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차 아이는 없습니다만
결혼 10년차,
여전히 아이는 없습니다만
7. 밥 해먹기의 괴로움
요리를 좋아했다. 원래부터 먹는 것을 좋아했다. 어렸을 적 엄마가 음식을 그릇에 담아주면 항상 오빠 것이 더 많지 않나 흘깃거리곤 했다. 오빠는 나보다 4살이나 더 많으니까 나보다 많이 먹는 게 당연했는데도 내 것이 조금이라도 적거나 작아 보이면 심통이 났다. 굉장한 식탐꾼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미식의 세계에 눈뜨기 시작했다. 남들이 잘 모르는 맛집을 찾아 다니고 소개하는 데서 기쁨을 느꼈다. 생애 첫 직장도 미식과 여행을 다루는 잡지사였다. 누군가 내게 '어느 동네에 뭐가 맛있냐'고 물어보면 입맛과 분위기와 가격대를 고려해 성심성의껏 가게를 추천해줬다.
결혼을 하면서 드디어 내 주방이 생겼다. 엄마는 요리를 잘 하셨고 굴소스나 두반장, 홀그레인 머스타드처럼 당시로서는 그렇게 흔하지 않았던 재료를 이용해 요리를 많이 해주셨다. 때문에 나도 냉장고에는 늘 그러한 소스들을 구비하고 살았다. 처음 장을 보러 갔을 때, 맛술을 사는 내게 '도대체 이런 걸 왜 사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남편도 이제는 나서서 '맛술이 떨어지진 않았냐' 묻게 됐다.
어릴 적부터 엄마 손 잡고 따라다니던 코스트코도 이제 남편이랑 둘이 가서 먹고 싶은 재료를 살 수 있게 됐다. 난 늘 다양한 종류의 치즈를 원했다. 브리, 까망베르, 체다, 고다, 에담, 에멘탈, 몬테레이 잭, 페퍼 잭.
요리는 즐거웠다. 좋아하는 재료를 아낌없이 넣을 수 있었고 원하는 만큼 양껏 만들 수도 있었다. 늘 밥을 먹으며 다음 끼니를 생각했다. 이 다음에는 뭘 해먹지?
주부로서의 연차를 거듭하며 즐거웠던 요리는 괴로운 끼니 해결로 전락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해먹어야 할 끼니가 너무도 많다. 아침은 과일이나 요거트로 간단하게 먹어도, 점심과 저녁 2끼면 일주일에 2*7=14끼, 한 달이면 60끼, 1년이면 730끼이며, 9년이면 6,570끼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모든 끼니를 집에서 해먹지는 않지만, 외식을 하더라도 메뉴 선택이라는 거대한 난관이 남는다.
2. 먹는 게 늘 비슷비슷하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고등어구이, 보쌈, 제육볶음, 떡만둣국, 떡볶이, 파스타. 가끔 스테이크도 구워먹고 햄버그도 만들어 먹지만 그럴 때에도 그동안 먹어왔던 메뉴에서 벗어나지 않는 음식들이다. 물론 그 세월을 거치며 맛의 안정화는 찾았지만 아무래도 메뉴가 지루해질 수 밖에 없다.
3. 먹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생겼다. 이를테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거나, 덕질을 한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내 20대는 술과 음식에 미쳐서 덕질을 했다면, 30대에 와서는 이제 전혀 분야가 달라져 버리고 만 것이다.
여전히 먹는 것은 큰 즐거움 중 하나다. 다만 그 즐거움 순위에서 밀려났을 뿐이다. 여전히 지금도 매 끼니 맛있는 음식을 먹기를 바라고, 외식 장소를 고를 때도 꽤 까다롭게 구는 편이다.
얼마 전에는 앱을 하나 다운 받았다. '아내의 식탁'이라는 앱이다. 이걸 보고 곤약꽈리고추조림을 만들었다.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고, 이곳에서 메뉴 영감을 얻어 우리 집 냉장고 사정에 따라 어레인지 하는 식이다. 옛날엔 요리책이나 이런 종류의 앱이 별볼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메뉴가 궁색해질수록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종류의 앱으로는 '이밥차'가 꽤 역사가 깊은데, 사실 '아내의 식탁'도 한 달에 한 번 열어볼까 말까다.
김훈 작가의 책 <밥벌이의 괴로움>이 생각난다. 밥벌이도 괴롭지만 밥 해먹기도 괴롭다. 새삼스레 엄마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아이가 있었으면 좀 더 열심히 의무감에 요리를 했을까? 생각해보지만 답은 알 수 없다. 요즘은 반찬도 아기 음식도 잘 나오니까,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았을 거라고만 유추해볼 수 있다.
그렇게 오늘도 엄마가 담가준 열무김치를 꺼내 고추장에 참기름 두르고 달걀프라이를 올려 밥을 비벼 먹는다. 엄마가 없으면 이 열무김치는 누가 해줄까. 나는 김치를 한 번도 담가본 적이 없다. 김치 담그기를 배워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쩐지 엄마의 큰 사랑을 느끼면서 마무리. 엄마 사랑해요.
<결혼 10년 차, 아이는 없습니다만>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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