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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Jun 07. 2023

이것이 인간인가 -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는 프리모 레비가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어 있을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다. 레비는 이탈리아계 유대인으로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에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아우슈비츠로 가는 열차 안에는 어린이와 노약자도 있었다. 사람들이 콩나물 시루 같은 열차 안에 짐짝처럼 포개져 있었고 아우슈비츠에 도착할 때까지 나흘 동안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 수용소에는 수도꼭지가 있었는데 물을 마실 수 없다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레비는 그 쪽지가 자신들을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잡혀 온 사람들이 갈증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나치 대원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에 이송된 사람들은 대부분 즉석에서 가스실로 보내졌다. 가스실로 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선발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양쪽에 두 개의 문이 있었고 나치 대원이 이송된 사람을 보고 문 한쪽을 가리킨다. ‘10분도 채 안 돼서 튼튼한 남자들이 한데 모이게 되었다. 다른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노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당시에도 그 후에도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젊고 건강한 사람들만 강제노동 현장으로 보내졌다. ‘이렇듯 건장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는 보잘 것 없는 원칙마저도 늘 준수된 것은 아니고, 나중에는 새로 도착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채 객차의 문을 둘 다 여는 더 간편한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우연히 객차의 이쪽 문으로 내린 사람은 수용소로 들어갔고 다른 쪽 문으로 내린 사람은 가스실로 향했다.’ 


물론 살아남은 사람들도 자주 가스실로 보내졌다. 그 결과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 대부분이 죽었다. 아우슈비츠의 희생자 수는 110만 명 내지 150만 명에 이르렀다. 수인들의 평균수명은 고작 3개월이었다. 아우슈비츠 이외의 수용소에서 희생된 자는 600만 명이 넘었다. 사람들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 SS(나치스 친위대) 대원들은 매우 의도적으로, 혹은 비의도적으로 수감된 사람들의 존엄성을 짓밟기 시작했다. 


‘사실 새로 도착한 우리들이 이런 질서 속으로 편입되는 전 과정은 그로테스크하고도 우스꽝스럽게 전개되었다. 문신 새기는 작업이 끝나자 그들은 우리를 아무도 없는 막사 안에 가두었다. 작은 침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지만 침대를 건드리거나 그 위에 앉는 일은 엄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갈증을 참지 못한 나는 창문 밖, 손이 닿는 곳에서 고드름을 발견했다. 난 창문을 열고 고드름을 땄다. 하지만 밖에서 순찰을 돌던 키가 크고 뚱뚱한 남자가 창 쪽으로 다가와 거칠게 고드름을 빼앗아버렸다. “Warum?”(왜 그러십니까) 난 서툰 독일어로 물었다. “Hier ist kein warum.”(이곳에 이유 같은 건 없어) 그가 나를 막사 안으로 떠밀며 대답했다. 설명은 불쾌했지만 간단명료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수용소가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는 그 사실을 빨리 그리고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금지사항들은 다 셀 수도 없을 정도다. 가시 철조망에 2미터 이내로 접근 금지. 상의를 입거나 속옷을 입지 않거나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자지 말 것. ’nur für kapos’(카포 전용)나 ‘nur für Reichsdeutsche’(라이히스도이체 전용)인 특별 목욕탕과 변소 이용 금지, 정해진 날에 샤워를 할 것, 해지지 않은 날에는 샤워 금지, 단추가 떨어진 상의를 입거나 깃을 세우고 막사에서 나오는 것 금지, 추위를 막으려고 옷 속에 종이나 짚을 넣는 것 금지, 상의만 벗고 씻는 것 금지.

