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자가 집 안에서 누운 채로 굶어 죽었다. 죽은 남자의 여동생은 오빠가 왜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죽어버렸는지 그 이유를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오빠의 영혼은 가끔 그녀 주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오빠가 죽은 방에서 맡았던 시체 썩는 냄새가 전철이나 공원, 거리에서 불시에 진동했다. 동료이자 애인인 기무라에게서도 그 냄새가 났다. 알고 보니 기무라는 직장암에 걸려 있었다. 그녀에게는 죽음의 냄새를 맡는 능력이 생겼다.
죽은 남자의 여동생인 유키는 도쿄에서 주식 관련 에세이를 쓰는 일을 하고 있다.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오빠가 죽은 방을 방문했다가 전기를 꽂아놓은 청소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것이 오빠가 보내는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빠는 죽기 전에 콘센트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이나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세계 잔혹 이야기’라는, 1960년대에 제작된 영화 속에 나오는 에피소드였다. 조현병에 걸린 백인 소년이 초점 없는 눈으로 콘센트를 들고 있었다. 간호사가 콘센트를 꽂으면 소년은 갑자기 의식이 돌아오면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소년은 콘센트를 꽂았을 때만 현실로 돌아온다는 것이었다. 유키는 오빠 역시 삶으로부터 콘센트를 빼버리고 영영 걸어나가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죽는 순간부터 말 없는 존재가 된다. 말이 없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 오빠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자신과 나의 과거, 나의 인생을 깨닫게 된다. 떨어져 나간 기억의 단편을 기억해 내야만 한다.
유키는 혼란스러운 마음에 대학교 때의 지도교수인 구니사다를 찾아간다. 유키는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당시에는 카운셀러가 되려면 누구나 직접 환자가 되어 분석을 받았다. 유키도 지도교수인 구니사다에게 분석을 받았었다. 구니사다는 당시 유키의 애인이기도 했다. 심리 분석 과정에서 환자가 카운셀러에게 사랑을 느끼는 건 흔히 있는 경우였다. 유키는 구니사다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고 오빠와 관련된 기억을 털어놓았다.
오빠는 유키보다 열 살이 많았다. 유키는 어렸을 때 오빠를 몹시 미워했다. 오빠는 유키를 자주 때렸고 어머니에게까지 폭력을 휘둘렀다. 아버지는 배를 타는 선원이었는데 술에 취해 어머니를 때리고 자식들에게도 폭언을 퍼붓곤 했다. 오빠는 아버지와 가정을 저주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집을 떠나 다른 지역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다. 오빠는 부모가 지성인이 아니라며 경멸했다. 어머니는 오빠가 일자리를 얻어 집을 떠나고 난 뒤 자주 울었다. 유키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오빠가 어머니를 때리기도 하고 심한 말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실화인데 작가에게는 실제로 방에서 나오지 않고 그대로 죽어버린 오빠가 있었다. 아마도 작가의 어머니는 오빠를 상당히 애지중지했던 것 같다. 폭군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감수성 예민한 아들이 측은했는지도 모른다.
유키가 고등학생이 되자 오빠는 그녀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고 인격적으로 대해주었다. 그러나 이직을 반복하면서, 오빠의 정신 상태는 서서히 황폐해져 갔다. 고향의 자기 방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고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오빠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설득력 없는 설교를 늘어놓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험악해졌다. 오빠는 아버지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결국 아버지는 자제력을 잃고 유리 파편으로 오빠를 찌르고 말았다. 그대로 두면 둘 중 한 사람이 죽을 것 같아서 유키는 오빠를 도쿄에 있는 자기 아파트로 데려왔다. 유키는 오빠를 설득해서 카운셀링을 받게 할 작정이었다.
오빠를 아파트로 데리고 온지 3개월이 지나자 유키는 정서 불안에 빠졌다. 의욕 없이 멍하니 있는 오빠를 보고 있자니 아버지처럼 윽박지르고 싶어졌고 그대로 있다가는 자기도 이상해질 것만 같았다. 청결을 유지하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한데 오빠는 세수는커녕 양치질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게다가 탄산음료를 많이 마셔서 앞니 두 개는 녹아버린 상태였다. 간이 나쁜지 얼굴은 흙빛이었고 작은 습진이 나있었다.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하면서 건강에 신경 쓰지 않은 탓인지 오빠의 체력은 말할 수 없이 약해져 있었다. 유키는 가까스로 오빠를 설득해서 목욕을 하게 했지만 오빠가 목욕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심적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쩌면 보통 사람이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모임에 데려가려 하면 오빠는 완강히 거부했다. 끔찍할 정도로 자의식이 강했고 쉽게 상처 입었으며 사람을 만나면 녹초가 되곤 했다. 어느 날인가부터 유키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사귀던 남자의 아파트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일과 관련된 준비를 할 때만 집을 찾았다. 어느 날 아파트에 돌아와 보니 오빠가 사라지고 없었다. 유키는 오빠를 찾지 않았다. 유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오빠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일자리를 찾아보겠다며 100만 엔을 받아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돈은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끊는 위자료였어’라고 말했다. 오빠는 그 돈으로 방을 빌리고 다시는 그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2개월이 지난 뒤 오빠는 시체로 발견되었다. 오빠가 죽고 난 뒤에도 그녀는 울지 않았다.
