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를 트는 법

결혼 10년차, 여전히 아이는 없습니다만.

by 릴리리

결혼 10년차,

여전히 아이는 없습니다만.



4.

방귀를 트는 법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남편 앞에서조차 풀메이크업 상태로 지내며 그걸 자랑스러워 하는 사람. 물론 이렇게까지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사람은 잘 없지만, 의외로 방귀를 트지 않는 사람은 많은 것 같다. 신혼이거나 한 경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방귀 같은 생리 현상을 마구 표출하는 건 좋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남녀 사이엔 ‘신비주의’가 필요하다는 사람들이다. 결혼해서 가족이 되면 더 이상 ‘남녀 사이’라고 보긴 힘들지만. 왜, ‘가족끼리 무슨 키스예요’하는 말도 있지 않은가.


매일을 같이 생활하면서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을 참는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신혼 때에는 그래서 방귀를 안으로 삭이고 그랬다. 화장실에 가서 뀌어도 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방귀를 튼 것은 남편이 먼저였다. 아직 그 순간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여느 때처럼 함께 나란히 앉아(정확히 말하자면 남편은 모로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가 난 것은 그 때였다. 뿌우웅. 맑고 청명한 소리. 나는 너무 놀라서 남편의 얼굴을 쳐다봤다. 남편은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뻔뻔함이 더 놀라웠다. 실수라면 멋쩍어하는 기색이 조금이라도 있을 법한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오빠, 꼈어?

응?


남편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방귀 뀌는 걸 봐왔으면 새삼스레 왜 그러느냐는 듯한 태도였다.


와- 오빠, 지금 방구 껴놓고 그렇게 시치미 떼는 거야?

그게 왜?


남편은 킬킬 웃었는데, 사실 그게 뭐 잘못된 행동도 아니고 딱히 냄새도 안 나서 그 날은 그렇게 넘어갔다. 그래도 그 충격은 가시지 않아 9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아니 오히려 어제 일보다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사실 어제 우리가 무슨 일을 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태연자약한 남편의 행동에 힘입어 그 후로는 나도 있는 힘을 다해 남편 앞에서 방귀를 뀌게 됐다. 소파에 누워 있는데 일부러 얼굴에다 뀌고 도망가기도 하며, 유치원 아이들처럼 유치하게 놀고 있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앞에서 방귀를 뀌고 냄새를 평가하고 오늘의 대변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말하지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불쑥불쑥 들어가지는 않는다. 변기에 남편이 앉아서 뭘 하건 상관없이 바로 옆 세면대에서 양치를 하거나 세수를 하는 아내도 있는데,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남편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하더라도 지켜야할 선이 있다. 가까울수록 그 선을 지키기가 어렵다. 우리 모두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화장실을 동시에 같이 쓸 수도 있는 남편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남편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서로 싫어하는 부분을 존중하고 맞춰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남편이 처음으로 방귀를 뀌었을 때 내가 정색을 하며 화를 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결국에 트기는 했겠지만 남편도 무안하고 감정도 상하고 그랬을 거다. 왠지 ‘기-승-전-내자랑’처럼 된 기분이지만, 뭐 이렇게 서로 맞춰가는 거 아닐까.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남편이 나에게 맞춰주는 게 훨씬 더 많다. 나는 나 같은 여자랑은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내 남편은 참 좋은 사람이다.

여보 나 잘 했지?

오늘도 우리 집 공기는 청정하다

<결혼 10년 차, 아이는 없습니다만>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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