수행해야 할 의식은 끝도 없고 무의미했다. 매일 아침 ‘침대’를 완벽할 정도로 평평하고 고르게 정리해야 한다. 진흙투성이에 구역질 나는 나막신에 적당한 기계용 기름을 발라야 한다. 옷에서 진흙을 털어내 자국을 없애야 한다(페인트, 기름과 녹 자국은 그냥 둬도 된다). 저녁이면 이가 없는지, 발은 씻었는지 검사를 받아야 한다. 토요일에는 수염과 머리를 깎아야 하고 누더기를 수선하거나 수선하도록 시켜야 한다. 일요일에는 전체적으로 피부병이 옮지 않았는지 검사받아야 하고 상의에 단추가 다섯 개 다 달려 있는지 검사받아야 한다.‘ 


수용소에서는 물을 주지 않았다. 음식이라고는 약간의 빵과 죽이 전부였고 모두가 기아에 시달리고 있었다. 죽은 매우 묽었기 때문에 죽을 먹기 위해서는 숟가락이 필요했다. 그러나 숟가락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알아서 훔쳐야 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도둑질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물건을 도둑맞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금만 방심하면 반드시 도둑맞는다는 것을 배운다.‘ 


’변소나 샤워실에 갈 때에는, 자기 물건을 모두 가지고 가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 마찬가지다. 세수할 때는 옷 보따리를 두 무릎 사이에 끼워야 한다. 어떤 식으로든,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보따리를 도둑맞을 수 있었다.‘ 


수용소 규정에 따르면 매일 아침 신발에 약을 발라 윤을 내야 했다. 그러나 구두약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여 죽이나 빵을 남겨 그걸로 구두약과 거래를 했다. 그런데 수용소에서는 원칙적으로 거래가 금지되어 있었다. 또 수용소에서 어떤 물품을 제공할 때는 그 기준을 알 수가 없었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자기와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 유리하게 배당되었다. 


’선발되어 가스실로 보내진 죽은 사람의 옷과 신발을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는 사람이 바로 간호사들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배급받은 술폰아미드계의 항생제를 부나로 가져가 먹을 것을 받고 민간인들에게 파는 사람도 간호사와 의사들이다. 간호사들은 또 숟가락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챙긴다.‘ 


‘신발이 발에 맞지 않아 아프면 저녁에 신발을 바꿔 신는 의식에 참가해야 한다. 이런 대목에서 개인의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단 한 번에 자기 발에 맞는 신발 한 짝을(한 켤레가 아니다. 한 짝이다) 골라야 한다. 한 번 고르고 나면 더 이상 교환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은 신발에서 시작된다. 신발이 우리 대부분에게 진정한 고문 도구라는 게 드러났다. 그것을 신고 몇 시간 행군을 하고 나면 발이 끔찍하게 짓무르고 치명적으로 감염된다. 그렇게 되면 다리에 쇠사슬을 매단 죄인처럼 걸을 수밖에 없다(매일 밤 열을 지어 수용소로 돌아오는 유령 부대원들의 그 희한한 걸음걸이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발이 감염된 사람은 어디든 제일 늦게 도착하게 되고, 그러면 사정없이 얻어맞았다. 누군가 뒤쫓아온다 해도 달아날 수도 없다. 발이 부어오른다. 더 많이 부을수록 신발의 나무나 헝겊과의 마찰을 더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병원밖에 없다. 하지만 ‘dicke Füße’(부은 발) 진단서를 가지고 병원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 병이 여기서는 치료될 수 없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그리고 특히 SS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치료될 수 없는 병을 가진 사람은 가스실로 보내졌다. 


일본인과 독일인, 특히 이 나라의 관료들이 매뉴얼에 집착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행정 업무의 처리는 끝도 없이 느리고, 빡빡하고 세세한 규정을 따라야 한다. 매뉴얼대로라는 그들의 방식은 너무도 고지식해서 시간과 자원을 낭비하기 위해 일부러 매뉴얼을 만들어낸 게 아닌가 싶어질 정도다. 독일 공무원들은 특히 악명이 높은데 독일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들조차 공무원이라면 고개를 가로젓곤 한다. 얼마 전에도 뉴스에서 새벽 2시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지만 일처리를 못하고 돌아갔다는 민원인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행정 업무처리를 위해서는 이메일 등으로 방문 예약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여러 번 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오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같은 업무라도 담당자에 따라 요구하는 서류가 다르며 때로는 민원인보다 담당자가 업무를 더 몰라서 받아야 할 서류 등을 잘못 알려주는 경우도 많다. 이럴 경우 민원인이 새로운 서류를 구비하기까지 몇 달, 심하면 1년 가까이 시간을 낭비할 때도 있다. 제대로 된 절차를 알려주면 오히려 화를 내고 행정 처리를 거부하거나 무난히 통과될 서류도 리젝시켜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민원인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다. 


