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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Jan 04. 2020

나의 찌질한 이야기

어디에도 풀 곳 없는

끝도 없이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내 경우에는, 그렇다. 이 나이가 되도록 뭐 하나 제대로 이뤄낸 것이 없다는 불안감, 자신에 대한 한심함이다. 십대 때는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마냥 책 몇쪼가리 더 읽고 생각 좀 더 많이 했다고 으시대고 다녔으며, 이십대에는 <스킨스>의 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자유와 방탕을 불안한 청춘의 상징이라고 여기며 놀기만 했다.

그러다 깨닫고보니 삼십대가 되어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늘을 날으는 공을 보다가 소설을 써야겠다, 결심했다고 한다. 그게 그가 스물아홉의 일이었다. 명문대를 나왔지만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고, 장사도 꽤 잘 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책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였고 그는 첫 소설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수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인생의 시작이었다. 아멜리 노통브는 앉은 자리에서 소설 한 편을 뚝딱 다 쓴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서른이 되어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면 턱턱 신인상도 받고 인정도 받으며 작품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정말로 나는 어렸을 때 놈팽이 같은 천재형 작가들의 ‘그냥 술술 썼더니 턱 하고 상을 주더라’ 식의 에피소드를 철석같이 믿지 말았어야 했다. 무엇보다 난 천재도 아니었다. 무언가 대단한 업적을 이루거나 높은 위치에 오른 사람들은 그만큼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위인전에서는 위인들이 ‘얼마나 신동이고 천재이며 대단한 능력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만 말을 했지 그들이 그 능력을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해서 갈고 닦아 위인이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나는 순간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충실하며 살았다. 계획 같은 것은 세우지 않았다. 신년목표는 늘 썼지만 지키지 않았다. 목표는 그저 계획표의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한 낱말의 나열에 지나지 않았다. 선택의 순간에서 나는 늘 ‘그 때 원하는 것’을 택했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슨 길을 택해도 나중에는 후회할 테니까’. 그게 내 어린 날의 신조였다. 나는 정말로 인생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른에 회사를 다니면서 꾸역꾸역 비는 시간에 글을 써 첫 장편소설을 완성했지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인터넷에 내뱉은 찌꺼기 같은 폐기물이 나았다. 문학상에 출품은 해봤지만 두 번 다시 들여다보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야 다음 작품을 썼다. 겨우 독립출판으로 책을 냈다. 그마저도 정해놓은 마감에 급박해 마지막 이틀은 컴퓨터 앞에서 거의 밤을 샜다.


처음엔 소박하게 ‘책을 내는 것’이 목표였지만 당연히 그걸론 만족할 수 없었다. 누군가 발견해주기를 원했다. 나서지는 않으면서 어디선가 알아봐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작년에는 운좋게 출판사와 온라인출판 계약을 했지만, 그러고나서 별다른 소식은 없다. 일상은 여전히 그대로고 나는 무명의 작가다. 그나마 정식으로 ISBN이나마 발급받은 덕에 국가로부터 ‘예술인 인증’을 받았다. 국가에서 인정한 예술인이라는 뿌듯함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가계부 수입내역에서 ‘작가수입’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10년 전 vs 10억’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가 화제로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10억을 택했다. 나는 망설임없이 10년 전을 골랐다. 그렇게 해서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마 당장 손에 들고 있는 술병과 텔레비전 리모컨을 집어던지고 제대로 된 커리어를 쌓기 위해 노력하고 글을 한 줄 더 쓰기 시작할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2019년 한 해 마무리 영상을 보다가 진하게 현타가 온 시점에, 이 글을 쓴다. 그들은 누가 봐도 열심히 살았지만 스스로는 ‘게을렀다’며 더 노력할 것을 이야기했다. 그래서 요즘은 록스타가 존재하지 않는 걸까? 술, 마약, 섹스로 대변되는 그들의 방탕한 삶은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기엔 확실히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계속 그렇게 살았던 이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죽고 없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보라. 마약을 했던 멤버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었고 마약을 끊은 멤버들만 살아 남았다. 그들은 명상을 하고 운동을 하며 지금도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늙고 살찐 록스타만큼 안타까운 건 없다. 어렸을 때 록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허무주의적 감성에 빠지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나는 좀 더 열심히 살았을까?


삶에 대해 엄청 후회하는 것처럼 썼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을 뿐이다.

다만.





Title image _ Factory Girl (2006, by George Loening Hickenlooper 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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