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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 아른헴, 네덜란드 민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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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g lieve mama



아른헴은 암스테르담보다 독일 국경이 더 가까운 곳이라 네덜란드로 여행을 온 한국인들은 잘 오지 않는 곳이지만, 크뢸러뮐러 미술관(Kröller-Müller Museum)만으로도 한번쯤 방문할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야.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이야기는 생레미드프로방스에서 보낸 편지에서 지겹도록 했으니, 오늘은 크뢸러뮐러 미술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 편지를 보내볼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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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의 친구인 R의 추천으로 오게 된 곳 인데, 그는 매년 기념일마다 아내와 함께, 이제는 아이들도 데리고 이 곳을 방문한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없어지지 않을 곳이라고 하더라. 우리 역시 내년 결혼식 장소를 문화유산으로 보호되는 한옥 건물로 정한 이유도 비슷하거든. 화려하게 반짝이는 웨딩홀은 아니지만 소박해도 운치있는 작은 한옥에서 오래오래 기억할 결혼식을 하고 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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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판 ‘한국민속촌’과 같은 곳이 바로 여기에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이 곳 이야기를 하면 옛날에 한번씩 가봤다고 할 정도로 꽤 오래된 곳이야. 암스테르담 근처에 있는 잔서스한스에 가도 풍차는 볼 수 있지만 네덜란드의 오래된 생활상을 더 자세히 보고 싶다면 여기만한 곳이 또 없거든. Open air museum(Openluchtmuseum), 말 그대로 네덜란드 전통 생활과 문화를 실제 크기로 재현해 놓은 야외 박물관이야. 그렇잖아도 작디 작은 네덜란드를 미니 사이즈로 압축해서 꾸며둔 마을 같은 곳이지.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상업과 무역이 발달한 나라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이 곳을 둘러보고 나면 이 곳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농부들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돼. 예상외로 네덜란드는 지금도 농업 강국이고,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면 농촌 마을 같은 모습이 많이 보이거든. 특히나 내가 살고 있는 노르트브라반트에서는 조금만 차를 타고 나가도 차도 위 트랙터라든가, 풀을 뜯는 말과 양, 심지어 알파카도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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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행의 시작점은 입구 바로 앞에 위치한 트램 정류장이야. 아른헴을 지나다니던 트램들 중 오래된 트램들을 이곳에 옮겨서 설치했어. 빈티지 느낌이 나는 내부 장식도 그렇고 역무원으로 꾸며 입은 자원봉사들의 의상, 의자에 앉으면 삐죽삐죽 나와있는 의자 스프링들이 이들의 나이를 짐작하게 해. 모두 다르게 생긴 트램 모습 때문에 내가 원하는 트램을 타려고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면, 마치 타요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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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끝에서 끝까지 닿는 트램을 타거나 걸어서 구경을 하면 되는데, 이곳에 모여있는 건물 하나하나가 실제 크기로 재현된 모델 하우스 같은 느낌이야. 안에 놓여진 소품들도 모형이 아니라 실제로 쓰던 물건들을 기증 받은 것들이고,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집처럼 꾸며져서 남자친구도 어릴적 돌아가신 할머니 댁에 다시 온 것 같다고 했어. 네덜란드 역시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전통 농가, 상점, 풍차, 작업장 등이 급격히 빠르게 사라졌거든. 이 곳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들은 네덜란드 곳곳에 있던 것들이 허물어지기 전에 옮겨와서 보존한 것이라 쓰이던 모습 그대로 생동감 있는 박물관이지. 집뿐 아니라 학교, 우체국, 식당, 교회 같은 건물들도 통째로 옮겨와서 이 박물관 자체가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하나의 작은 시골 마을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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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옮겨 놓았기 때문에, 박물관 안에서 가축으로 기르던 닭이나 말, 돼지도 함께 구경할 수 있어. 네덜란드 농가들은 집과 가축을 키우는 헛간이 한 건물에 연결돼 있는 경우가 많았어. 추운 겨울에도 가축을 돌보기가 편하고, 가축이 내뿜는 열기가 집을 따뜻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래. 전통 의상을 입고 부엌에서 빵을 구워서 나눠주기도 하고 낫이나 쟁기 같은 옛 농기구를 사용해서 농사 짓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방문자와 함께 콩을 심어보는 등 체험형 이벤트도 자주 이뤄지는 편이야. 한 켠에는 텃밭도 있는데 식용 작물과 약초 외에도 마법을 위한 식물도 있다니 재밌지 않아? 내가 방문했을 때에는 전통 의상을 입은 아주머니가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사과 시럽 레시피로 만든 사과 시럽을 끓여서 나눠주고 계셨어. 어두운 곳에서 솥에 시럽을 끓이는 모습이 마치 동화 속 마녀가 마법 시럽을 끓이는 것 같았어. 네덜란드의 애플파이도 맛이 좋은데, 사과가 흔했는지 어쩐건지 이유는 몰라도 사과를 사용한 음식들이 발달했는지 상큼하니 맛이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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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은 주로 암스테르담이나 로테르담 같은 운하 도시를 위주로 방문하기 때문에 이런 농가들을 볼 기회가 흔치 않아. Grachtenpand라고 불리는 도시 주택은 세금 때문에 좁고 길게 지어졌는데 도시와 농촌의 생활상은 판이하게 다른 만큼 주택의 모습도 완연한 차이가 있어. 지금도 네덜란드의 집들은 다층의 건물을 층별로 세대가 나눠 쓰기 보다는 세로로 나눠 쓰는 형태거든. 한 세대가 쓰는 각 층의 면적을 합치면 넓지만 대지 면적은 좁기 때문에 하나의 용도로 한 층을 쓰는 것 같아. 이런 이유로 1층엔 거실, 주방, 계단, 손님용 화장실 같이 공용인 공간이 있고 그 위로 개인 침실이나 욕실, 서재 등이 위치하는 식이지. 그래서 다른 집에 방문해도 개인 공간인 침실이나 서재 등을 보게 되는 일은 극히 드문 것 같아.