강제 수용소의 끝도 없는 법칙들은 겉으로는 질서와 규율을 위한 매뉴얼인 듯하지만 과연 그럴까. 행정기관에서 어느 부처 소관인지 잘 모르겠을 때 이 부서 저 부서로 일을 떠넘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뉴얼은 일처리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일이 잘못되었을 때 문책당하지 않고 빠져나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매뉴얼이 모든 상황을 다 커버할 수는 없다. 반드시 지침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는 모호한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임의대로 일을 처리했다가 잘못되면 책임을 면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갈수록 복잡하고 세세한 매뉴얼을 만들어서 지침대로 처리했다는 말로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이다. 어쩌면 그게 이 융통성 없음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원래대로라면 행정 업무의 본질은 민원인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정반대 결과를 초래하고 있음에도 매뉴얼이 본질보다 더 중요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수용소의 그 부조리한 법칙들도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기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Ne pas chercher à comprendre(이해하려 애쓰지 마라).’ 생각이라는 걸 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그들은 복종을 수월하게 하며 인간을 살아있는 좀비로 만든다. 더 나아가 그들의 가학적인 욕망을 채우기까지 한다. 


‘“야볼”Jawohl(예, 알았습니다)이라고 대답해야 한다는 것, 절대 질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항상 이해한 척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언제까지? 이런 질문을 하면 고참들은 웃는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수용소에 갓 들어왔음을 알아차린다. 그들은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미래의 문제는 몇 달 전부터, 몇 년 전부터 빛을 잃었다. 눈앞의 급박하고 구체적인 문제 앞에서 먼 미래의 중요성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눈이 오지 않을까, 부려놔야 할 석탄이 있을까, 오늘은 얼마나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들 앞에서.‘ 


이곳에서 사람들은 ’오로지 시간을 벌 목적으로 짐승처럼 달리면서 오줌을 눈다‘. 조금이라도 배급을 받을 때나 씻을 때 유리한 장소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빵이 배급되고 소비되는 그 짧은 몇 분 동안 온 블록에는 고함, 싸움, 욕설이 난무한다.’ 


‘미샤와 갈리치아인이 무쇠 받침대를 들어 우리 어깨 위에 거칠게 올려놓는다. 그들의 자리는 제일 편한 곳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열성을 과시한다. 꾸물거리는 동료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주의를 주고 견디기 힘든 속도로 일을 시킨다. 그래서 나는 몹시 화가 난다. 물론 나는 특권층이 비특권층을 억압하는 것이 세상사의 일반적인 이치임을 잘 알고 있다. 수용소의 사회구조를 지탱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인간적인 이치였다.’ 


‘유대인 특권층들은 노예 상태에 있는 몇몇 개인에게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자리, 어느 정도의 편안함과 높은 생존 가능성이 제공되는데, 대신 그들은 동료들과의 자연스러운 연대감을 배신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그가 그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권리를 갖게 되면 그는 잔인하고 포악해질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 자리에 훨씬 더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다른 사람이 자기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을 압제하는 사람들에 대한 욕구불만의 찌꺼기를 자신이 압제하는 사람들에게 비이성적으로 퍼붓는다. 위에서 받은 모욕을 밑에 있는 사람에게 증오의 형태로 폭발시키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다.’ 


수용소 안에서 나치는 일방적인 가해자고 유대인은 피해자이기만 할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았다. 수용소 안에는 무수히 많은 회색지대가 있었다. 위 단락에서 볼 수 있듯이 수용자들 중에서도 좀 더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보다 못한 처지인 유대인들을 괴롭히면서 계급 구조의 피라미드를 완성시킨다. 그래서 레비는 묻고 있다. 이것이 인간인가. 


