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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Jun 02. 2023

조이럭 클럽 – 에이미 탄

영화 '조이럭 클럽' 중에서



1. 동양인들은 왜 그토록 성취욕이 강할까 


한때 미국에서는 어퍼머티브 액션이라는 대학의 소수자 우대 정책 때문에 말이 많았었다. 시험 점수 외에도 인종, 가정환경, 소득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여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SAT 점수가 낮아도 흑인 및 히스패닉 지원자는 명문대학에 합격하고 점수가 높은 동양인 학생은 불합격하는 등 역차별이 발생하기도 했다. 동양인의 높은 교육열은 미국 사회에서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며 이와 관련된 밈이 수도 없이 많이 존재한다.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동양인들은 왜 이다지도 성취욕이 강한 걸까. 


소설 조이럭 클럽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총 여덟 명이다. 네 명의 중국계 미국인 어머니와 네 명의 딸들. 이 책에도 딸의 성공을 위해 닦달을 일삼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소설의 첫머리에는 이런 어머니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우화가 실려 있다. 


노부인은 오래 전에 상하이에서,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 백조 한 마리를 샀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백조를 팔던 장사꾼은 이렇게 떠벌렸다. “이 새는 예전엔 오리였답니다. 거위가 되고 싶어서 목을 늘어뜨리고 있는 사이에, 이처럼 잡아먹기에 아까운 아름다운 백조가 된 거라구요”
그 후 그녀와 백조는 미국을 향해 목을 쑥 빼고 수천 리 바다를 건넜다. 배 위에서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백조에게 속삭였다.
“미국에 가면 나는 나를 꼭 닮은 딸을 낳을 테야. 거기선 여자의 값어치를 남편의 트림 소리 크기로 따질 만큼 하찮게 볼 사람은 없겠지. 미국에선 아무도 그 애를 얕보지 않을 거야. 그 애가 완벽한 영어만을 말하게 만들 테니까. 그리고 그 애를 항상 배부르게 해주고 어떤 슬픔도 맛보지 않게 해주겠어. 그 애는 내 뜻을 알겠지. 내가 이 백조를, 제가 바라던 그 이상으로 소원을 성취한 이 백조를 그 애에게 줄 테니까.”
그러나 그녀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이민국 직원은 백조를 빼앗아 버렸고 어쩔 줄 몰라 양팔을 허우적거리는 그녀에겐 깃털 하나만 남겨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너무나 많은 서류를 작성해야 했기 때문에 왜 그녀가 미국에 건너왔고 무엇을 뒤에 남기고 왔는가를 모두 잊어버렸다.
이제 그녀는 늙었다. 자라난 딸은 영어만을 하고 슬픔보다는 코카콜라를 더 많이 삼켰다. 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딸에게 백조의 깃털을 주면서 ‘이 것은 하찮게 보일지 모르지만 아주 멀리서부터 나의 소중한 꿈을 담아 가지고 온 것이란다’ 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이 말을 딸에게 완벽한 영어로 말해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녀는 꾹 참고 기다렸다.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딸들은 어머니들의 동양적인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인 어머니들은 미국에 오기 전 가난과 불의, 전쟁 등 뼛속 깊이 한스러운 일들을 겪었다. 오래전 중국은 개인의 노력만 가지고 기회를 붙잡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다. 계급이나 성별에 따라 제아무리 특출나도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건너온 어머니들은 딸들이 이 모든 자유를 거저 주어진 것처럼 하루하루 느슨하게 사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반면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딸들은 어머니들이 왜 그토록 강박적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어머니 중 한 명인 잉잉은 불행을 내다볼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살 때는 아파트의 언덕이 너무 비탈져서 뱃속의 아이를 유산할 거라는 예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유산을 하게 되었다. 은행 건너편에 수도관 수리 점포가 문을 열었을 때는 은행돈이 다 새나갈 거라고 예언했는데 한 달 후에 정말 그 은행의 직원이 횡령죄로 체포되기도 했다. 잉잉의 딸 리나는 어머니가 나쁜 징조에만 사로잡혀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러나 잉잉은 리나와 그녀의 남편 해롤드가 지은 집조차도 겉만 번드르르할 뿐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리나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못하다. 어머니들은 불행에 대처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언제든 재앙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 불안감은 잉잉이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이민성에서 찍은 사진에서도 드러난다. 누가 빼앗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핸드백을 꼭 움켜쥐고 놀란 표정으로 찍은 사진. 그 속에는 다가오는 불행에 속수무책으로 맞닥뜨렸을 때의 놀라고 무방비한 표정이 담겨 있다. 어머니들의 삶은 힘겹고 고단한 것이었으며 나이를 먹는 동안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딸들만은 그런 불행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2. 아메리칸 드림 


딸들 중 한 명인 준의 생일이 다가오자 준의 어머니 쑤얀은 준이 어렸을 때 치던 피아노를 선물하려 한다. 쑤얀은 부모 집에 남아있는 그 피아노를 딸이 가져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쑤얀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준이 어렸을 때 쑤얀은 준을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로 키우려 했었다. 하지만 준은 교회 장기자랑대회에서 망신을 당한 뒤 더는 피아노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 일로 모녀는 심하게 다투고 피아노 레슨도 그것으로 끝이 났다. 이후로도 준은 어머니의 바람을 다 채워주지는 못했다.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하지도 못했고 작은 광고회사에서 일하면서 집세도 제대로 못 내는 형편이었다. 쑤얀이 죽은 뒤 준은 피아노 의자 안에서 슈만의 소품집을 발견한다. 트로이메라이가 수록되어 있는 바로 그 피아노곡집이었다. 