구니사다의 교수실에서 나와 교정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가 유키를 불러세웠다. 대학 때 같은 연구실이었던 리츠코였다. 그녀는 다른 연구실에서 조교로 일하고 있었다. 리츠코는 샤먼이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샤먼은 ‘공동체 속의 콘센트 같은 것’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유키는 매일 술에 취해 싸우는 부모와 오빠를 보며 그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긋지긋해 했다. 증권과 관련된 일에 매혹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숫자를 다루는 일은 객관적이고 냉정한 세계에 속해 있었다. 그 때문에 그리로 도피한 것이었다.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감응이 잘 되어서 유키는 종종 녹초가 되곤 했다. 어쩔 수 없이 사람과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굶주린 것처럼 아무하고나 자는 등 문란하게 살아왔지만 누구와도 진지한 관계를 만들지 않았고 그들 모두를 버렸다. 유키는 구니사다도, 오빠도 그런 식으로 한 순간에 버렸다.
나는 인간에 대해 콘센트를 빼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있는 인간의 감정이 무서웠기 때문에.
구니사다는 유키와 같은 연구실에 있던 야마기시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야마기시는 의학으로 전공을 바꿔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고 있었다. 야마기시는 트랜스 상태에 빠진 환자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환자들이 ‘콘센트를 뺀다’는 표현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유키는 리츠코를 만나 야마기시를 기억하느냐고 묻는다. 리츠코는 10년 전에 야마기시가 유키를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리츠코가 연구하는 샤먼은 곧 콘센트이며 샤먼을 찾는 사람은 자신의 플러그를 그 콘센트에 꽂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샤먼은 초자연적인 세계와 연결된다.
콘센트(concent)라는 말은 원래 함께 조화를 이루어 공감한다는 뜻을 가진 라틴어야.
타이완에 지진이 일어나면 일본의 컴퓨터 업계가 타격을 받았다. 그런 주식시장을 보고 있으면 세계는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아프리카의 작은 나라에서 일어난 내란이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걸 보더라도 이미 지구는 하나였다. 뭔가의 영향을 받아 주식의 등락이 결정되는 것을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하나하나의 개체는 각자지만 그것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고 있는 상태 역시 콘센트인 것이다. 유키는 오빠가 자신의 플러그를 꽂을 콘센트를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대학병원 대합실에서 야마기시를 만났을 때, 야마기시는 환자들이 트랜스 상태에 빠질 때 약속이라도 한 듯 콘센트를 뺀다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공상에 빠지면서 현실의 긴장에서 도망쳐 망아 상태가 되는 것을 트랜스 상태라고 부른다. 환자 중에는 자신의 의식이 몸에서 빠져나가 눈앞 20센티 정도에 떠있는 느낌을 받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야마기시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외부의 자극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콘센트를 빼는 쪽이 더 편했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오빠의 죽음을 계기로 콘센트가 꽂혀서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 거야. 동시에 다른 운영체제가 가동하기 시작했어. 지금까지는 네 의식이 그런 움직임을 억제하고 있었던 거야. 아사쿠라(유키의 성)도 오랜 동안 콘센트를 빼고 살아온 거 아냐? 아니, 그보다는 전압을 낮추고 살았다고 해야겠지. 그것이 가능했던 건 네 정신력이 강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흐르는 에너지를 몸에 가두고 살았으니 보통 사람의 열 배는 사는 것이 힘들었을 거야. 그래서 너는 사람을 싫어했던 거고. 인간들과 접하면 전압이 올라가니 말야. 내가 생각하기엔 네 오빠도 너와 같은 타입이었을 거야. 다만 네 쪽이 훨씬 강했어.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를 낮춰 살았으니까. 하지만 이제까지 봉인됐던 것이 풀리고 네 속에 잠재되어 있던 본래의 운영체제가 가동하기 시작했어.
직장암에 걸린 뒤 종양을 제거해낸 기무라에게 유키는 이별을 고했다.
난 내가 어떻게 그 냄새를 느끼게 됐는지 알 것 같아. 네가 오빠를 닮았기 때문이야. 마음이 따뜻하고 다른 사람이 바라는 것을 그대로 따르려고 애쓰는 점들이 오빠랑 무척 닮았어.
기무라는 오빠처럼 착한 사람인데 착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헌신하는 만큼 타인에게도 헌신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유키는 그런 깊은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또한 오빠에게 그랬던 것처럼 상대방을 다치게 할까 봐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리츠코는 유키에게 콘센트는 너 자신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과 협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너야.
기무라를 만나 이별을 고하고 돌아오던 길에 유키는 갑작스럽게 트랜스 상태에 빠졌다.