‘공포는 노예를, 증오는 주인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 밖의 다른 힘은 모두 숨을 죽였다. 모두가 적이거나 경쟁자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 단련되어 있어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매일 전투를 벌이고, 매 시간 노역, 허기, 추위, 그리고 거기서 유래하는 무기력과 싸워야 한다. 적에게 저항해야 하고 경쟁자를 동정하지 말아야 한다.’ 


수용소에는 일종의 병원 같은 곳인 카베라는 장소가 있었다. 카베에는 환자들만 따로 수용되어 있었다. 장교는 의사를 데리고 침대 사이를 돌다가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환자의 번호에 십자 표시를 하곤 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가스실로 보내졌다. 


‘카베에는 설사병 환자가 많은데 그 사람들은 사흘에 한 번씩 확인을 받는다. 복도에 길게 줄을 선다. 줄의 끝에는 두 개의 양철 대야가 있고 기록부와 시계, 연필을 든 간호사가 서 있다. 환자들은 한 번에 두 명씩 나와서 거들의 설사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즉석에서 증명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데 그들에게 허용된 시간은 정확히 1분이다. 간호사에게 결과물을 제출하면 간호사는 그것을 보고 판단한다. 그들이 근처 세척통에 재빨리 대야를 씻으면 다음 두 명이 그 뒤를 잇는다.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귀중한 증거물이 나오기까지 10분, 20분을 더 참아야 하기 때문에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또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꼭 필요한 순간에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 근육과 힘줄을 팽팽히 긴장시킨다.’ 


레비의 친구인 피에르 손니노는 강제 노역을 피하기 위해 카베에 최대한 오래 머물 작정이었다. 그래서 진짜 이질 환자와 대야를 바꾸는 대가로 죽이나 빵으로 사례를 했다. 물론 대야는 순식간에 바꿔치기되어야 한다. 들켰다간 형벌을 각오해야 했다. 수용소 내에서는 생존을 위해 별의별 일들이 다 벌어지는 것이다. 


레비가 수용소에 오기 전 SS대원들은 수용소 공터에 커다란 천막을 두 개 세웠다. 여름 내내 각 천막에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머물렀다. 천막에 해체되고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레비가 있는 막사로 몰려들었다. ‘우리 고참 포로들은 독일인들이 이런 변칙적인 상황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곧 포로 수를 줄이기 위한 어떤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선발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폴란드인들이 소식을 제일 먼저 알게 되는데, 대개는 그런 소식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어떤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언제나 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발이 목전에 와 있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될 때쯤이면, 선발을 피하기 위해 시도할 수 있는 극소수의 방법들(빵이나 담배로 의사나 특권층을 매수하는 것, 막사에서 카베로 가거나 반대로 정확한 순간에 퇴원하는 것)을 벌써 폴란드인들이 독점하고 있을 것이다.’ 


‘카베는 육체적으로 가장 편한 수용소다. 그래서 아직 의식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기서 의식이 다시 깨어난다. 그리하여 공허하고 긴 날, 허기나 노동이 아닌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어떤 상태로 만들려고 한 것인지, 우리 중 몇 명이나 죽었는지, 이것이 어떤 삶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울타리인 카베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간성이 아주 연약한 것이며 이 인간성이야말로 우리 생명보다 더 위태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밤 11시가 지나면 불침번 옆에 있는 통으로 사람들이 오고 가는 소리가 들렸다. 수감자들은 두세 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서 죽 형태로 먹었던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내야 했다. 통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사람이 변소에 가서 그것을 비워야 했다. 밤에는 야간 복장(셔츠와 팬티)만 입고 막사 밖으로 나가야 했다. 스무 번 정도 통을 비워야 했고 수감자들은 눈 속에서 잠에 취한 채 추위에 떨었다. 그들은 맨발의 복숭아뼈에 부딪히는, 구역질 나게 미지근한 그 통을 변소까지 끌고 갔다. 통은 적정 용량을 넘어 아슬아슬할 정도로 꽉 차 있넊자. 흔들릴 때마다 발 위로 내용물이 흘러내렸다. 레비는 이 의식이 음란한 고문이자 잊혀지지 않는 수치였다고 말한다. 


