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미술 하기 싫어
"요즘 아이들 참 불쌍해요. 엄마들이 이것저것 시켜서 밤 9시까지 학원을 돌더라고요."
전문적으로 중고등학생 과외를 하는 동생의 눈이 비친 극성 엄마의 모습.
"근데 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 그럼 학원을 안 보내야 할까? 아이 스트레스 주면서까지 공부시키고 싶지는 않은데."
라는 나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
"그래도 학원 가기는 가야겠죠."
부모가 아닌 사람들 눈에, 부모는 자식 교육에 눈먼 극성으로 보이나 보다. 그렇다고 내 자식만 안 보내고 안 시킬 수도 없는 현실인데 말이다.
내 자식 편하라고 놀게만 한다고 좋은 걸까? 밤 9시까지 학원을 돌리지 않으면 나쁜 엄마가 아닌 것일까?
정답이 없는 육아, 자식 교육에 세계에서 흔들리지 않고 소신을 지키기는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아직 아이가 여섯 살이라 무시무시한 학원에 세계를 접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 아이도 많은 사교육에 이미 발을 담그고 있다.
운동은 시켜야지 하는 생각에 다섯 살 때부터 축구교실에 다니고 있고, 악기 하나는 시켜야지 하는 생각에 피아노도 2년째 이어가고 있다. 아이가 다니고 있는 유치원 바로 옆에 교육센터가 있어서 연계로 다니기 편한 상황이었고, 내가 일을 하고 있어 아이는 어떻게든 원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유치원 통합반에서 시간 때울 바에야 그냥 뭐라도 가르치자.
그렇게 해서 다섯 살 션이의 유아 사교육은 시작되었다.
아이는 주 5일, 축구, 피아노, 미술, 쿠킹, 코딩을 배우게 되었다. 사교육비도 만만치 않게 들었다.
주변 사람들은 아이가 너무 힘들지 않을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유아 학원은 놀이식이라 엄청 힘들게 뭐 시키지는 않더라고. 아이도 재미있어하고."
꼭 변명을 하듯 설명해도 아이가 짜증을 부리거나 문제행동을 보일 때면 '애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라는 시선과 좀 쉬게 해야 한다는 조언들이 쏟아졌다.
"션아, 이것저것 배우는 거 혹시 피곤하거나 힘드니?"
"아니, 다 재미있어."
다행히 아이는 배움에 욕심이 있었고, 많은 수업을 배운다는 것을 스스로 뿌듯해하고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미술수업은 나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수업 중 하나였다.
매 수업 후 선생님이 찍어서 보내주시는 사진은 나를 기쁘게 하기 충분했다. 만족스러웠다.
'아, 미술 진짜 잘 시켰다.'
이렇게 미술을 배우고 7-8개월이 흐른 어느 날, 아이는 말했다.
"엄마, 나 미술 그만할래."
"왜?"
"미술 재미없어."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의 계획대로 잘 따르던 아이에 입에서 무언가 그만하고 싶다고 했던 것은 처음이었다.
"미술이 왜 싫어?"
"그냥 싫어. 지루해."
미술 선생님은 상냥하신 분은 아니셨다.
"션, 유치원이나 학원은 사랑받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 무언가 배우러 가는 곳이야. 선생님이 혹시 안 좋아서 그래?"
"아니, 그림을 다 그렸는데 자꾸 더 그리라고 해."
아이와의 대화 후 선생님과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아이가 왜 미술을 지루해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미술은 50분 동안 작품 하나를 완벽하게 완성하는 시간, 선생님은 아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조금 더 해와. 여기 조금 더 그려봐. 저쪽 흰색 도화지 보이잖아. 좀 더 그려와."라고 계속 주문을 했고, 그것이 아이에게는 즐겁지가 않았던 것이다.
내 생각에는 다 끝났는데 왜 자꾸 더 하라고 하는 거지? 아이는 의아했고 결국 미술을 싫어하게 되었다.
엄마인 내 입장에서 나는 미술이 참 좋았었다. 대충대충 끝내려는 모습이 자주 보이던 아이가 완성해온 작품들은 꽤 보기 좋았고, 나는 아이가 집중하는 법, 완성도 있게 무언가를 마무리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욕심이었다.
제대로 된 완성품을 보고 싶다는 엄마의 욕심.
그렇게 우리 아이는 미술을 그만두었다. 그리고는 다른 것을 배우고 싶다 해서 새로운 것을 시작했고 그것을 또 아주 좋아했다.
요즘 아이의 미술 실력은 그저 그렇다. 색칠을 할 때 칸 안에 예쁘게 색칠하지 못하고 삐뚤빼뚤하다. 하지만 그래도 종종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원할 때 그리고, 원할 때 그만둔다.
어른의 눈에는 한없이 부족해 보이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아이가 집에서 즐기면서 그린 작품들.
유아 사교육.
나는 아들 션이 다양한 것을 배워보고 접한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아이는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두 번의 피아노 연주회를 했고, 집에서도 종종 피아노 연주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최근 있었던 축구 경기에서는 골을 넣어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자기가 드리블을 할 때 수비수들이 도미노처럼 넘어지며 아무도 자기를 막지 못했다며, 그때 순간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 해도 재미있기만 하다.
꾸준한 배움, 유아 사교육은 어느새 아이에게 단단한 내공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수시로 들여다봐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시키는 사교육이 진짜 아이가 즐거워서, 혹은 아이에게 도움이 될까 봐 보내는 건지, 아니면 엄마의 욕심인 건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