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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Jan 03. 2020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

결국엔 다 다른 사람들

블로그를 뒤지다 3년 전 인간관계에 대해 써놓은 일기를 발견했다.

그 글에서 나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웹툰작가 순두부님은 "결혼하면 인간관계가 깔대기에 거르듯 걸러진다"고 하였다. 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그런 뜻이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여 지금까지도 오랫동안 아이가 없기 때문에 특별히 결혼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걸러지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20대를 지나 30대에 접어들며 "과연 이 사람과의 대화가 가치있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때문에 만나면 하는 얘기라곤 답이 나오지 않는 신세한탄 뿐인 친구들과는 점점 거리를 두게 됐다. 대단히 건설적인 이야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짜증만 치미는 대화라면 더 이상 할 이유가 있는가? 때문에 몇 번이나 시계를 봤지만 상대방은 그만둘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누구나 친구에게 신세를 한탄할 자유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들어도 말도 안되는 이유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공감해줄 능력은 내겐 없다.


그리고 아마, 나도 다른 사람의 깔대기에 의해 걸러지고 있을 것이다.




이 글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2년만에 보는 친구를 아주 반갑게 만났고, 헤어지면서는 '내가 왜 2년동안 그 아이를 만나지 않았는지'를 되새겨보게 됐다. 그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살아가면서 많은 순간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비교적 드셌던 20대에 비해서 30대의 나는 많은 것을 참고 견디고 감추는 법을 배웠지만 여전히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감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간관계라는 건 나이 먹어도 어렵다. 오히려 나이를 먹을수록 더 힘든 것 같다. 어렸을 적 매일 얼굴을 마주치던 친구는 이제 1년에 두어 번 볼까말까 한 사이가 됐고(소원해져서라기보다는 서로가 바빠서) 환경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관계가 쌓여간다. 어렸을 땐 다투고 화해하면 그만이었던 일이, 이제는 영영 보지 않을 정도로 큰 일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지인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편의상 그들을 알파벳으로 칭하겠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 넷이 만났는데,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다 A가 주도해서 가요리믹스 주점을 가게 됐다. 다른 친구들은 크게 내켜하지 않았지만 A가 워낙 클럽이나 춤추는 걸 좋아하는 탓에 결국 같이 갔다. 그 도중에 B는 일찍 가야 한다며 갔고, C의 여자친구 일행이 합류하게 됐다. A는 입장료 격으로 몇천원만 내면 된다고 했지만 알고 보니 그런 시스템이 아니었고, 결국 20만원 가가량의 양주 세트를 시켰다. 선불 결제였는데 A가 돈을 낼 생각을 전혀 않고 있어서 C가 일단 자신의 카드로 계산했다. D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조용히 얘기나 하고 싶었는데 시끄러운 주점에 오게 돼 일찍 일어섰다. C는 그후에 '네가 가자고 해서 갔으니까 네가 돈을 다 내라'며 A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A는 그 때문에 화가 나서 돈을 주고는 단톡방을 나가버렸다. 영문을 모르는 B는 어리둥절했다.


'그깟 20만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일반 직장인들에게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가게를 가서 돈만 실컷 쓰고 그다지 즐기지도 못한다면 돈이 아까울 수밖에 없다. 제3자로서는 먼저 제안했던 A가 돈을 좀 더 많이 부담한다거나 해서 친구들의 서운함을 덜어주면 좋겠지만, 사람이 그렇게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는 게 아니다. C가 A에게 돈을 달라고 한 부분은 이해가 되지만, 또 A의 입장에서는 '네 여친 친구들도 있었는데 왜 내가 돈을 다 내야 하냐'고 충분히 서운해할 수 있다. 어느 쪽도 화가 나기 좋은 입장이다.


결국에는 대화가 필요하다. 인간관계에서 서운한 일이 생겼을 때,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모른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일이 상대방에게는 아닐 수 있다. 나는 티를 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눈치채지 못했을 수 있다(대부분 그렇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상했을 때는 무조건 서로 대화를 해서 풀어야 한다. 혼자 꽁하게 있어봤자 해결되는 건 없고, 오해를 하고 있을 수 있으니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편은 좀 다른 것 같다. 남편은 일단 화가 났으면 본인만의 시간이 필요한 타입인 것 같다. 자신의 내면을 충분히 들여다보고 자기 생각을 먼저 정리한 다음에 대화를 하는 편이다. 거기에 대해 깊이 얘기해본 적은 없지만 경험상 그런 것 같다. 사람마다 서운함을 푸는 방식은 다르니까.


그러고보면 ENTP라는 내 성격유형은 정말 잘 맞는 것 같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울 정도로 감수성은 풍부하지만, 의외로 감성적이기 보다는 이성적인 면을 우선시해서 판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NTP 성격유형 설명을 보면 예술가 보다는 사회운동가가 되었어야 할 것 같지만.


갑자기 인간관계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지인의 이야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화가 나 있어서다. 쓰기엔 너무 졸렬해 보이는 사건이라 차마 쓰지 못하겠지만, 아무튼 화가 났다. 그리고 이건 단순히 한 가지 문제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축적된 결과다. 아마 다들 그렇겠지. 하나의 사건은 그 동안 쌓였던 서운함이라는 불쏘시개 위에 던져진 작은 불씨일 뿐이다.  


어차피 얼굴을 자주 보지 못하니까 언젠가는 풀려서 다시 만나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겠지만은, 사람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걸 얼마나 받아들이고 사느냐가 인간관계의 중요한 열쇠인 것 같다.





Title image _ Everyone Says I Love You (1996, by Woody 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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