일 글쓰기를 함께한 학생들과 읽어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책이다. 지금 학생들이 데리고 있는 콤플렉스도 조금은 느슨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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