레비가 있던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은 15만 명이 넘었다. 그 중 수용소가 폐쇄될 때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고작 수백 명에 불과했다.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 일반 수용자는 없었다. 레비만 해도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수용소 공장을 가동시키기 위해 화학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의사, 재봉사, 구두 수선공, 음악가, 요리사, 매력적인 젊은 동성애자, 수용소 권력자의 친구거나 동향 사람이었다. 혹은 카포나 블록앨테스터나 기타 등등에 임명되었던(SS 당국이 임명했다. 이런 자리에 선택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악마의 인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이었다. 그 외에는 특별히 잔인하고 가혹하고 비인간적인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다시 말해서 그런 잔인함과 가혹성이야말로 생존에 유리한 특징이었던 것이다. 레비는 수용소 경험을 통해 인간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찰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동료 중 한 사람인 엘리아스를 묘사하면서 레비는 자신이 깨달은 비극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엘리아스가 일하는 광경을 보면 당혹스럽다. 폴란드인 마이스터들, 종종 독일인들까지도 걸음을 멈추고 일하는 엘리아스를 감탄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그에게 불가능이란 없어 보인다. 우리가 시멘트 부대 한 개를 겨우 옮기는 동안 엘리아스는 두 개, 세 개, 네 개를, 어떤 방법을 쓰는지는 모르지만 균형을 유지하며 옮긴다. 그리고 짧고 통통한 다리로 종종 걸음치며 짐 밑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웃고, 욕하고, 고함치고, 쉴 새 없이 노래 부른다.’ 


‘그는 재봉사이자 목수, 구두 수선공이자 이발사다.’ 


‘나는 그가 쉬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조용히 혹은 가만히 있는 것도 보지 못했다. 다치거나 앓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런 식으로 그는 야생동물의 본능적인 영리함을 보여주었다. 그는 현장에서 잡히는 일이 없다. 확실한 기회가 왔을 때만 도둑질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회가 왔다 하면 엘리아스는 마치 돌이 위에서 툭 떨어지듯 운명적으로 당연하게 도둑질을 한다. 그런 그를 잡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그의 절도에 대해 벌을 주려 해도 아무 소용 없을 것이다. 절도는 그에게 숨을 쉬거나 잠을 자는 것처럼 생명에 관계된 행동이기 때문이다.’ 


‘엘리아스는 욱체적으로 파괴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공격에서 살아남는다. 미치광이이기 때문에 내부로부터의 절멸에 저항한다. 그래서 제일 먼저 생존자가 된다.’ 


‘후자는 여기서 결론을, 혹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을 끌어내보려 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위에도 엘리아스를 닮은 사람을, 그 씨앗을 지닌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목적도 없이, 모든 형태의 자기절제와 양심을 결여한 채 살아가는 개인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이런 결함들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엘리아스처럼 그런 결함들 덕분에 살아간다.’ 


레비는 엘리아스가 영혼 없는 생존 기계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이기적인 세상에서는 피상적이고 천박한 사람이 더 잘 살아남는다.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수용소, 아니 세상이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이 이루어지는 장소라면, 그런 사실은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다. 그런 상태를 인지할 수 있는 지성이 있는 사람은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끝으로 레비는 엘리아스가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덧붙였다. 


어느 날 SS가 점호도 아닌데 수감자들을 집합시켰다. 


