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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북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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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느리 Mar 04. 2024

꼭 갈게, 약속한 아들이 안왔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북경의 한 국제학교는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교육 참여를 지향한다.


나는 매주 한 번씩 점심시간에 학교 도서관에 가서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봉사의 참여하기 위한 특별한 조건은 없다. 그저 자녀에게 수천 권의 책을 읽어온 엄마라는 그 신뢰하나로, 학교는 아이들의 소중한 시간을 부모들에게 맡긴다.


처음 책 읽어주러 간 날 6-7명의 반 친구들을 우르르 데려온 션. 나는 무엇보다 션이의 친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마치 영혼을 팔듯 목소리 연기를 펼치며 책을 읽어주었다.


션이는 나의 리딩에 집중하기보다는 친구들이 재미있어하는지 관찰했고, 중간중간 "Are you having fun?" 하며 친구의 반응을 묻기도 했다.


웨인은 정말 너무 재미있었대. 보히토는 별 말 없었고, 윌리엄은 Millions of Cats이 더 재미있었대.


나의 리딩에 대한 평가와 피드백을 싹 받아온 션이는 그다음 주에도 책 읽어주러 올 것을 당부했다.



이후로도 런치타임 책 읽기는 쭉 이어졌다. 한 번은 반 여자아이들 두 명을 데려왔는데, 그 둘은 한 5분 듣다가 가버렸다. 책을 재미있게 읽어줘서 션이 기 좀 살려주고 싶었는데, 다른 학년의 자그마한 여학생이 "Tiger vs Lion"이란 책을 읽어달라고 가져오는 바람에 어흥 어흥~ 이러다가 놓쳐버린 두 여학생.


그 후로도 나의 리딩은 계속되었다.


하루는 션이가 안 왔다. 점심시간 끝나고 복도에서 마주쳤는데, "아 끝났어? 미안. 가려고 했는데." 하며 머쓱해했었다.


그리고 오늘도 리딩이 있었다. 션이는 안 왔다.


도서관에 항상 오는 학생들, 이제는 익숙해서 눈만 마주쳐도 반가워라는 텔레파시를 주고받는 우리들. 션이 안 오네라는 생각은 까맣게 잊고 아주 감동적인 책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읽어주고 있는데, 션이가 왔다!


누가 봐도 토마토파스타를 먹은 것 같은 붉어진 볼과 입, 대여섯 명의 친구들과 같이 우르르 도서관에 들어와 산만하게 여기저기 자리를 잡는다. 한 30초 대충 듣다가 "엄마, 나 가도 돼? 책이 좀 지루해서. 다음에는 꼭 올게" 하고는 친구들과 함께 우르르 다시 나가버렸다.


가겠다는 말에 어어~ 대충 대답해 주고 다시 읽던 책과 아이들의 눈빛에 집중했던 나. 


그래도 엄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분이라도 왔다간 아들을 기특하다 해야 하나? 엄마보다 친구랑 노는 게 더 좋은 아들의 성장을 자랑스러워해야 할까?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으며 약간의 허무함을 느꼈다.


나는 계속 런치타임 리딩에 갈 생각이다. 션이가 안 와도 괜찮다. 반가운 다른 학생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움이므로.


그래도 와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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