농가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지만 대표적인 농가 스타일인 Frisian Head–Neck–Body Farmhouse(Kop‑Hals‑Rompboerderij)만 봐도 농작물을 저장하기 위해 최대한 큰 헛간을 넣어. 옆면에서 보면 누운 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 집 본채로 가족들의 주거공간이고, 목은 집과 축사의 연결 통로로 작업장으로 쓰이고, 부엌에서 이어지는 몸통은 큰 헛간으로 가축을 기르고 수확한 작물들을 보관하는데 쓰였어. 지붕만 봐도 헛간 부분은 초가지붕이 높게 솟아있고, 주거용 건물은 낮고 경사진 기와 지붕을 써서 멀리서 봐도 금방 구분 할 수 있지. 헛간과 주거공간이 분리는 되어있지만 한 건물에 연결 되었다는건 바로 이런 의미야.






이 곳에서는 네덜란드의 전통 마을뿐 아니라 이곳에 터전을 잡은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주거공간이나 생활상도 함께 볼 수 있어. 네덜란드는 17세기부터 약 350년간 인도네시아를 지배하며 무역과 식민지 통치를 했던 영향으로 네덜란드에 인도네시아 문화가 일부 남아있지. 네덜란드어를 쓰는 수리남도 네덜란드의 식민지였지만, 이 곳으로 넘어온 건 수리남의 문화라기 보다는 네덜란드 때문에 수리남으로 이주한 인도네시아계 이민자들이 수리남에 살다가 네덜란드로 오게 되어 변형된 인도네시아 문화가 자리 잡은 것으로 보여. 인도네시아는 지역에 따라 수많은 언어를 사용해서 네덜란드어를 쓰지 않는데 ‘수리남’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면서 남자친구가 한국 드라마에서 네덜란드 말이 들린다며 재밌어하더라구. 두 나라는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지리적으로 너무 멀어서 둘 사이에 얼마나 관계가 있겠나 싶었거든. 수리남 인구의 15%에 가까운 인구가 자바계라고 하니 길가에 붙은 ‘수리남 와룽’(와룽: 인도네시아 구멍가게) 이라는 식당이름이 이해가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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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영국에 인도계 이민자들이 많은 것처럼 네덜란드에는 인도네시아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어. 독일 대학원에서 인도네시아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는데, 실제로 그들의 친척들 중 네덜란드에 사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네덜란드를 여행한 적이 없는데도 나보다 네덜란드에 대해서 훨씬 많이 알고 있었어. 인도네시아의 삼발 소스나 사테소스는 네덜란드 현지 입맛에 맞춰 맛이 조금 바뀌긴 했어도 네덜란드인들이 흔하게 즐기는 소스 중 하나이기도 하고 길거리를 걷다보면 독일에 베트남 식당이 많듯이 이 곳에는 인도네시아 식당을 자주 볼 수 있어. 발리에서 먹었던 땅콩 소스가 발린 사테라든가 나시고렝, 바미고렝 같은 음식들도 흔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야. 다소 심심한 맛의 유럽 음식들에 지친 나 같은 한국인에겐 한줄기 빛 같은 음식들이지. 네덜란드의 대표음식으로 Stamppot이라는 으깬 감자요리가 있기는 하지만 나는 네덜란드에서 맛집을 찾는 이들에게 차라리 인도네시아 음식을 추천하곤 해. 거기에 디저트로, 네덜란드식으로 사과가 큼직큼직하게 들어간 애플파이에 휘핑크림을 잔뜩 얹어먹으면 완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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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박물관의 꽃 기념품 가게에 들러서 오늘 맛본 사과 시럽과 네덜란드의 전통 나막신을 기념으로 하나씩 들고 돌아가자구!




Veel lie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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