‘준은 옛날에 연주회에서 쳤던 그 우울한 소곡을 다시 연주해보았다. <조르는 어린이>가 그 페이지의 왼쪽에 있었다. 그 곡은 그녀가 기억하고 있던 것보다 어려웠다. 그래도 곡조가 너무 쉽게 떠올라서 몇 소절을 쳐보았다. 그러다 처음으로 바로 오른쪽 페이지에 있는 <만족>이라는 곡을 쳐보았다. 그 곡은 멜로디는 좀 가벼웠지만 똑같이 흐르는 듯한 리듬이었고 아주 쉽게 잘 쳐졌다. <조르는 어린이>는 짧았지만 좀 느린 곡이었다. <만족>은 약간 길었지만 빨랐다. 그리고 그 두 곡을 몇 번 치고 난 다음, 그 두 곡이 같은 곡을 반으로 나눈 것임을 깨달았다.’ 


준이 더 이상 피아노 같은 건 치지 않겠다고 대들었을 때, 쑤얀은 ‘세상에는 두 종류의 딸이 있다. 하나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중국인 딸, 하나는 순종하지 않는 미국인 딸이다’라고 소리를 지른다. <만족>은 부모 말에 순종하는 딸, <조르는 어린이>는 반항하고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나서는 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준은 후자를 택했지만 세월이 흘러 손이 다 굳었는데도 피아노를 연주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쑤얀은 죽기 며칠 전까지도 ‘너에게는 재능이 있었어, 그런데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던 거야’라고 말했던 것이다. <조르는 어린이-반항>는 쉬울 것 같은 곡이었지만 사실은 어려운 곡이었고 <만족-순종>은 어려울 것 같았지만 반대로 쉬운 곡이었다. 엄마 말을 잘 듣는 게 더 어려운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름길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동양사상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집단에 자신을 맞출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서양에서는 대립과 투쟁이 지배적인 흐름이었다. 이어령이 말한대로 동양인은 폭포를 즐겨 그리는데 폭포는 중력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이다. 반면 서양인들은 분수를 만들어 인위적으로 물을 솟구쳐오르게 만들었다. 서양은 환경과 맞서 싸우고 문명을 발전시키고 계급 혁명을 이루어냈다. 동양인은 환경을 바꾸기는 어려우니 먼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것을 권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그래서 환경 탓, 남 탓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 서양은 분노와 정의감의 표출이 자연스러우며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여러 제도들을 만들어냈다. 옛 동양권 국가들 중에는 미신과 불합리한 제도, 억압 등으로 한이 서린 곳이 많았다. 


위와 같은 주제를 심화시킨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딸들 중 한 명인 로즈는 현재 이혼당할 위기에 처해있다.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겼으니 이혼해달라며 통보 아닌 통보를 해온 것이다. 심지어 본인이 유책배우자임에도 로즈를 거의 무일푼으로 내쫓으려 하고 있었다. 로즈는 뼛속까지 중국인인 어머니 안메이에게 이 상황을 이야기해본들 이혼만은 절대 안 된다고, 좀 더 참아보라고 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안메이는 평소 중국식 유기화학, 즉, 사람의 사주팔자에 오행의 기운이 있다는 이론을 믿고 있었는데 안메이나 로즈의 사주에는 목(木)이 없기 때문에 남의 말에 너무 잘 따른다고 생각한다. 로즈의 짐작과는 다르게 안메이는 로즈의 이혼에 반대하지 않는다. 안메이는 로즈에게 정신과의사에게 가본들 달라질 건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근래에 읽었던 어떤 기사를 떠올린다. 그것은 그녀가 떠나온 고국에 대한 기사였다. 기사는 수천 년 동안이나 농부를 괴롭혀온 새에 관한 것이었다. 


‘새들은 떼로 몰려와 농부들이 들에서 허리를 숙여 딱딱한 흙을 파고, 씨앗에 물을 주기 위해 이랑 속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을 지켜보다가 사람들이 허리를 펴고 일어서면 날아와서 그들이 흘린 눈물을 마시고 씨앗을 먹어버리곤 했대. 그래서 아이들은 먹을 게 없어 굶주렸지. 그러던 어느 날 지친 농부들이 온 중국 전역에서 들판으로 몰려 나와서는 새들이 먹고 마시는 것을 보았지. 그들은 고통과 침묵 타도! 라고 외치고 손뼉을 치면서, 막대기로 냄비를 두드리며 외쳤대. 새들은 모두 농부들의 세찬 공격에 당황하여 검은 날개들을 퍼덕이면서 하늘로 날아올라 사람들의 머리 위를 돌면서 시끄러운 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렸지. 그러나 농부들의 고함소리는 점점 격해지고, 더 화난 듯 들렸어. 새들은 땅에 앉을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어 지치게 되었고, 이렇게 여러 시간, 여러 날이 흘러 마침내 그 새들은 모두 수천, 수백 그리고 수백만 마리가! 한 마리도 남김없이 땅에 떨어져 죽어버렸다는 것이었어. ’ 


