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비슷하면서 또 다른

결혼 10년차, 여전히 아이는 없습니다만

by 릴리리

결혼 10년차,

여전히 아이는 없습니다만.



5.

취향, 비슷하면서 또 다른


함께 살아가면서 취미가 비슷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취미를 함께 할 평생의 친구를 얻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직 사귀기 전, 남편은 내 아이팟(아이폰이란 것이 세상에 나오기 전이었다)에 있는 방대한 곡 목록을 보고 반했다고 했다. 그 당시 내 아이팟에는 스웨이드, 뮤즈, 플라시보, 더 킬러스, 스노우패트롤, 슬로우다이브, 아케이드 파이어, 카메라 옵스큐라 같은 뮤지션의 곡들이 들어 있었다. 중학생 때 즐겨들었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노래도 있었다. 남편은 우리가 음악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귄 첫 해, 우리는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갔다. 그 해는 펜타포트가 처음으로 열린 해였다. 그리고 2~3년 사이 음악 페스티벌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우리는 많은 페스티벌을 함께 했다. 쌈싸페도 가고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도 가고 했지만 매년 빠지지 않고 가는 건 락페였다. 그만큼 우리는 락키드로서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결혼식 노래는 직접 골랐다. 우리는 화창한 봄날 결혼했다. 역삼동 주택가에 위치한 하우스웨딩 장소에서였다.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한 곳으로, 잔디가 깔린 마당에서 식을 올렸다. 그 전날은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왔는데 결혼식 당일은 해가 쨍쨍하니 맑았다. 다행이었다.


남편이 고른 신랑 입장곡은 더 케미컬 브라더스의 ‘Saturate’였다. 나는 신부 입장곡으로 스웨이드의 ‘The Wild Ones’를 골랐다. 담백한 어쿠스틱 기타 뿐인 전주가 끝나면 나오는 브렛 앤더슨의 울림 있는 보컬이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 웨딩 드레스를 입고 웨딩 마치를 걸으면 멋질 것 같았다. 또 전반적으로 푸른 초원을 연상시키는 곡 분위기는 야외 웨딩에도 제격이다. 무엇보다, 곡의 가사가 너무 좋다.


We’ll be the wild ones

runnung with the dogs today


함께 할 개는 없지만 우리는 앞으로 오늘처럼 이렇게 함께 할 거라 생각했다.


축가로는 내가 노래를 부르고 남편이 기타를 쳤다. 영화 <원스>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Falling Slowly’였다. 스노우 패트롤의 ‘Chasing Cars’를 하고 싶었는데 대중성을 생각해서 ‘Falling Slowly’를 골랐다.


퇴장곡은 트래비스의 ‘Closer’였다. MGMT의 ‘Time To Pretend’랑 고민했었는데 ‘Time To Pretend’는 가사 내용이 약 빨고 뭐 그런 거라서 트래비스로 골랐다. ‘Closer’는 예쁜 사랑노래다. 맑은 봄날에 이 노래를 배경으로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걸으면 꼭 영화의 한 장면 같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우리는 음악에 유난을 떨었다. 그리고 음악 취향이 참 잘 맞는다고 여겼다.


점점 알면 알수록 우리의 음악 취향은 너무도 달랐다. 남편은 하드한 메탈 음악을 좋아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뮤지션은 메탈리카와 드림씨어터였는데, 나는 아무리 들어도 메탈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EDM도 좀 더 서정적인 쪽이 좋았다. 나는 기본적으로 음울함을 베이스로 하는 브릿팝을 좋아했다. 남편은 그런 음악을 가리켜 ‘기승전결이 없다’고 했다. 무언가 터질 것 같은데 안 터지고 끝난다는 게 남편의 평가였다.


어떤 공연에도 같이 가던 우리는 마룬5를 기점으로 따로 다니기 시작했다. MGMT, 이승열 등의 공연을 혼자서 보러 갔는데, 특히 이승열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땐 정말 같이 오지 않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석이 있었지만 등받이가 없어서 2시간 동안 너무너무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좌석과는 별개로 공연 자체는 좋았다. 이승열의 음악을 좋아한다.


남편은 메탈을 좋아하지만 음악을 매우 폭넓게 듣는 편이라 케이팝도 자주 들었다. 단순히 노래만 듣는 게 아니라 회사 등 업계 전반을 잘 알고 있어 남편의 설명을 들으며 가요 프로그램을 보는 건 재미있었다.


반면 나는 음악을 편협하게 들어서 정말 마이너한 것만 팠다. 지금도 ‘Clap Your Hands Say Yeah’를 즐겨 들었다고 놀림을 받는다. 나름 뉴욕 씬에서 유명한 애들이어서 좀 억울한 면도 있지만 솔직히 마이너한 건 맞아서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남편의 영향으로 초등학교 이후로 듣지 않았던 케이팝도 듣게 됐다. 방탄소년단에 빠지게 된 것도 다 남편이 그들의 음악을 듣고 유튜브로 무대 영상을 보여줘서 그런 거다.


아무튼 서로 다른 취향을 존중하며 영향도 받아가며 살아간다.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케이팝 박사와 십년을 살다보니 2010년대부터의 가요는 제법 알고 있다. 사실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최신가요에 빠삭한 시기다.


그래서 프로듀스X101을 고대하고 있다. 닳고 닳은 서바이벌 콘셉트에 어린 소년들에게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것이 눈살 찌푸려져 늘 욕하면서 보지만 원래 욕하면서 보는 게 재미있지 않은가?

005_음악취향.png 음악애호가의 끝은 재즈라지만 우리는 당분간 가요에 머무르는 듯.

<결혼 10년 차, 아이는 없습니다만>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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