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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Jun 25. 2019

여름밤1 _ 여름밤의 개구리 소리

데일리릴리리 002.


여름밤의 개구리 소리를 좋아한다. 깜깜하고 고요하고 차가운 공기가 감도는 여름밤에 개구리가 개굴개굴 울고 있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평온함이 온몸을 감싸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렸을 때부터 개구리 소리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개구리에 대한 내 가장 오래된 기억은 도쿄에서다. 스무 살, 대학생 첫 여름방학 때 도쿄로 연수 프로그램을 하러 간 적이 있다. 학교에서 하는 3학점짜리 2주 수업이었다. 우리 과라면 1, 2학년 때 그 수업을 가는 것이 꼭 ‘인싸들의 코스’처럼 돼 있었다. 2주간의 수업이 이루어지는 곳과 숙소는 요요기공원 옆의 청소년 올림픽센터였다. 줄여서 ‘오리센’이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도쿄의 한여름은 무더웠다. 한국보다 훨씬 습하고 더웠다. 그래도 왼종일 걸어다녔다. 전철역 두어개 쯤은 가뿐히 걸었다. 당시엔 구글맵도 없었고 스마트폰은 더더욱 없었다. 가이드북에서 뜯어낸 종이지도를 보고, 표지판을 보고,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며 그렇게 걸어다녔다. 난생 처음 가본 일본에서 일본어를 쓰며 다니는 것은 재밌었다. 목이 마르면 자판기에서 105엔 하는 음료를 뽑아 마셨다. 시부야에서 숙소인 오리센까지 걷는 건 보통이었다.

어느 밤이었다. 어둠이 내린 요요기 공원은 조용하고 깜깜했다. 같이 숙소로 가던 친구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개구리가 있다고 했다. 친구는 개구리를 무서워했다. 나는 어느 쪽이었냐 하면, 오히려 개구리를 귀여워 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만지거나 하지는 못한다. 아무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친구의 비명에 덩달아 놀란 나는 괜히 친구한테 뭐라고 그랬다. 개구리가 뭐가 무서워. 하나도 안 무서워. 개구리가 더 무섭겠다.

그 전까지는 개구리를 만날 일이 전혀 없었다. 나는 남쪽의 지방 대도시에서 태어나 자랐고, 친가도 외가도 다 시내에 있었다. 어렸을 때는 시골 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셨던 외할아버지 때문에 여름방학이면 시골에 놀러가곤 했지만 그곳도 개구리가 우는 동네는 아니었다. 잠자리만큼은 많아서, 정글짐이나 풀 위에 앉은 잠자리를 잡으며 놀곤 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좋다고 느낀 것은 캠핑을 가서였다. 시원한 여름밤의 텐트 안에 누워 있자면 어디선가 개구리가 울었다. 아마 근처에 계곡이나 냇가나, 그런 것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논이 있었다거나. 개구리는 개굴개굴 울지 않았다. 그보다는 꾸륵꾸륵, 이런 소리에 가까웠다. 그 소리는 참 평화로웠다. 세상의 어떤 근심 걱정 고민도 없는 평온한 소리. 청개구리는 비오는 날 엄마 무덤이 떠내려갈까봐 슬퍼서 개굴개굴 운다지만, 개구리는 울지 않았다. 저들끼리 노래를 하며 그저 즐거울 뿐이었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그런 노래도 있지 않은가.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물론 손자 다음에 며느리가 오고 딸은 없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옛날 노래니까 뭐.

산과 바다가 가깝고 아파트 바로 앞에 텃밭 수준의 작은 논밭이 있는 마을로 이사오고 나서는 여름밤마다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든다. 때로는 거기에 황소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 둔탁한 꾸웩꾸웩 소리가 뒤섞여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청명한 꾸륵꾸륵, 개구리들의 노랫소리다.

때로 베란다에 누워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보며 개구리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어떤 것은 카시오페아, 밤 열시 쯤 낮은 곳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목성. 사람들이 보고 감상에 젖으라고 별들이 빛나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별을 보면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남십자성은 이곳에선 보이지 않는다.


개구리는 즐겁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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