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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리 Jan 14. 2020

빛과 그림자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없기에


누구에게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있다.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밝아 보이는 사람도 밖에선 웃고 떠들지만 방에 혼자 들어가서는 자신만의 굴을 파고 들어갈 때가 있다. 불행의 그림자라곤 모를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그늘이 있다. 모두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안고 살아간다.


우리는 타인의 어두운 면에 무심하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가 평소답지 않게 내면의 우울을 꺼내보일 때면 어쩐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게 될 때가 있다. 이름하여 사바사, 사람 바이 사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타인의 우울감을 받아들일 때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몇 잔의 알코올이라던가.


스무 살 때, 그런 적이 있었다. 남자친구에게 내 우울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 당시에 무엇 때문에 그렇게 슬프고 우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나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베이직한 어두움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나는 남부럽지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고 특별한 실패나 좌절이나 고통을 겪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에게도 해본 적 없는 얘기였다. 술김에 ‘이 정도 친한 사이라면 이해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나 보다.

그건 내 착각이었다. 남자친구는 나의 어두운 모습을 매우 싫어했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줬지만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훈계하는 쪽이었다. 그건 버리고 싶다고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몇 달 후 우리는 헤어졌다. 이유는 내 마음이 변해서였지만, 애초에 맞지 않는 사이였다고 생각한다.


그 후로 나는 아무리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이 들어도 절대 남에게 말하지 않게 됐다. 어떻게 보면 좋은 걸 배운 셈이다. 사람들은 밝고 건강한 에너지를 주는 사람을 좋아했지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만나면 피상적인 대화가 오갔다. 요즘 뭐가 재밌다더라, 누가 뭘 했다더라, 이러쿵 저러쿵.


사람들은 가까운 사람의 우울과 불안에는 귀 기울이지 않으면서 멀리 있는 사람의 우울과 불안에는 공감했다. 성공한 예술가가 본인의 불안과 고독을 얘기하면 눈물 흘리며 환호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어. 부와 명성을 모두 얻은 성공한 사람도 결국 평범한 우리와 같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심리인 걸까?


예술에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더 좋은 작품을 낳을 수 있는 토양이 되기도 한다. 고양된 행복 속에서는 좋은 작품이 탄생할 수 없다. 이미 너무도 만족스러운데, 굳이 예술로 표현하고 싶은 게 있겠는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남의 불행과 우울과 고독에 더 깊이 공감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예술도 그런 불행의 경험이나 침잠하는 내면에 대한 치밀한 탐구 없이는 탄생할 수 없다. 매일 아침 억지로 일어나 회사에 가서 상사에 시달리고 밖에서 시달리고 업무에 시달리는 회사원의 고충처럼, 그것이 예술인의 고충이 아닐까?


그러고보면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고통 없는 성공은 아무 것도 없었다. 피아니스트는 똑같은 곡을 수천 수만 번 치고 무용수는 같은 동작을 수백 수천 시간 연습한다. 짧은 동영상 하나로 수억을 벌어들이는 유튜버조차도 그 뒤엔 눈물과 땀이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오늘도 예술을 위해 사유하느라 바쁘다. 극단을 하고 있어 공연 비수기인 1, 2월은 좀 한가하지만 내 머리는 단 한시도 쉴 틈이 없다는 얘기를 하러 구구절절 변명을 길게 늘어놔 봤다.




Title image _ BTS / Interlude : Sha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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