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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결혼 11년차 아이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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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릴리리 Jan 20. 2021

건강한데 왜 시험관아기 같은 걸 해야 돼요?

이유없는 자존심 싸움

인공수정은 배란시기에 맞춰 정액을 인위적으로 자궁 내에 넣는 시술이다. 시험관 시술은 각각 난자와 정자를 채취해 건강한 놈들로 골라 배양관에서 만나게 해 수정시킨 다음, 3~5일 정도 배양한 배아를 자궁에 넣는 시술이다.

인공수정은 정액을 시기에 맞춰 자궁 안에 넣어주기만 하면 되는 거라 수정이 될지 여부는 운에 맡겨야 한다. 사실상 자연임신과 많은 단계가 비슷하다. 물론 시험관 때도 수정이 잘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숙련된 전문가의 손길이 이 단계를 줄여주니 비교적 임신에 더 가까워진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인지 난임이 오래된 부부라면 인공수정으로 힘빼지 말고 바로 시험관으로 들어가라는 조언이 많았다. 특히 우리처럼 건강하고 이상이 없는 사람일수록.

사실 망설여졌던 이유는 그거였다.

신체 건강하고 아무 이상이 없는데 왜 난임 시술 같은 걸 받아야 하지?

주위 친구들이 생리를 몇 달에 한 번씩 할 때도 나는 주기를 지켜 꼬박꼬박 생리를 했으며, 남들 다 겪는 생리통도 거의 없는 편이었다. 어릴적엔 감기에 자주 걸렸지만 그 때 먹은 숱한 보약이 커서 들었는지 성인이 되어서는 몇 년에 한 번 정도로만 감기에 걸렸다. 병원에 입원해본 적도 없었다. 종합병원에 가본 건 딱 두 번이었는데, 외할아버지 병문안과 남자친구(현재의 남편) 병문안이었다. 종종 위염으로 고생했으나 그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가벼운 질환이었다.

그래서 난임 시술을 받는다는 건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대체 왜?

때문에 3년 전 처음 난임 검사를 받았을 때도 쉽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고통의 나팔관 조영술까지 하고도 아무 이상 없는 정상, 원인 불명의 난임 판정을 받고 의사에게서 시험관을 권유받았을 때는 이상한 자존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내가 왜 시험관 아기를 해? 건강한데.
그냥 그동안 노력을 안해서 그런 거야.
노력만 하면 될 거야.

그런데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도 있었다. 사실 대단한 노력을 하지도 않았다. 이번 달은 피곤해서, 여행이 있으니까, 술을 많이 마셔서, 산재한 눈앞의 일거리와 여흥에서 쉽게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느덧 적지 않은 나이가 되어 있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여성에게는 허락된 가임기간이라는 것이 있었다. 만 35세가 넘으면 노산으로 분류가 된댔던가, 내 손목에 채워질 팔찌의 색깔이 곧 바뀔 판이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3년만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본격적으로 난임시술이라는 것을 받기 위해.

어쩐지 등 떠밀려 온 것 같은 느낌은 있었지만, 긴 기다림과 짧은 진료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난자 채취를 위한 준비 단계가 이어졌다. 진료 전에 간단한 문진표 작성과 채혈을 마쳤고(피를 몇 병 뽑았음), 검사 결과는 다음 번에 나올 것이었다. 검사 결과가 나온 다음에 진행되려나 싶었는데 한 달이라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난자를 뽑아내겠다는 교수님의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뭐, 이왕 결심한 거 빨리 시작하면 좋으니까.

작은 크기의 보냉가방과 주사약들이 한움큼 손에 쥐어졌다. 매일 일정한 시각에 배에 맞아야 하는 주사였다. 매일 병원에 갈 필요는 없고 집에서 놓으면 된다며, 주사 교육이 이어졌다. 배꼽에서 한 마디 정도 옆에, 직각으로 세워서 놓으면 돼요. 스스로 주사를 놓는 건 내겐 무서운 일이라 남편에게 잘 보고 놔달라고 했다. 첫 날은 병원 주사실에서 놔줬다.

자, 이제 시작이다.