무수한 얼굴, 얼굴, 얼굴, 그리고 의식, 이름, 기억, 나와 닿은 사람들의 정보가 은색의 미세한 입자가 되어 피부로 침입했다. 부드러운 입자가 미세하게 진동하면서 체내로 빨려 들어왔다. 많은 생각이 둥둥 떠다니는 입자가 되어 몸 속으로 스며들었다. 타인의 진동에 감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육 여기저기가 잡다한 진동으로 경련했다. 제어할 수 없었다. 내 몸 속에 많은 타인이 있다.
피부 표면이 1미터는 넓어진 것 같았다. 무수한 진동을 피부가 빨아들였다. 나는 안테나가 되어있었다. 신체 감각이 팽창하여 거대한 수용체가 되었다. 나는 이 세계의 모든 주파수를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제어할 수 없다. 마치 고장난 라디오처럼.
무수한 진동 속에서 유키는 불현듯 오빠를 느꼈다. 오빠의 시점에서, 어린 시절부터 오빠가 느껴온 절망과 슬픔을 느꼈다. 오빠가 나타나는 이유는 샤먼이자 콘센트로서 자신의 재능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라는 것도 깨달았다.
리츠코와 대화하면서 유키는 리츠코도 샤먼이 되고 싶어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놀랍게도 리츠코는 야마기시의 아내였다. 남편이 과거에 유키를 좋아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리츠코는 유키를 관찰하는 동시에 그녀의 사연을 듣고 돕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타라고 부르는 샤먼들의 공동체를 찾아 유키는 오키나와로 떠났다. 그곳에서 샤먼인 미요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미요는 트랜스 상태에 빠지기 위해 무릎을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누군가를 부르는 듯한 노래였다. 미요는 곧 의식이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유키의 오빠를 위한 진혼 의식을 거행한 뒤 미요는 이렇게 말한다.
제가 당신에게 가르칠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은 아주 새로운 생명이에요. 우리와는 다른 것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가 오랜 자연의 무녀라면 당신은 새롭게 태어난 지구의 무녀죠. 당신이 생각하던 것처럼 우리들 유타는 ‘신내림’이라는 의식을 가져요. 우리는 신내림이 없이 신과 연결되는 방법은 몰라요. 하지만 당신은 알고 있는 것 같군요. 그렇게 타고난 것 같아요. 앞으로 당신 같은 사람이 많이 태어날 거예요. 새로운 자연이 낳은 새로운 무녀에요. 그런데 죽은 오빠가 당신의 안내자가 된 것 같군요. 당신이 변하는 기회를 만들려고 이 땅에 강한 기억을 남기셨어요.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오빠가 남긴 진동에 감응해서 오빠의 환각을 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그 진동을 이 지상에서 해방시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뒤 유키는 스스로 샤먼이 되어 도쿄의 시부야에서 사람들을 치유하기 시작한다.
이 거리에는 과거의 나 그리고 오빠 같은 사람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껍질을 쓰고 산다. 나는 나나 오빠 그리고 그들을 ‘콘센트’라고 부르고 있다. 콘센트는 가까이 있는 사람의 감정에 쉽게 감응하기 때문이다. 콘센트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휩쓸리며 살고 있다. 콘센트는 이 세상과 다른 세계와 감응하는 능력을 가진 샤먼이다. 그런 사람들이 도시에는 많이 묻혀 있다.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어 내가 겪은 체험을 공개하자 아주 많은 콘센트들이 접속했다.
책에 나오는 유키의 오빠에 대한 묘사가 무척 리얼해서 이 소설은 실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알고 보니 이 소설은 작가의 자서전이었다. 다구치 란디의 오빠가 소설에서처럼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대로 굶어 죽었다고 한다. 술에 취해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 역시 작가 자신의 가정을 묘사한 것이었다. 자식에게 폭력을 대물림하는 부모는 우리 주위에서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세상에는 각자의 이유로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히키코모리들이 많이 있다. 세상으로부터 상처 받고 자신만의 섬에 갇혀버린 이들에게는 자신과 감응할 수 있는, 공감할 수 있는 콘센트가 필요하다. 유키의 말처럼 파동은 모이거나 흩어지면서 특정한 주파수를 발산하는데 주파수가 다르면 전압이 맞지 않아 소통을 할 수가 없다. 샤먼은 순간적으로 전파를 바꾸어 다른 사람과 공명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다른 언어를 해석하는 통역사와도 같다. 이런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감정에 공명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타인의 감정에 쉽게 공감하는 예민한 사람들은 타인과 함께 있으면 금방 지치고 녹초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예 콘센트를 빼버리고 히키코모리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유키 역시 (그녀의 오빠도) 감정이입이 지나치게 잘 되다 보니, 처음에는 괴로워했지만 나중에는 그런 재능을 살려서 샤먼으로 거듭나게 된다. 오빠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소명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유키는 자신을 찾는 클라이언트들과 동침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을 치유하기 시작한다. 에로스적인 상상력이야말로 창조적인 에너지의 원동력이며 에로스는 상대방과의 합일(concent)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