이 기사를 읽고 안메이는 기뻐서 소리를 지른다. 로즈 역시 남편 테드에게 ‘그렇게 간단히 나를 당신 인생에서 뽑아버리고 내팽개칠 수는 없다’며 처음으로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그날 밤 로즈는 어머니와 초우 할아버지가 화분을 들고 정원에 나타나는 꿈을 꾼다. 초우 할아버지는 꿈나라로 가는 문을 지키고 있다는 전설 속의 문지기다. 어머니는 꿈속에서 오늘 아침 화분에 묘목을 심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상자 속의 잡초가 상자 밖으로 잔뜩 쏟아져 나와 바닥을 타고 퍼져 가고 있는 것을 본다.  



3. 운명(FATE) 혹은 믿음(FAITH) 


로즈에게는 원래 막내동생이 있었다. 이 막내동생은 네 살이 되던 해에 바닷물에 빠져 죽었다. 안메이 부부가 일곱 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데리고 해변으로 나들이를 갔는데 막내 혼자 물가를 거닐다가 파도에 휩쓸려 죽고 말았던 것이다. 그 뒤 안메이는 다시는 성경책을 읽지 않았고, 키가 맞지 않는 식탁의 다리를 괴는데 처박아두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안메이가 믿음(faith)을 운명(fate)이라고 발음하는 걸 들은 로즈는 어머니가 영어를 잘 못해서 그렇게 발음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어쩌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발음한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믿는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모든 건 타고난 운명일 뿐인 게 아닐까. 이 같은 회의주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면모는 딸이 낳은 손자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기는 할머니의 우화에서 한 발짝 진일보한 모습을 보인다. 


오! 화이 덩스이(고얀 것 같으니라구), 부처님께서 공연히 웃으라고 가르치시더냐?

그 노부인은 손녀딸 아이를 얼러주면서 말했다.

아기가 계속 옹알이하자 노부인은 자기 가슴속에서 깊은 소망이 술렁이는 것을 느꼈다.

노부인은 아기에게 말했다.

내가 아무리 죽지 않고 오래 산다 해도, 나는 너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 옛날 한때는 나도 아주 자유롭고 천진난만했지. 그저 자꾸 웃었지 뭐냐. 허지만 나중에는 내 몸을 보호하자니 어쩌겠니. 어리석은 순진함 같은 건 저만치 내버렸지. 그리고는 네 어미인 내 딸에게도 상처를 받지 않도록, 순진함을 떨구어 버리라고 일러주었단다.

(…)

아유! 네가 벌써 오래오래 영원히 살고 있기 때문에 웃는 거라고 말하는 거지? 너는 서쪽 하늘의 황태후이신 스이 왕후고, 이제 나에게 답을 가르쳐주려고 돌아온 거라고 말하는 거지? 좋아, 좋구 말구, 할미가 들으마…….

감사합니다, 꼬마 황태후님, 이젠 네 어미에게도 이걸 똑같이 가르쳐야만 해. 순진함은 잃어버려도 희망은 잃지 않는 방법 말이다. 어떻게 영원히 웃을 수 있는가를 말이야. 


우화 속에서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방긋방긋 웃기만 한다. 삶에 찌들고 상처 입은 외할머니는 손녀가 무구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순진함은 잃어도 희망은 잃지 않는 법, 현명함을 유지하면서도 웃을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다. 더 이상 순진하지는 않지만 순수할 수는 있는 지혜를 손녀딸 안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길인데 이 신비로운 부처님의 지혜는 안메이의 어머니, 즉 로즈의 외할머니의 일화에도 등장한다. 로즈의 외할머니는 어떤 귀족의 계략에 넘어가 그 귀족의 넷째 부인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 집의 첫째 부인은 자기 남편이나 다른 부인들이나 하녀들은 못 본 척하고 오로지 자기 딸들에게만 말을 건다. 첫째 부인은 다리가 하나 짧은 첫 딸을 낳은 뒤 얼굴 반쪽이 얼룩진 둘째 딸을 낳았다. 그녀는 자기의 불행한 결혼생활에 눈을 감아버리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딸들 외에는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다. 첫째 부인의 유일한 낙은 절에 공양을 드리는 가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부처님은 가부좌를 틀고 눈을 반쯤 감고 앉아 있었다. 이 책의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첫째 부인 역시 꿈을 꾸듯이 살아가고 있다. 눈을 완전히 감으면 넘어질 것이고 눈을 다 뜨자니 현실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어머니들이 눈을 반만 감는 지혜를 터득하는 동안 딸들도 인생의 부침을 겪으면서 어머니들의 한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 안에 있는 동양적인 뿌리도 이해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만족>과 <조르는 어린이>의 두 갈래 길, 동양과 서양이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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