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얘기가 아닙니다
종종 듣는 이야기가 있다.
언니처럼 살고 싶어요.
선배가 부러워요.
니가 부럽다.
선생님이 부러워요.
부럽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심지어는 남자 선배들도 나를 더러 부럽다고 했다. 직장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없고 배를 곯을 일도 없으며 속 썩일 자식도 없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인생에 대해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었다. 그냥 하고 싶은 건 가능하면 하면서 살았다. 먹고 싶은 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공부하기 싫으면 안 했다. 물론 불가능한 범위의 것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적당한 나이가 되면 모든 일이 저절로 일어나는 줄만 알았다. 결혼할 때가 되면 하고, 아이를 낳을 때가 되면 아이가 생길 거라 생각했다. 주위에 비해 비교적 이른 나이인 스물여섯에 결혼을 해서 당장 애를 가질 생각이 없었지만, 언젠가는 가질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생리통도 거의 없는 편이었고, 생리도 매우 규칙적이었다. 아주 건강하고 튼튼한 자궁을 가져서,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중에 생길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도록 해주고 싶어 직장생활을 하면서 책을 조금씩 사모았다. 특히 세계문학전집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책은 내 어린 시절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밖에 나가서 뛰어노는 것보다 집안 책장에 꽂힌, 오래 되어 누렇게 색이 바랜 문학전집을 읽는 걸 아주 좋아했다. 좋아하는 책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읽을 만한 책이 없게 됐을 때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봤다.
생각해보면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선천적인 성격 탓도 있었겠지만, 내가 책을 좋아했던 것은 책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평생 읽은 책의 반 이상을 나는 열다섯이 되기 전에 다 읽었다. 많이 읽을 때는 아침에 학교에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수업 시간 내내 책만 읽었다. 하루에 세 권은 보통이었다. 내가 어떤 잘못된 개똥철학을 가지게 됐든간에, 그렇게 읽었던 많은 책과 그 경험은 내 삶의 큰 자산이자 보물이 됐다.
그 재산을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손을 뻗으면 잡히는 자리에 늘 책이 있기를 바랐다. 엄마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라고 했지만, 집에 책이 많았기 때문에 책을 좋아하게 됐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결혼 10년차, 여전히 아이가 없는 지금 나는 읽지도 않는 세계문학전집을 처분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몇 장 넘겨보고 팔지 못할 것을 안다.
남들 다 가진 걸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아니, 이렇게 말하면 결혼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발끈할테니 정정하자. 결혼한 많은 커플이 가진 걸 가지지 못했다고 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가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을 가지지 못한 것은 조금 슬픈 일이다. 책을 읽은 것 외에도 내가 어렸을 때 가졌던 좋은 경험들, 이를 테면 온가족이 함께 바닷가에 텐트를 치고 놀았던 일, 등산을 가 앞장서 뒷짐지고 손을 흔드는 아빠의 손을 달려가서 잡았던 일,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직접 오너먼트를 만들어 트리를 장식하던 일, 그런 사소한 어린 시절의 기쁨을 내 아이에게 물려줄 수 없어서 조금 슬플뿐이다. 우리는 아마 이렇게 영원히 행복하면서 또 슬픈 거라, 누군가는 말했다*. 나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갈 곳 없는 내 유산을 남기려. 사실은 그냥 관종인지도 모르겠지만.
*RM of BTS, 2017.11.30.
<결혼 10년 차, 아이는 없습니다만>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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