‘거기에 너무도 익숙한 교수대가 탐조등 불빛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교수형은 대부분 평범한 범죄 – 식당에서의 도둑질, 태업, 탈출 시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지난 달 비르케나우 화장터의 소각로 하나가 폭파되었다. 비르케나우에 있는 우리처럼 무기력하고 지친 노예 인간들 수백 명이 스스로 행동할 힘을 찾았고 증오의 결실을 맺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 앞에서 처형될 남자는 모종의 방식으로 그 반란에 가담했다. 그는 비르케나우의 반역자들과 접촉하고 우리 수용소로 무기를 옮겼으며, 우리 수용소에서도 즉시 반란을 일으킬 음모를 꾸몄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 우리가 보는 앞에서 죽을 것이다. 독일인들은 이 외로운 죽음이, 그를 위해 마련된 인간의 죽음이, 그에게 치욕이 아닌 영광을 가져다주리라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었던 독일인의 연설이 끝나자 다시 처음의 쉰 목소리가 들렸다. “Habt ihr verstanden?” (알아들었나)

여기에 “야불”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누굴까? 모두이자 아무도 아니었다. 대답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우리들의 저주받은 체념이 하나의 형체를 부여받은 듯했다. 그것이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하나의 목소리로 변하기라도 한 듯했다. 그러나 우리는 죽어야 할 사람의 고함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무기력과 복종의 두텁고 낡은 장막을 뚫고 들어와 우리들 내부에 살아남은 인간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았다.

“Kamaraden, ich bin der Letz!” (동지들, 내가 마지막이오)

비굴한 무리인 우리들 속에서 어떤 목소리, 어떤 신음소리가 들렸다고, 동의의 신호들이 나타났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우리는 구부정하게, 음울하게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독일인이 명령을 할 때까지 모자를 벗지 않았다. 뚜껑문이 열렸고 남자의 몸이 무시무시하게 덜렁거렸다. 악대가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우리는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으로 전율하는 사람 앞으로 열을 지어 다시 행진했다.’ 


이 가슴 아픈 일화는 레비로 하여금 수용소에서 인간성이 완전히 소멸해버린 것 같다는 수치심을 느끼게 만든다. 훗날 대중 강연에서 왜 유대인들이 자살하거나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든 반란은 어떤 식으로든 특권을 가진. 그러니까 신체 상태나 정신 상태가 다른 일반 포로들보다 훨씬 나은 포로들에 의해 계획되고 지휘되었다. 이건 놀랄 일이 아니다. 고통을 덜 받는 사람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건 처음에는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다. 수용소 밖에서도 룸펜프롤레타리아가 투쟁을 선도하는 일은 드물다. ’거지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저항에는 어떤 에너지가 필요하다. 자살도 우울증이 어느 정도 호전된 시기에 급격히 증가한다. 레비는 수용자들이 거듭된 폭력과 끔찍한 삶의 조건 앞에 완전히 무기력해진 상태였다고 말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교체되면서도 늘 똑같은 침묵 속에서 행진하고 힘들게 노동하는 익명의 군중, 비인간들이다. 신성한 불꽃은 이미 그들의 내부에서 꺼져버렸고 안이 텅 비어서 진실로 고통스러워할 수도 없다. 그들을 살아 있다고 부르기가 망설여진다. 죽음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지쳐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 앞에서 그들의 죽음을 죽음이라고 부르기조차 망설여진다.’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의 작은 개념으로, 생각의 씨앗으로 누군가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결국에는 수용소 체제를 향해 가게 되어 있다고 레비는 말한다. 


‘비인간적인 명령을 부지런히 수행한 사람들을 포함한 이런 추종자들은(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타고난 고문 기술자들이나 괴물들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괴물들은 존재하지만 그 수는 너무 적어서 우리에게 별 위험이 되지 못한다. 일반적인 사람들, 아무런 의문 없이 믿고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기술자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 


아우슈비츠는 단순히 과거에 벌어진 사건이 아니며 현재에도 끊임없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인간이라면 이렇게까지는 할 리가 없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전부 실제로 행해졌다. 


강제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자살하는 예는 드물지 않다. 레비는 이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국민 작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자살은 서구 사상계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다. 레비가 아우슈비츠에서 파괴된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는 일에 몰두해왔기 때문이었다. 그가 자살했다는 사실은 인간성 회복이라는 인류의 과제에 적신호가 켜졌음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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