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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Nov 29. 2021

팔불출 우리 엄마 아빠

첫 책이 출간되고...

시집가기 전 날, 내 짐을 박스에 담아 신혼집으로 옮기던 날.


엄마, 아빠, 그리고 나는 장롱 위에 올라가 있어 꺼내볼 엄두도 나지 않던 몇 개의 커다란 박스를 열어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내가 받았던 상장들, 태권도를 하며 받은 트로피, 그리고 어릴 때부터 꾸준히 적어왔던 그림일기와 일기장들이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었다. 


아차 싶었다. 눈물샘을 여는 수도꼭지가 열릴 것 같은 기분.


"이런 거 신혼집 안 가져가도 돼. 짐만 되니까, 여기 놔두던가 아니면 재활용해요."


엄마 아빠 앞에서 감성적이 되기 괜히 부끄러웠다. 추억에 젖어 엄마 아빠 젊었던 시절, 나 어렸던 날들의 이야기꽃을 피우며 마음이 아련해지기 싫었던 것 같다. 그것도 결혼식 전 날에.


엄마랑 아빠는 아쉬워하셨지만 그래도 내 말에 동조해주셨다. 


"맞아. 이런 거 이제는 필요 없지."


순간, 엄마가 그림일기장 하나를 펼쳐보셨다.


오늘은 엄마가 슈퍼에 가서 양파를 사 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나는 마늘을 사 갔다. 엄마 죄송해요.


삐뚤빼뚤 글씨와 꾹꾹 눌러 그린 그림이 우리 모두를 웃게 했다.


그리고는 우리의 추억상자는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내 인생을 통틀어 제일 후회되는 일 중 하나인 그날의 일.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엄마 어릴 적 이야기를 매일 밤 들려주는데, 우리 아들에게 보여주었으면 배꼽을 잡으며 웃었을 일기장들과 존경심 +1을 획득할 뻔했던 수많은 상장들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왜 그때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했고,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행복했던 어린 날의 추억을 상기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아마도 너무나도 애틋하고 아름다운데 돌아갈 수 없어 안타깝고 슬픈 감정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그것도 시집가기 전 날에.


외국 살이를 하며 떨어져 있었고, 내 가정을 꾸리고 내 새끼를 키우는 엄마의 삶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는 나. 그런 나에게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네 가족이 먼저지. 우리 딸 힘들겠다." 위로해주셨고, 내가 하는 아주 사소한 일들, 예를 들면 주말에 같이 식사를 하거나, 엄마 아빠 집에 가서 잘 안 되는 컴퓨터를 고쳐주는 등의 일을 '효도'라고 칭하며 굉장히 고마워하셨다. 


첫 책이 출간되고, 책의 출간을 누구보다도 가장 기뻐해 주셨던 것이 바로 엄마 아빠였다.


수년 동안 인연이 끊긴 동창들에게 전화를 돌리셨고, 아빠는 당신이 활동하는 그랜져 카페에도 딸이 책을 냈다는 홍보글을 올리고 계셨다. 


'으... 그러다가 강퇴당하시면 어쩌지.' 


걱정도 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게 엄마 아빠에겐 참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오늘은 교보에서 몇 권, 어제는 YES24에서 몇 권, 내일은 알라딘이랑 영풍문고에서 몇 권씩 사시겠다며 돈을 안 아끼시길래, 그럴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 돈 벌면 호강시켜 드리겠다 했는데... 나는 끝까지 받기만 하네."


나 자신이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늘아, 부모님껜 이런게 행복인 거야. 딸이 책을 냈는데, 얼마나 좋으시겠어."


남편이 옆에서 위로를 한다.


나는 언제쯤 우리 엄마 아빠 호강시켜드릴 수 있을까? 엄마 아빠가 참 보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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